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몇 혼동되는 글자는 탁본을 해 봐야만 확실히 할 수 있을 것 같네.


 

  우리나라에 내어 걸 만한 門閥(문벌)로서는 반드시 安東의 權門을 으뜸으로 일컫는다. 문헌에 의하면 뛰어난 관리들이 계속하여 나와[蟬聯(선련)] 오래도록 영화 누림[奕舃(혁석)]은 일일이 지칭하여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指不勝縷{지불승루)] 오직 유학으로 한 집안을 일으킨 사람으로는 참봉 권공이 최고라고 할 만하다.


  公의 諱는 龍善이고 慶元이 그의 字이다. 上祖께서는 諱가 幸이시며 高麗의 開國 功勳으로 三重大匡壁上亞父功臣의 작위를 받으셨다. 太師로부터 十世에 이르러 諱 英正께서는 政丞三道都別將이시며 이로부터 나뉘어져 派祖가 되셨다. 여러 代를 내려와서 諱 奕께서는 正朝大夫判少府寺事이시고, 다시 五代를 내려와서 諱 自常께서는 通德郎이시며, 諱 永通을 낳았는데 訓練判官을 하셨다. 佳邱에서 龍州의 首洞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諱 필을 낳으셨는데 필께서는 箕子殿參奉을 하셨다.


  다시 六代를 내려와 차례로 諱 益規, 諱 學中 號 晩松, 諱 戩(전) 세 분이 계시는데 각각 公의 高祖, 曾祖 및 祖父가 되신다. 先考 諱 道東께서는 壽職으로 嘉善大夫이시고 先妣께서는 安東 金氏 炳東의 따님으로 乙亥年 六月 初二日에 대대로 살던 집에서 公을 낳으셨다. 公께서는 어려서부터 沈重(침중) 寡黙(과묵)하여 행동함에 어른의 度量이 있었다. 그리하여 식견 있는 사람들은 큰 그릇이 되리라 믿고 그를 소중히 여겼다. 성장하여 공부함에 있어서는 가르침과 독려함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힘써 노력하여 글의 뜻을 일찍 깨쳤다. 더욱이 일상생활에서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이륜(彝倫)]의 실천에 힘쓰고, 어버이 섬기기(事親)를 즐겁게(怡愉) 여겨 기쁨[歡(환)]을 드림으로써 자식으로서의 직분을 다하였다. 부모의 상[兩艱]을 당해서는 너무나 슬퍼하여 몸이 여위어도 더욱 감정을 누르며, 기일을 맞으면 반드시 冠帶를 하고 몸을 깨끗이 하여 조상을 늘 마음에 두고 잊지 않는 정성을 다하셨다. 형제는 세분인데, 公께서는 셋째에 해당하며 날마다 伯氏, 仲氏와 더불어 책상을 나란히 하여 즐기며 놀며, 식사도 함께하고, 잠도 같이 자며, 휘장[幃幔(위만)] 안에서도 화기애애(和氣藹藹)하게 지내며, 형제가 서로 다정하여[壎篪之情(훈지지정)] 春津(?)의 형제와 다를 바 없었다. 집안[宗族]을 돈독하게 이끌고, 고향 마을[鄕黨]에 거처하면서 정을 베풀었다.


  公은 世家의 後裔로서 오직 선대의 아름다움[先徽(선휘)]이 조금이라도 떨어질까 하여 집안을 꼭 붙들었다[扶持(부지)]. 묘역[松楸(송추)]을 돌보고 서리와 이슬이 내릴 때 살피며, 향[芬苾(분필)]을 피우며 제사지냄[薦享(천향)]이 늙어서도 더욱 힘을 써서 조금도 틈이 없었다. 묘도(墓道)와 의물(儀物)이 오랫동안 정비되지 않자 다듬어 흙을 쌓아 세우고, 봉분과 암자[墳菴(분암)]가 기울어지고 무너지자[傾頹(경퇴)] 온 집안이 나서서 힘을 써서[拮据(길거) 중수하고, 송정(松亭)이 오랫동안 지어지지 않자 목재와 물품과 기와를 사서 완성했는데, 이 모든 일이 온 집안이 협력해서 완성되었는데, 공의 효사(孝思), 현로(賢勞)가 아니었다면 어찌 능히 이같이 될 수 있었겠는가?


