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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불언(蛇福不言)

* 본문의 금강산 도량사(道場寺)는 경주에 있단다. 나도 처음에는 강원도 금강산인 줄 알았다. 바위 밑의 사복의 얼굴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아래 사진은 원효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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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불언(蛇福不言)

* 핵심 정리
갈래: 원효(元曉)와 관련된 불교설화.
제재: 원효(元曉)의 일화
주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불교적 이치로 설명함.
특징: 초월적 세계를 보여 줌. 불도의 진리를 깨우치기 쉽게 집약적이고 함축적으로 제시함.
출전: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해설: 〈사복이 말하지 않다〉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는 원효와 관련된 불교설화로서, 아집에 사로잡힌 인간이 불교의 가르침으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깨우치고, 부처는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속한 곳이나 초라한 자기 자신 속에 있다는 불교의 종교적 교의(敎義)를 다루었다.

내용: 신라 진평왕 때의 일이다. 서라벌 만선북리(万善北里)라는 마을에 한 과부가 살았다. 과부는 남편도 없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상하게도 아들은 나이가 열두 살이나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말할 줄 모른 채 누워만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아이가 열 살이 넘도록 누워만 있다는 뜻으로 사동(蛇童, 뱀아이) 또는 사복(蛇卜)이라고 불렀다. 일어설 줄 모르는 뱀귀신을 타고 났다는 뜻이다. 어느날 사복의 어머니가 죽자 누워만 있던 사복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선사(高仙寺)에 있던 원효를 찾아왔다. 원효는 반갑게 맞이했으나 사복은 답례를 하지 않고, "전생에 그대와 내가 경(經)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죽었으니 우리 함께 장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말했다. 원효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사복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사복은 원효에게 우선 포살(布薩)부터 시켜 계(戒)를 주라고 했다. 불교에서 부처가 정해준 8가지 계율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해설하는 것을 포살이라 한다.

원효는 시신 앞에 분향하고 단정히 앉아 "태어나지 말라. 죽는 것이 고통이니라! 죽지도 말라. 세상에 나는 것이 또한 고통이니라!" 하고 계를 설했다. 사복이 원효에게 말이 너무 길어 번거롭다고 하자 원효는 다시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고통이니라." 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으로 갔다. 동쪽 기슭에 이르렀을 때 원효가 "지혜로운 호랑이는 지혜의 숲에 묻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하고 사복의 의견을 묻자, 사복은 게송(偈頌)을 지어 읊었다.

"그 옛날 석가모니불이/사라수 아래서 열반하셨네./오늘도 그와 같은 이가 있어/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로 들려고 하네."

게송을 마친 사복은 띠풀의 뿌리를 잡아 뽑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풀뿌리가 빠진 흙구멍 밑으로 아주 아름다운 세상이 열려 있었다. 웅장한 산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솟아 있고, 여러 곳에 전각(殿閣)이 있는데 모두 7겹의 난간을 돌리고 칠보로 장엄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이 인간 세상 같지는 않았다. 사복이 어머니 시체를 업고 그 속으로 들어가니 땅은 다시 합쳐지고 메고 갔던 상여만 남았다. 원효는 홀로 고선사로 돌아갔다. 훗날 사람들이 금강산 동남쪽에 절을 짓고 이름을 도량사(道場寺)라 하고 매년 3월 14일에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었다.

이 설화에서 원효와 사복은 전생에 한 절에서 같이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암소에게 경전을 실은 수레를 끌게 해 여러 절로 운반했다. 그 업보로 사복은 암소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이다. 두 사람은 암소를 극락세계로 인도함으로써 다시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 고통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것도 죽는 것도 고통'이라고 계를 설했다. 또 원효가 말한 호랑이는 무상(無常)을 뜻하고 지혜로운 호랑이란 이미 무상을 깨달은 사복의 어머니를 가리키며, 지혜의 숲은 연화장 세계, 즉 극락세계를 말한다.

