감동적인 시구가 잠시 눈을 멈추게 하네요. 여기 봄을 봄답게 하는 전시회가 있습니다. 중앙일보 기사의 일부를 옮겨 봅니다.
“무리를 떠났으니 누구와 같이 시를 읊을까(離群誰與共吟壇)
바위의 새와 개울의 물고기 내 얼굴을 익혔구나(巖鳥溪魚慣我顔)”
이언적(1491∼1553)은 1535년 경주 양동 자옥산에 은거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제자 이황(1501∼1570)은 단정한 행서로 이 시를 옮겼다. ‘유거(幽居·그윽한 거처)’다.
“산수의 정회는 늙을수록 더욱 새로우니(山水情懷老更新)
어찌 오래도록 돌아가지 않으리(如何長作未歸人)”
양사언(1517∼1584)은 흐드러진 초서로 이렇게 적었다. ‘학성기우인((鶴城寄友人·학성에에게 보냄)’은 미친 듯 써내려간 광초(狂草)의 진수다. 그는 조선 전기의 문인으로 초서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김구·한호와 더불어 조선 전기 4대 서예가로 꼽혔다.
일반에 첫 공개되는 이 두 작품엔 조선 선비들의 자연사랑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기획한 ‘아라재 컬렉션-조선서화보묵전’에서다. 조선시대를 총망라하는 다양한 글씨와 그림 90여점을 내놓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자연’이다. 자연과 하나됨을 품위있게 적은 서예들 틈에는 김명국(1600∼1663 이후)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기려도(騎驢圖)’가 걸려 있다. ‘천석고황’,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질병이 됐다고 짐짓 엄살 부리던 이들이 바로 조선 선비들이다. 그래서 나귀를 탄 선비는 자연 속으로 유유자적 들어가는데, 뒤따르는 몸종은 악기와 술통을 짊어지고 낑낑거린다. 술을 즐겨 호도 ‘취옹(醉翁)’, 즉 술취한 늙은이로 썼던 김명국이 남긴 한 자락 유머다.
이번 출품작들은 사업가 김명성 씨의 소장품이다. ‘아라재(亞羅齋)’는 서울 안국동에 있는 그의 장서각 당호로 그가 모은 고서화는 ‘아라재 컬렉션’으로 불린다. 전시는 25일까지다. 02-580-1281. 중앙일보 권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