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에 수록된 작품들
<금오신화>는 작품의 성격상 크게 두 계열로 나누어진다.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가 하나의 그룹이다. 이 가운데서도 전 2자와 후자의 성격은 또 조금 다르다.
<만복사저포기>의 양생, <이생규장전>의 이생은 각각 죽은 여인의 환신과 동서(同棲)하다가 여인을 따라 모두 현세를 등진다.
명혼소설로 인귀교환이 특색이며, 왜구난 홍건적난 등 전란이 비극의 원인이 되고 있음도 공통적이다. 그러나 <취유부벽정기>는 전자에 비해 몽유소설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고 성애(性愛)가 거세된 대신 역사적 사건이 만남의 동기가 되고 있다.
한편, <남염부주지>(南炎浮州志)와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이 또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데, 이 양 작품은 완결된 몽유소설로 주인공 박생, 한생이 각각 지옥과 용궁을 편력하는 이계담(異界談)이다. 물론 두 작품에도 여인과의 애정관계가 거세되어 있는데 전자는 박생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조되어 있고, 후자에는 글자랑에다 편력만 장황함에 그쳤다.
● 1. 만복사저포기
① 양생, 조실부모하고 혼자 만복사 동쪽 방에서 살다 / 공중에서 배필 얻게 될 것을 알림 / 부처 앞에서 저포내기에서 이김
② 여인(환신)과 불전에서 만남 / 만복사 행랑 끝에서 정을 나눔 / 함께 여인의 집(묘)에 가서 사흘 지냄 / 이별의 잔치(이웃 여인들과 시화답) / 여인의 선물(주발)로 보련사에서 여인 부모와의 대면.
③ 여인과의 이별(여인이 환신임을 알게 됨) / 여인 부모의 인정과 재산 증여 / 정식 장례와 제사 지냄 / 여인의 재산을 모두 팔아 재 올려 명복 빌다 / 여인 - 타국 남자로 환생, 양생 - 장가 가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 캐며 마친 바를 알지 못함.
만복사저포기는 현실적 인물 양생과 죽은 여인의 영혼과의 인귀교환을 다룬 흥미로운 작품이다. 명혼소설의 대표적 작품인데 구성상으로 보면 ①만복사에서 만남 ②무덤에서의 동거 ③보련사에서의 재회 ④두 사람의 이별의 순으로 서술되어 있다.
만복사의 저포놀이가 매개가 되어 양생이 평소에 소원하던 아름다운 여인을 부처님에게서 점지 받게 되는데, 매월당의 <명주일록>(溟州日錄)에서 보면 그가 선행승(善行僧)과 더불어 저포놀이를 한 시를 남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의 생애를 형상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 양생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장가를 가지 않은 상태에서 절에 의탁되었는데 이는 가족을 포함한 인간적 관계에서의 단절 내지는 고립 상태이고, 절에 기식하고 있는 것은 승(僧)도 속(俗)도 아니어서 일체의 사적인 이익 관계로부터 단절된 상황이며, 퇴락한 절 만복사 동쪽 방에서의 기거는 생활공간상의 고립을 나타낸다.
상대 인물인 여인은 본래 양가집 규수였으나 왜구침략으로 목숨을 잃은 원혼이다. 가매장되어 있었던 3년동안 꽃다운 청춘의 외로움에 원망이 쌓여 원귀의 상태에 있다.
세상의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었던 여인의 유기된 젊음의 본능적 욕구는 인간세상에서 충족되어야만 하는 강렬한 욕망으로 응결되어 환신으로나마 등장하여야 하는 필연을 갖는다.
두 사람에게 허용된 만남의 기간은 한정되었지만 그들이 빚어내는 만남의 내용은 진정한 사랑으로 구현된다. 이들의 만남은 외로운 영혼들의 상실된 존재성 확인과정이며 그들이 비로소 세계와의 화해를 맛보게하는 사건이다.
이런 내용은 공간이동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들이 함께 하는 공간은 만복사 부처앞→판자방→여인의 집(무덤)으로 밀폐되고 축소된 공간의 이동은 외형적으로는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의 폐쇄적 고립성을 보여주지만 만남의 면에서는 두 사람의 결속의 응축성을 의미한다. 밀실로서의 공간은 그들의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곳이다. 원혼상태에 있는 여인의 욕구가 충족되어감으로서 한은 해소되어가고 양생이 받은 신물(信物)은 여인의 상황을 가족에게 알리게 하는 매개물이 되어 사회적 공인을 획득하게 하고 여인의 존재론적 변모를 이룰 수 있는 단서를 부여한다.
