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은 ‘선(禪)과 예술(藝術)’을 화두로 3일간의 동안거에 들어간다.
우리는 선(禪)이라고 하면 보통 도통(道通)을 위해 선방에서 정신(情神)을 집중하고 앉아있는 스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많은 분야에서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는 선과 관계된 행위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다선(茶禪), 요가, 젠 댄스, 명상(冥想), 검도(劍道) 따위이다. 그리고 이런 행위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요소 또한 정신의 집중이나 자유 같은 것이다. 그러면 예술은 어떠한가. 예술의 근본목적도 또한 인간정신을 구원해 주고, 인간에게 근원적인 삶의 자유를 제공해 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맥락에서 ‘3일간의 동안거’는 선과 예술을 화두로 예술에 있어 선이 과연 무엇인지를 해당 장르별 전문가를 통해 참가자들이 스스로 깨달아 가는 자리라고 하겠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한국서예사특별전 24번째로 기획된 《고승유묵(2005.1.11-2.27)》전시와 함께 마련된 것으로 말 그대로의 선문답이 아니라 실제 전시작품을 가지고 화두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주목이 된다.
그림설명 : 淸虛 休靜(1520~1604), <精選四家錄 부분>, 『槿墨』,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 장 소|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4층 문화사랑방
◎ 시 간|오후 1시 30분 - 4시 30분
◎ 강의비|30,000원 (1일 2개 강의) / <고승유묵전> 관람비, 교재 포함
◎ 할 인|시리즈 티켓, 단체(10명 이상), 19세미만, 대학생, 장애인, 국가유공자 : 50%,
예술의전당 회원 및 아카데미 수강생 : 30%
30,000원 50% → 15,000원
30% → 21,000원
◎ 문의 및 예약|02-580-1300
서화면 서화이지 선서화가 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화두(話頭)부터 의심을 하면서, 선서화가 선승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화를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간 모든 자의 것임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특히 선의 요체가 형상에 얽매이지 않는 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선서화의 역설(逆說)을 우리나라 현존 최고의 선묵장(禪墨匠)이자 안목(眼目)인 석정스님이 어떻게 해명할 지가 관심거리이다.
그림설명 : 金生(711~?), <王右軍>, 『海東名跡』, 拓帖, 개인 소장.
2005. 1. 11은<고승유묵전> 개막식 당일이므로 2시 30분부터 4시까지 강의비 없이 진행됩니다.
전화예약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02-580-1629, 1631
1월 25일(화)
흔하다면 지극히 흔한 선(禪)이라는 단어가 정작 일반인들에게는 왜 이렇게 어렵게만 들리는지에 대한 해명을 선(禪)의 본질(本質)·역사 (歷史)· 성격(性格)의 측면에서 논증해간다. 성본스님 자신이 간화선에 있어 우리나라 최고 선장(禪匠)의 한 사람이자 이론가인 만큼 한국에서의 선수행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해답 또한 기대된다.
어느 분야와 비교해도 아직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에 있어 가장 취약한 것은 서예사이다. 그리고 서예사 중에서도 선필의 역사가 가장 조명이 덜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때에 불교미술, 서예사, 회화사, 도자사 등 우리 예술사 연구의 최고봉인 최완수 선생님을 통해 들어보는 우리나라 선필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이다.
그림설명 : 坦然(1069~1158), <眞樂公重修淸平山文殊院記 碑片>, 1130년,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1월 26일(수)
그림설명 : 金正喜(1786~1856), <白坡論辯>,개인 소장.
한국불교는 전래이후 오랜 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선교(禪敎) 양종은 물론 유불선(儒佛禪)까지 종합된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크고 작은 논쟁과 계파가 있어 왔다. 그 중 조선 불교사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으로 치는 것이 당시 백파 긍선(1767~1852)과 초의 의순(1786~1866)·추사 김정희(1786~1856) 사이에 벌어진 삼종선(三種禪)을 중심으로 한 교리(敎理)와 선지(禪旨)에 대한 논쟁인데, 이 기회를 통해 이 분야 연구의 최고권위자인 정병삼 교수님을 모시고 그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불교의 성격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한걸음 다가서 본다.
차(茶)는 본래 과거 중국에서 선사들이 화두일념의 선정에 들어감에 있어 그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채택한 도구 같은 것인데, 지금은 차가 곧 선(禪)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차와 차 문화가 우리나라, 일본에 전래되면서 맛이나 성격 등이 각기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차 문화에 있어 한중일의 차이는 무엇이고, 우리 차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를 초의 의순선사를 중심으로 알아본다.
그림설명 : 申櫶(1810~1884) 讚, <草衣 意恂 眞影>, 1865년, 태평양박물관 소장.
1월 27일(목)
궁극적으로 정신의 무한자유를 추구하는 요가나 명상 등이 육체의 고통을 극복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상기해볼 때, 춤의 원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국내에서 보다 해외에서 선무용 「젠 댄스」로 더 큰 명성을 쌓아온 이선옥 선생님으로부터 선을 통해 몸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것이 어떻게 춤이 되는지를 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실전경험을 통해 들어보자.
시(詩)가 ‘말의 일상성(日常性)을 거부함으로서 타성에 젖은 인간들에게 청량감을 주는데 있고, 선(禪) 또한 일상적인 말을 거부함으로써 언어의 합리성을 깨는데 있다면 시와 선은 그 원리에서 하나로 만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선은 우상(偶像)을 만들지 말도록 했지만,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해서 문자마저도 떠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시(詩) 또한 그림과 마찬가지로 상(문자)를 떠나 존재 할 수 없으니 이 또한 선시의 역설이다. 대학 강단에서 국문학을 평생 강의 했던 법산스님은 선을 둘러싸고 실타래처럼 엮인 듯이 보이는 이 문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로 파헤친다.
그림설명 : 鏡虛 惺牛(1849~1912), <五言對聯>, 통도사성보박물관 소장(석정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