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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이해
○ 갈래 : 평시조, 연시조, 정형시
○ 성격 : 강호한정가, 어부가
○ 운율 : 3․4(4․4)조의 음수율, 4음보율
○ 주제 : 계절에 따른 어부의 한가로운 삶과 흥취
○ 특징
① 초장, 중장 다음에 있는 후렴구(여음구)가 흥취를 돋구는 역할을 함
② 대구법, 의성법, 반복법 등의 표현 기교
③ 참신한 구어체의 구사
④ 순수 국어의 사용으로 참신함과 아름다움을 줌
⑤ 종장을 평시조(3․5․4․3)와 달리 3․4․3․4로 변형
○ 각 연의 주제
* 춘사(春詞) 4 - 어촌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봄 경치
* 하사(夏詞) 2 - 소박하게 살아가는 안빈락도의 삶(물아일체의 경지)
* 추사(秋詞) 1 - 가을 강에서의 어부 생활의 흥취(자부심과 긍지가 나타남)
* 동사(冬詞) 4 - 눈 덮인 겨울 강촌의 아름다움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의 문학사적 전통
① 어부가(漁父歌) - 고려 때부터 전함. 작자 미상(장가 12수, 단가 10수)
② 어부사(漁父詞) - 조선 중종 때. 이현보(장가 9장, 단가 5수)
③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 조선 효종 때. 윤선도. 40수(각 계절마다 10수씩)
◎ 본문
<춘사(春詞) 4>
우 거시 벅구기가 프른 거시 버들숩가
이어라 이어라
漁어村촌 두어 집이 속의 나락들락
至지匊국悤총 至지匊국悤총 於어思사臥와
말가 기픈 소희 온갇 고기 뛰노다
주제 : 어촌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봄 경치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 숲인가?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들락하는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맑고도 깊은 못에서 온갖 고기가 뛰논다.
* 초장 :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의 조화
* 이어라 이어라 :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하는 의미의 여음구.
* : 안개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지국총 지국총’은 노 젓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어사와’는 어기여차 외치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한자의 음을 빌려 적은 여음구.
* 소희 : 소(沼)에. 늪에
* 뛰노다 : 뛰논다
<하사(夏詞) 2>
년닙희 밥 싸두고 반찬으란 쟝만 마라
닫 드러라 닫 드러라
靑청篛약笠립은 써 잇노라, 綠녹蓑사衣의 가져오냐
至지匊국悤총 至지匊국悤총 於어思사臥와
無무心심 白백鷗구 내 좃가 제 좃가
주제 : 소박하게 살아가는 안빈락도의 삶(물아일체의 경지)
연잎에 밥을 싸서 준비하고 반찬일랑 장만하지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청약립은 이미 써 있노라, 도롱이 가져오느냐.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무심한 갈매기는 내가 저를 좇는 것인가, 제가 나를 좇는 것인가.
* 초장 : 안분지족(安分知足). 소박함
* 년닙희 : 연잎에
* 쟝만 마라 : 준비하지 말아라
* 닫 드러라 닫 드러라 :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출범(出帆)의 신호
* 청약립 : 푸른 대껍질로 결은 삿갓
* 녹사의 : 푸른색의 도롱이. 도롱이는 짚,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 무심(無心)한 : 욕심이 없는. 사심(私心)이 없는.
* 종장 :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물심일여(物心一如), 주객일체(主客一體))
* 내 좃가 제 좃가 : 내가 갈매기를 좇는 것인가? 갈매기가 나를 좇는 것인가?.
<추사(秋詞) 1>
物믈外외예 조 일이 漁어父부 生생涯애 아니러냐
떠라 떠라
漁어翁옹을 욷디 마라, 그림마다 그렷더라
至지匊국悤총 至지匊국悤총 於어思사臥와
四時시興흥이 가지나 秋츄江강이 읃듬이라
주제 : 가을 강에서의 어부 생활의 흥취
(자부심과 긍지가 나타남)
속세를 벗어난 데서 깨끗한 일로 소일함이 고기잡이의 생활이 아니더냐.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늙은 고기잡이라고 비웃지를 말라, 그림마다 어옹이 그려져 있더라.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네 계절의 흥이 다 좋지만 그 중에도 가을 강이 제일이라.
* 믈외예 : 세속을 떠난 곳.
* 조 : 깨끗한(淨)
* 생애 : 생활
* 떠라 떠라 :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 어옹 : 어부(시인 자신)
* 욷디 : 비웃지
* 그림마다 그렷더라 : 전해오는 동양화마다 어부의 삶을 그렸더라.