만복사저포기는 훌륭한 비극적 전기작품으로 불우한 주인공 양생의 비극이 있고 현실에서 사랑을 끝내 성취하지 못하고 떠난 여인의 비극이 있다. 이는 곧 지은이 자신이 세조 정변을 통해 사회와 맞서지 않으면 안되었던 처절한 싸움이며 그 싸움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 정신의 문학적 표현이 곧 비극으로 형상화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이생규장전
① 이생과 최녀는 재자가인으로 유명
② 이생 학교 가는 길, 최씨 담안을 엿보고 편지 던지자 최씨 답장 보냄 / 이생 담 넘어 만나 정을 나눔 / 이생 아버지에 의해 울주로 보내어짐 / 최씨 상심하여 위독 / 최씨 부모가 편지 보고 사연 짐작 , 이생가에 청혼, 이생원의 거절과 재청혼 / 결혼 / 이생 높은 벼슬 , 행복한 삶 / 홍건적 난, 피난길 여인이 죽임을 당함 / 이생 폐허된집에 들어와 최녀 환신(幻身) 만남 / 부모장례 / 이생 아내와 함께 살다가 벼슬, 인간사 모두 잊고 친척손님.길흉사 전부와 무관한 채 아내와만 지냄.
③ 이별 / 여인의 해골 거두어 장사지냄 / 이생도 병이 들어 세상 떠남 / 이웃 주민들의 한탄
이생규장전은 이생과 최낭자의 만남이 거듭되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만복사저포기에서는 현실의 양생이 처음부터 죽은 여인의 환신을 만나 동거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생규장전에서 보면 이생과 최낭자의 첫 만남은 이계와는 관계없이 현실적인 사랑을 맺는다. 그러나 홍건적의 난을 계기로 재회하는 과정에서는 전자처럼 환신과의 만남으로 변모된다. 두 작품의 구성을 비교해보면 이생규장전의 후반이 만복사저포기라고도 할 수 있으나 작품의 기교나 가치면 에서 본다면 이생규장전이 전자에 더 월등한 가치를 부여받을 만하다.
이생규장전은 결합과 이별의 단계가 3단계로 되어있다.
첫단계는 이생과 최낭자가 인연을 맺었다가 이생가의 반대로 서로 이별하게 되는 사건이다.
사랑에서의 시작은 이생이 먼저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최낭자가 더욱 적극적이다.
이생가에 의해 두 사람은 다시 이별을 맛보게 되지만 최낭자의 적극성으로 말미암아 양인은 재결합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홍건적의 난은 그 두사람의 이별의 단서를 마련해주고 있다.
그후 환신과의 만남. 또 세 번째의 이별....
후반부에서의 이생은 아내, 부모, 모든 생활의 기반을 상실한 채 옛집에서 홀로 비탄에 잠겨 세상과의 단절과 생에의 의욕마저 잃은 상태이다.
이생규장전의 이생이 곧 김시습이며 여인의 유해를 거두어 달라는 당부는 단종 참사 후의 사실에 대한 우의(寓意)임을 주장한 견해도 있다.
또 최낭자가 이리떼 같은 도적의 칼에 쓰러지면서까지 끝내 정조를 지켜 이생을 사랑했다는 사실은 김시습 자신이 세조 정권에 지조를 팔지 않고 단종에게 충성을 바치려고 한 굳센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절의로 죽인 이들에 대한 화풀이의 맥락에서 역시 이생은 김시습, 최낭자를 비롯한 전란의 희생자를 단종을 비롯한 왕권의 희생자들로 대응시켜 작품의 우의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일차적인 작품해석은 이생과 최낭자의 순수한 사랑, 자유연애사상에 먼저 문학적 가치가 부여되어야 하고 작가와 관련된 우의적 해석은 김시습이 모순된 세계와의 부단한 조화를 꾀하는 인간적 허구와 그 가운데 발생하는 좌절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이생의 불우한 생애, 전란이라는 비극적 배경, 현실과 비현실의 갈등상황이 어우러져 빚어낸 비극소설임에 틀림없다.
●3.취유부벽정기
평양의 소개/ 개성 홍성 부호이고 젊으며 얼굴이 잘 생기고 풍토가 있고 글도 잘 지음./장사차 평양행/ 친구가 열어준 잔치 끝에 부벽정에 배 저어가 오름/ 선계를 연상케 하는 그 곳에서 옛나라를 생각하며 탄식, 시를 읊으며 흐느껴 울고 춤을 춤.
기씨녀를 만남/ 함께 시를 논할 만하다 하고 답시를 지어줌./ 기씨의 가계와 내력 얘기/ 홍생의 요청에 따라 시를 지어 주곤 모든 자취를 거두어 공중으로 올라가 버림.
