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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는 주거(住居) 정책(政策)이 보고 싶다.
“이제 강남에 집 살 생각은 버려야겠지. 그래도 아내는 애들 교육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데 말이야. 애들도 커가고 집을 넓히려면 수도권 외곽으로나 나가야겠지. 판교, 거긴 ‘로또’라는데….”
8.31 대책에 이어 나온 후속판인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還收)와 주택담보 대출을 소득과 합쳐 대폭 제한한다는 3.30 부동산대책이 나온 이후, 요즘 우리의 아버지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하는 푸념이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대개 회사원으로, 20년 가까이 한 기업에 다니며 부장직위에 올라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도 잡았다고 자부하는 세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는 바로 주거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40대에게 집 장만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걸려있다. 우리나라처럼 학벌이 사회를 지배하는 풍토에서 소위 명문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학교와 학원이 위치한 지역에 집을 장만해야 한다. 경기도(京畿道) 지역이 완전 평준화된 수년 전,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新都市)에서 몰려드는 수요로 서울 강남 집값이 폭등한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는 재테크에 대한 고려를 들 수 있다. 월급쟁이들이 안전하게 택할 수 있는 재테크 방법 중 으뜸은 현재로서는 부동산(不動産)밖에 없다. 주식투자를 했다 패가망신했다는 사람은 여럿 봤어도, IMF 시절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부동산을 사놓았다가 손해를 봤다는 이는 듣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또 월급쟁이들에게 집은 노후 보장용이다. 국민연금(國民年金)이 의심스러워 개인연금까지 붓고 있지만, 얼마 전부터 그렇게 문제없다고 떵떵거리던 국민연금의 광고 CI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국민연금은 노후준비의 기본입니다.’ 으로 바뀌었듯이, 그래도 가장 믿는 구석은 평생 모은 재산을 투자한 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의 어머니들은 넉넉한 자금이 없으면서도 기를 쓰고 투자수익이 높다는 강남(江南) 재건축 아파트를 사려 기웃거리고 입지 좋은 신도시 청약(請約)에 줄을 길게 늘어서고, 판교 로또에 목빠지게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오로지 부동산값을 잡아야겠다는 집념으로 그 같은 이들을 투기꾼으로 치부하며 이제는 대출까지 막아버리겠다고 하고 있다. 능력도 되지 않는 월급쟁이가 왜 굳이 강남으로 가려고 하느냐, 값싼 동네에 집을 장만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집을 마구 지어놓는다고 해서 다 똑같은 집은 아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도, 남향(南向)이냐, 동향이냐도 중요하며, 주변 환경은 더 중요하다. 주변에 학교는 뭐가 어떻게 있으며, 생활편의시설은 뭐가 있는지, 지하철(地下鐵)은 얼마나 가까운지가 중요한 것이다.
얼마 전 열린 한 방송사의 토론에서, 한 여당(與黨) 의원은 강북 등 다른 곳의 환경이 개선될 때까지 강남 재건축을 제한하자고 했다. 서울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민영(民營) 아파트는 국민 임대 주택처럼 국가 소유가 아니라, 개인 소유이다. 고층에 살아도 토지세도 내고, 재산세(財産稅)도 내는, 사유 재산인 것이다.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고 하는 층수 제한도 아니고, 다른 곳에 비해 비싸다는 이유로 짓지 말라는 억지가 어디 있는가. 이는 명백한 사유재산권(私有財産權)을 침해한 것이다.
물론 부동산값을 안정시켜야 장기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고 서민들이 집 장만도 쉬워질 것이라는 대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국자(當局者)들이 이번 대책을 접하고 가장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은행창구로 달려가 대출상담을 벌여야 하는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어머니의 입장은 헤아려봤는지 궁금하다.
3.30 대책이 나와도 복부인들은 눈 하나 깜짝 안한다고 한다. 결국 여느 ‘대책’처럼 또 유리지갑 가진 샐러리맨, 서민들만 잡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강남 복부인(福婦人) 아줌마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투기라는 말은 사라졌다고 큰소리만 치는 부총리가 아니라, 현 정부 들어서만 집값이 최고 63% 올랐다는 통계가 있는데도 철지난 IMF 탓이라고 야당을 비판하는 모습이 아니라, 한 번쯤, 요즘 왜 집이 비쌀까 생각해보고, 그런 것을 다른 곳에 더 좋게 제공해주겠다는 대책, 그리고 집값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에게 현실적으로 내 집 마련을 해줄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모습을, 우리의 아버지들은 보고 싶은 것이다. 여태까지 내놓은 대책으로 전에 오른 집값은 몇 억인데, 그거에 비해 몇 천 떨어졌다고 8.31의 업적이라고 공무원에게 훈장(勳章)주는 정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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