한편, 이 설화에서는 <욱면설화>와 마찬가지로 신분이 높은 원효보다 하층민인 사복이 먼저 극락왕생하는데, 득도나 도력에서 하층민 또는 하층민적 행동의 우월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는 또한 <삼국유사>에 불교설화를 수록한 일연(一然)의 일관된 태도로서, 그가 불경에 고착된 불교설화보다는 세간에 전승되던 불교설화를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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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가리키는 대상이 같은 말: 과부=어머니=암소=지혜 있는 범
지혜의 숲: '연화장 세계'의 비유적 표현
이 글에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지배적이다.
권상호
* 더 읽고 생각하기

<삼국유사 소재 '남백월이성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이란 두 청년이 살았는데 이들은 모두 풍채와 골격(骨格)이 범상치 않았고, 속세를 떠난 마음이 있어 서로 좋은 친구였다. 
20세가 되자 마을 동북쪽 고개 밖에 있는 법적방(法積房)에 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서남쪽 치산촌(雉山村) 법종곡(法宗谷) 승도촌(僧道村)에 옛 절이 있는데,
서진(栖眞)할 만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대불전(大佛田)·소불전(小佛田)의 두 마을에 각각 살았다. 
노힐부득(努肹夫得)은 회진암(懷眞巖)에 살았는데 혹은 이곳을 양사(壤寺; 지금 회진동 懷眞洞에 옛 절터가 있으니 이것이다)라고도 했고,
달달박박(怛怛朴朴)은 유리광사(瑠璃光寺; 지금 이산(梨山) 위에 절터)에 살았다. 이들은 모두 처자(妻子)를 데리고 와서 살면서 생업(生業)을 하면서 서로 왕래하며 정신을 수양하고 편안히 마을을 닦아 속세를 떠날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몸과 세상의 무상(無常)함을 느껴 기름진 밭과 풍년 든 해는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의식(衣食)이 마음대로 생기고 자연히 배부르고 따뜻함을 얻는 것만 못하다.  또 부녀(婦女)와 집이 참으로 좋으나, 연지화장(蓮池花藏)에서 여러 부처가 앵무새나 공작새와 함께 놀면서 서로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더구나 불도(佛道)를 배우면 응당 부처가 되고, 참된 것을 닦으면 반드시 참된 것을 얻는 데에 있어서랴. 지금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니 마땅히 몸에 얽매어 있는 것을 벗어 버리고 무상(無上)의 도(道)를 이루어야 할 것인데, 어찌 이 속세(俗世)에 파묻혀 세속 무리들과 같이 지내서야 되겠는가. 
이들은 드디어 인간 세상을 떠나서 깊은 골짜기에 숨으려 했다. 어느 날 밤 꿈에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에서 오더니 빛 속에서 금빛 팔이 내려와서 두 사람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꿈에서 깨어 그 얘기를 하니 두 사람의 말이 똑같으므로 이들은 모두 한참동안 감탄하다가 드디어 백월산(白月山) 무등곡(無等谷; 지금의 남수동南藪洞)으로 들어갔다.
박박(朴朴)는 북쪽 고개의 사자암(獅子巖)을 차지하여 판잣집 8척 방을 만들고 살았으므로
판방(板房)이라 하고, 부득(夫得)은 동쪽 고개의 무더기 돌 아래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방을 만들어 살았으므로 뇌방(磊房)이라고 했다.
이들은 각각 암자에 살면서 부득(夫得)은 미륵불(彌勒佛)을 성심껏 구했고, 박박(朴朴)은 미타불(彌陀佛)을 경례하고 염송(念誦)했다. 3년이 못되어 경룡(景龍) 3년 기유(己酉; 709) 4월 8일은 성덕왕(聖德王) 즉위 8년이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나이 20이 가깝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낭자(娘子)가 난초(蘭草)의 향기와 사향 냄새를 풍기면서 갑자기 북암(北庵; 향전鄕傳에는 남암南庵이라 했다)에 와서 자고 가기를 청하면서 글을 지어 바친다.