* 가지나 : 다 좋지만
<동사(冬詞) 4>
간밤의 눈 갠 後후에 景경物믈이 달랃고야
이어라 이어라
압희 萬만頃경琉류璃리 듸희 千쳔疊텹玉옥山산
至지匊국悤총 至지匊국悤총 於어思사臥와
仙션界계ㄴ가 佛블界계ㄴ가 人인間간이 아니로다
주제 : 눈 덮인 겨울 강촌의 아름다움
간밤의 눈 갠 뒤에 경치가 다르구나.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앞에는 유리같은 바다, 뒤에는 겹겹이 솟은 아름다운 산
찌거덩, 찌거덩 어기여차!
신선의 세계인지 부처의 세계인지 인간 세계가 아니로다.
* 경믈 : 경치가
* 달랃고야 : 달라졌구나
* 만경류리 : 맑고 깨끗한 바닷물.
* 쳔텁옥산 : 겹겹이 둘러싸인 눈 덮인 산
* 초장 : 대구법
* 초․중장 : 선경(先景)
* 종장 : 후정(後情). 아름답다는 뜻.
* 인간 : 인간 세상. 속세
◎ <어부사시사>에 대하여
윤선도가 65세 되던 해인 1651년(효종 2) 가을 벼슬을 버리고 보길도(甫吉島)의 부용동(芙蓉洞)에 들어가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이다.
봄 노래(春詞)․여름 노래(夏詞)․가을 노래(秋詞)․겨울 노래(冬詞)로 나뉘어 각각 10수씩 모두 40수로 되었다. 고려 때부터 전하던 《어부가(漁父歌)》를 이현보(李賢輔)가 9장으로 고쳐 지었고, 다시 윤선도가 시조의 형식에 여음만 넣어 완성한 것이다. 이현보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시상(詩想)을 얻었다 하나, 그 한시구(漢詩句)의 어의(語意)나 어음(語音)에 상응하는 우리말로 전혀 새로운 자신의 언어를 능란하게 구사하고 다양한 시적 기교를 살려 계절마다 펼쳐지는 어촌의 아름다운 경치와 어부의 생활의 흥취를 아름답게 나타내었다. 특히 초장과 중장 다음에 여음구가 들어 있어 흥취를 돋우며 사실감을 부여한다.
고산의 작품 가운데서도 《오우가(五友歌)》와 아울러 으뜸이라 할 이 작품은 《고산유고》에 실려 전한다.
◎ <어부사시사>의 여음구
<어부사시사>에는 마치 고려 속요의 후렴구와 같은 여음(餘音)이 들어 있어 어부 생활의 흥취를 돋우며 사실감을 부여해 준다. 중장 다음에 나오는 여음 ‘至지匊국悤총 至지匊국悤총 於어思사臥와’는 전편(全篇)이 일정하며, 초장 다음에 나오는 여음은 각 계절의 1수~10수가 모두 다음과 같다. 이것은 배의 출항에서 정박까지의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 주는 것으로 본문의 내용과 잘 맞아 작품의 정서와 의미를 강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 1수 : 라, 라(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 2수 : 닫 드러라 닫 드러라(닻을 들어올려라, 닻을 들어올려라)
* 3수 : 돋 라라, 돋 라라(돛을 달아라, 돛을 달아라)
* 4수 : 이어라, 이어라(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 5수 : 이어라, 이어라(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 6수 : 돋 디여라, 디여라(돛을 내려라, 돛을 내려라)
* 7수 : 셰여라, 셰여라(배를 멈추어라, 배를 멈추어라)
* 8수 : 여라, 여라(배를 매어라, 배를 매어라)
* 9수 : 닫 디여라, 닫 디여라(닻을 내려라, 닻을 내려라)
* 10수: 브텨라, 브텨라(배를 붙여라, 배를 붙여라)
◎ 윤선도의 문학사적 의의
시인 윤선도는 훌륭한 시작품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문학의 역사적 전개에 탁월한 지적 성취를 보였던 인물이다. 윤선도의 우리 시가에 대한 업적은 그 자신의 남다른 음악에 대한 추구와 소양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불우한 생애 속에서도 음악에 심취했으며, 음악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긍의 경지를 구축하여, 당시 조용주 등의 혹독한 비판을 초월, 불멸의 명작을 후세에 남겼다. 그는 음악을 ‘한사(閑事)’로 여겼던 종래의 사대부들의 태도와 달리 ‘밥 먹고 국 마시는 일’처럼 본질적이고 불가피한 일로 여겼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윤선도가 근세 한국 시가 문학사상 대시인으로 군림하게 된 사실과 표리 관계에 있는 중요한 사항이었다.
또한 윤선도는 한국 시인으로서 그가 모국어를 결코 이탈할 수 없었던 사실을 가장 명백히 보여 주었던 시인이라는 측면에서 기여할 만하다. 그는 우리말 시가를 자주 ‘한숨짓고 탄식하여 읊은 나머지’라고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이 나온 줄을 깨닫지도 못한 가운데 노래한 것’이라는 고백을 <몽천요> 발문에 하고 있다. 이는 한 시인이 모국어를 떠나서 시를 짓기 힘든 가장 원초적인 시 제작 상황을 그대로 토로한 것이다.