  만년에도 벼슬하지 않고 편안히 지내다가[유일(遺逸)] 하나의 벼슬을 제수 받으니 남들은 비록 영광스럽다고 하지만, 공께서는 담담하게 여기셨다. 壬辰년 七월 二十四日에 침상에서 돌아가시니 享年 七十七세이었다. 首洞 앞산에 장례를 치르고, 乾座[서북방향] 언덕에 영면하고 계신다. 아내는 密陽朴氏 景春씨의 따님이고, 辛未년 五月에 출생하여 壬申년 正月에 돌아가셨으며, 墓所는 晩村 圓峰의 癸坐에 있다.


  슬하에 二男一女를 두었는데 아드님으로 寧一, 寧祚가 있고, 따님은 高仲林에게 출가하였다[適(적)]. 寧一은 一男 相漢을 낳았다. 寧祚는 二男四女를 두었는데, 二男으로 相洪, 相旭이 있고 四女는 各各 張錫祐, 鄭斗元, 安圭鎭, 曺圭聖에게 출가하였다.


  相漢은 四男三女를 두었는데 아들로는 奇煥, 奇出,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 역임 후 현재 변호사로 일하는 奇銖, 다음으로 奇億이 있다. 딸로는 첫째가 黃在潤에게 출가했고 둘은 아직 어리다. 相洪은 三男으로 聖烈, 己赫, 泰赫을, 相旭은 一男으로 奎赫을 두었다. 公의 玄孫 이하는 적지 않는다.


  아! 슬프도다. 公의 德行은 마땅히 세상에 쓸모 있으나[有爲] 시대의 가치 기준에 변화가 심하여[滄桑(창상)] 쌓아온[蘊(온)] 바를 펼치지 못하니 識者로서 가히 분개할[慨] 만하도다.


  접때[日] 公의 孫子 相漢씨가 河回에 사는 나를 찾아와[謁] 그의 할아버지 행장[狀行]을 내어 보이면서 碑文[羨道之文(연도지문)]을 委囑하였다. 돌이켜 보건데[顧(고)] 늙은이로서 정신이 흐리고[昏耄(혼모)] 글을 배운 바 없으니[無文], 어찌[安] 집에서 소중하고도 어려운 글[重難文字]에 손을 댈 수 있으랴.


  그러나[然] 相漢君은 우리 마을[館]의 사위[賓]인지라 모든 정의(情誼)를 헤아리고 있고, 의리상 끝내 辭讓키 어려워, 그 형편[狀況]을 살펴서[按] 글을 지으니[撰] 다음과 같다.


  銘文에 가로되,


  太祖 太師께서 東國의 기틀을 마련하시니[肇(조)] 후손[子姓]은 번성하고[蕃衍(번연)], 그 아름다움은 헤아릴[億]수 없도다.

  널리 빼어났도다[公挺(공정)] 이 집안이여, 능히 이어받았도다[克承] 선대의 위엄[先烈]을.

  孝道와 友愛로 다반(茶飯)을 즐기며, 詩와 禮로써 소박한 옷 입고 사누나.

  품은 마음[襟懷(금회)]은 넓고 넓으며[坦蕩(탄탕)], 타고난 기품은[器宇] 높고 성하도다[軒昻].

  先朝(선조)를 위한 일에는 誠實하고도 勤勉하며, 부모가 일으킨 일을 자식이 잘도 계승하네[肯構肯堂].

  넉넉한 조상의 음덕(蔭德) 끊임이 없고, 높디높은 자손의 인격은 빛이 나누나[嶷嶷孫曾(억억손증)].

  수동 골짜기에 四尺 빗돌 세워 있고,  上下[冠屨(관구)] 모두 간직한 바이로다[攸藏(유장)].

  아름다운 돌(貞珉(정민)]에 드높이 새겨놓으니[顯刻(현각)], 永世토록 길이 빛나리[彌光(미광)].


檀紀 四千三百二十三年庚午五月


豊山 柳 長 夏 謹撰

不肖孫 相 漢 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