行遲日落千山暮 행지일락천산모
路隔城遙絶四隣 노격성요절사린
今日欲投庵下宿 금일욕투암하숙
慈悲和尙莫生嗔 자비화상막생진

느린 걸음 해는 져 산은 어둡고
막힌 길에 홀로 선 몸 마을은 멀어
오늘밤은 이 암자에서 쉬고자 하니
자비로운 스님께선 꾸짖지 마오.

박박(朴朴)은 절은 깨끗해야 하는 것이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어서 다른 데로 가고 여기에서 지체하지 마시오.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낭자(娘子)는 북암北庵)으로 돌아가서 또 전과 같이 청하니 부득(夫得)은 그대는 이 밤중에 어디서 왔는가  낭자가 맑기가 태허(太虛)와 같은데 어찌 오고 가는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배의 바라는 뜻이 깊고 덕행(德行)이 높고 굳다는  말을 듣고 장차 도와서 보리(菩提)를 이루고자 해서일 뿐입니다."  그리고는 게(偈) 하나를 주었다.
 
日暮千山路 일모천산로
行行絶四隣 행행절사린
竹松陰轉邃 죽송음전수
溪洞響猶新 계동향유신
乞宿非迷路 걸숙비미로
尊師欲指津 존사욕지진
願惟從我請 원유종아청
且莫問何人 차막문하인

해 저물고 첩첩한 길,
가도 가도 인가는 없네,
소나무 대나무 그늘은 더욱 깊고,
골짜기 시냇물 소리 더욱 새로워라.
자고 가기를 청함은 길 잃은 탓 아니고,
높으신 스님을 인도하려 함인 것.
원컨대, 나의 청 들어만 주시고,
길손이 누구냐고 묻지는 마소서
 
부득(夫得)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면서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衆生)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菩薩行)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하며 그를 맞아 읍(揖)하고 암자 안에 있게 했다.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닦아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 밑에서 고요히 염불했다. 
밤이 새려 할 때 낭자는 부득(夫得)을 부르며 내가 불행히 마침 산고(産故)가 있으니 원컨대 스님께서는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득(夫得)이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은은히 촛불을 비치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또 다시 목욕하기를 청한다. 
부득(夫得)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얽혔으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보다 더해서 마지못하여 또 목욕통을 준비해서 낭자를 통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키니 이미 통 속 물에서 향기가 강하게 풍기면서 금액(金液)으로 변한다.  부득(夫得)이 크게 놀라자 낭자는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득(夫得)이 마지못하여 그 말에 좇았더니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는 것을 깨닫고 살결이 금빛으로 되고, 그 옆을 보니 졸지에 연대(蓮帶) 하나가 생겼다.  낭자가 부득에게 앉기를 권하면서  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인데 여기 와서 대사를 도와 대보리(大菩提)를 이루도록 한 것이오. 말을 마치더니 보이지 않았다. 
한편 박박(朴朴)이 생각하기를,
부득(夫得)이 오늘 밤에 반드시 계(戒)를 더럽혔을 것이니 비웃어 주리라하고 가서 보니 부득(夫得)은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미륵존상(彌勒尊像)이 되어 광명(光明)을 내뿜는데 그 몸은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박박(朴朴)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니  부득이 그 까닭을 자세히 말해 주니 박박(朴朴)은 탄식해 말기를 나는 마음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다행히 부처님을 만났으나 도리어 대우하지 못했으니, 큰 덕(德)이 있고 지극히 어진 그대가 나보다 먼저 이루었으니. 부디 옛날의 교분(交分)을 잊지 마시고 일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부득이 통 속에 금액이 남았으니 목욕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박박이 목욕을 하여 부득과 같이 무량수(無量壽)를 이루니 두 부처가 서로 엄연히 대해 있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고 감탄하기를, "참으로 드문 일이로다."했다.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佛法)의 요지(要旨)를 설명하고 나서, 온몸으로 구름을 타고 가 버렸다고 한다.
 (삼국유사 권삼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조)
예시 답안 -> 속세의 번뇌를 떨치기 위해 도를 닦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관음보살의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죽음의 고통 없이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