또한 시인 윤선도는 그가 시를 음악에 철저하게 종속시켰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역시 주목된다. 즉, 그가 스스로의 우리 시 제작 과정을 ‘한숨짓고 탄식한 나머지’라고 했던 것은 당시 모든 시조가 처음부터 음악의 철저한 제약 하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윤선도가 그의 시가 제목으로 당시에 보다 일반적인 ‘가(歌)’나 ‘곡(曲)’이라는 명칭보다는 ‘일정한 곡조와의 관련성을 무시해 버린 명칭’인 ‘요(謠)’하는 명칭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도 역시 음악적 제약을 거의 무시한 채로 시 제작을 했던 그의 행적을 일부 보여 주고 있는 바로 생각된다. 이것은 음악에서 독립해 그 제작과 존재가 가능할 수 있었던 당시 시문학의 한 양상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과 시의 분리’는 시문학의 역사적 전개상 유념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윤선도는 대체로 ‘시가 교훈을 주는 것’이라는 조선왕조 초부터 형성된 유교적 전통 시가관(詩歌觀)을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윤선도는 그러한 교훈주의적 시문학관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 심성을 표현’한다는 정서를 중시하는 근대적 시관(詩觀)에 뚜렷이 나와 있음을 역시 볼 수 있다. 윤선도는 시의 평가 기준으로 정서를 크게 부각시켰고, 그러한 시관은 <어부사시사> 발문에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 -정상균, ‘윤선도의 시조’, 『고전 문학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집문당, 1994)
◎ 고산 윤선도의 생애와 업적
(출처 : 11월의 문화인물 고산 윤선도, 문화부,1991)
◇ 어디서 태어났나.
고산 윤선도는 1587년 (선조 20년) 음력 6월 22일 한경(서울) 연화방에서 출생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연지동이다. 그의 자는 약이, 오는 고산 또는 해옹이다. 가계를 보면 고산은 해남 윤씨의 시조로부터 16세손이다.
전남의 해남 사람으로 당대의 국부였고, 후에 호조참판에 추증된 어초은 윤효정은 그의 고조가 된다. 고산의 증조인 귤정 윤구는 중종 때에 기묘사화로 해남에 내려와 거주의 제한을 받았으나, 후에 홍문관 교리를 역임하고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
그의 조부 윤의중 역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은 의정부 우참찬에 이르렀다. 의중에게는 유심과 유기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예빈시 부정의 벼슬을 지냈고, 차남은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도 관찰사까지 역임하였다.
고산은 유심의 세 아들 중 둘째이다. 고산의 숙부인 유기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백부 홍중에게 입양되었다. 그런데 유기 역시 아들이 없어 조카인 고산을 양자로 삼았다. 윤선도는 결국 어초은 이래로 명문으로 알려진 사대부 집안인 해남윤씨 가문의 후손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다.
◇ 어떻게 성장했나
고산이 해남윤씨 가문의 승계를 위해 윤유기의 아들로 입양된 것은 그가 여덟 살 때의 일이다. 한창 어버이의 정을 그릴 어린 나이에 친부모의 곁을 떠나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소년 시절 한동안은 해남에서 자랐을 것으로 보인다. 해남의 연동에는 지금도 고산의 고조인 어초은 윤효정이 터를 잡은 옛집이 남아 있고,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고산의 유년 시절 생활 환경을 상상케 한다.
고산은 11세에 산사에 들어 공부하였다. 절에서는 한때 많은 승도들이 모여 대대적인 수륙회를 개최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이에 참관하여 들뜬 분위기였다. 그러나 홀로 독서에만 열중하였다는 이야기는 고산이 어려서부터 그 사람됨이 세상 일에 초연하였음을 의미한다.
15세에는 양부 유기를 따라 안변에 가서 지내기도 했다. 그의 유국도 등의 시는 이 때의 작품이다. 그러나 고산의 성장기는 자주 거처를 달리한 탓으로 오래 사귈 친구도 없이 외로움을 달래며, 일정한 스승이 없이 수학하던 소년 시절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흔히 그를 고독을 싫어하지 않은 선비로 여겨지는 까닭은 이같은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기질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특히 주자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대유학자가 될 인물로 청송을 받았다. 20세에는 기묘사화 이후 금지되어 보기 어려웠던 소학을 구하여 이에 심취하고 생활의 규범으로 삼았다 한다.
◇ 어떤 인물이었나
고산의 일생을 흔히 유배와 출사, 그리고 은둔의 세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고산의 일생은 1671년(현종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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