홍생 그 말을 모두 기록/ 비통해져 올라옴./ 친구들에게 속여 대답/ 여인에 대한 연모로 병이 듦/ 꿈에 여인의 시녀 나타나 견우성의 속관되었음을 알림/ 죽음 맞는 자세/ 신선화
기씨녀는 오래전 신선이 되어 초월적 세계인 월궁에 살고 있지만 본래 기자조선의 후예인데 과거 자신이 살고 있었던 선조의 땅에 대한 회고조의 감개에 젖어 잠시 부벽정에 내려온 것으로 더불어 시를 논할 대상을 찾아 내려온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대등관계이다.
그러나 기씨가 대접한 술과 음식을 홍생이 먹을 수 없다는 것은 두 인물의 존재론적 차원의 차이를 나타낸다.
그녀가 떠나 뒤 바람이 불어 그녀와 지은 시와 사랑을 나누었던 자리마저 걷어가 인세에 신선이 내려왔던 자취를 없애고자 하였다.
그 후 홍생은 자시의 죽음을 기꺼이 맞는다. 현실에서의 죽음은 곧 그녀와의 천상재회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한갓 현실도피의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현실을 떠남으로서 정화되고 안정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초월적 현실주의관을 살펴 볼 수 있다.
작품의 결말인 죽음의 대목에서는 시체를 빈소에 안치한 뒤 수일이 지나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으며 그때 사람들은 그가 신선을 만났으므로 죽음에서 해탈되었기 때문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천상 본향의 낙원회기를 갈망하는 지상인의 실락원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라고 한 인간본연의 신선사상에 동의하게 된다.
양인이 현실에서 잊지 못한 사랑의 사연을 천상에서 지속해 보려는 초월적 현실주의 사상과 도가적 신선사상이 이 작품에 혼합되어 <금오신화> 가운데서도 한 차원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된다.
● 4.남염부주지
경주 박생은 유생인데 뜻과 기상이 고상하여 세력에 굴복 않는 청년으로, 세상과 불화관계에 있다.
꿈속에 염부주에 가 염왕을 만남./ 진정한 자기 이상을 도모/ 염왕의 후계자로 결정됨
꿈을 깨자 죽음을 준비하다./ 죽음/박생이 염라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이웃집 사람 꿈에 알려짐.
<금오신화>가운데서 매월당의 사상을 압축하고 있는 대표적 사상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서정성을 제거하였으며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시적 문체를 거세하였다.
박생과 염라왕과의 대화를 통하여 박생 즉 매월당의 평소 생각했던 철리(哲理)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사회관을 낱낱이 피력하고 있다.
본체론의 제시와 유불 화합론, 귀신론, 현실불교와 신앙의 폐란론, 치국관 등 평소 자신의 생각과 현실의 갈등 관계를 박생과 염라왕의 대화를 통해 문제 삼고 있으며, 저승을 부정하는 염라왕의 역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정당하며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여기에서 염왕은 세간의 상식이 용인하는 염라왕이 아니다. 박생의 변론에 동조하며 인간을 심판하는 염라국을 오히려 부정하고, 백성을 그릇 인도하는 왕의 횡포를 비판하고 세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박생을 옹호하고 끝내는 그 박생이 마음에 들어 염라국왕의 자리까지 물려주는 데 이른다. 작자의 의도는 박생과 염라국왕의 대화를 통하여 오히려 염라왕이나 저승의 존재를 부인하고 거부하는 패러독스를 이용함으로서 현실적 행위와 사상을 더 강하게 부인해 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매월당은 염라왕이라는 가상 인물을 통하여 작가가 처한 시대의 이념적 모순과 정치 사회의 모순을 극복해 보려는 의도를 이 작품을 통해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 5.용궁부연록
박연 소개/ 한생, 문사로 평판 있는 사람/ 용왕의 초청으로 용궁행
용왕의 환대와 상량문 요청/ 곧 지어 바침/ 용왕과 세 신의 감탄/ 연회/ 용왕의 신명난 노래/ 신하들의 다채로운 재주/ 가의 신들의 시/ 한생의 용궁 구경과 작별/ 용왕, 보내주며 전송
돌아옴/ 보배를 깊이 간직하여 보물로 삼고, 남에게 보이지도 않음./ 세상의 명예와 이익에 생각 두지 않고 명산 입산/ 어디에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음.
<남염부주지>처럼 이 작품도 몽유록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새벽녘에 꿈을 꾼 것인데 그 꿈이 하도 선연하여 꿈속의 물건을 찾아보았더니 용왕에게서 받은 선물이 그대로 있었다고 하였다. 이런 수법은 운영전의 표현처럼 몽중사연을 현실에서 연결하려는 표현의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세상의 명리를 생각하지 않고 명산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말은 현실에서는 비록 실패자가 될 지라도 끝까지 자기의지를 굽히지 않고 세상으로부터의 횡포를 거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내용출처 : http://munsu.new21.org/gojun/금오신화.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