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한 봄

                                                        권상호

억겁토록

이른 봄이면,

솜 풀이 눈을 뜬다.

대지를 열고 눈을 뜬다.

그 부드러움으로

 

단단한 땅일수록 더

목을 높이 들고 눈을 뜬다.

주린 짐승과 설레발치는 인간이 많이 다닌 길일수록

발돋움하고 눈을 떠 멀리 바라본다.

그 살가운 부드러움으로

 

그러나 지금은 봄을 잊어야 한다.

온몸 뒤흔드는 높새바람이

전신을 뒤흔든 때문만은 아니다.

꽃샘추위로 허리 꺾일세라가 아니다.

굴러온 아름 바위

내 머리 짓눌러서가 아니다.

 

核(핵)이란 씨앗 알갱이 하나

버섯구름이란 묘한 현혹의 가면을 쓰고

바로 옆에서 웃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라도질

나의 DNA 때문이다.

 

가끔은 봄을

유예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