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동 북악 산 중턱에 있는 광복군 합동묘소는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일본군와  교전하다 전사한 열입곱 분의 유골 영현을 한 무덤에 모신 성소(聖所)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대륙을 가로 누비며 일제와 싸우다 가문이 흩어져 몰락하고 후손, 친척이 연락되지 않아 1967년 광복군 동지회 주관으로 한 봉분에 같이 모시게 되었읍니다.
  8.15 행사일에는  보훈처에서 나와 공식적으로 제례를 지냅니다만  구정과 추석에 지내드려야 도리에 맞다고 판단되어  흥사단 북부지회와 의정부 지회가 같이  지금까지 7차에 걸쳐 무후제(無後祭)를  지내 왔읍니다.
 그런데 17 분의 신위(神位) 지방을 정성 들여 쓰기가 쉽지 않아  도정 선생님께 부탁드린 바 , 먼길을 택시로 타고 와서 즉각 명문으로 써 주셔서 이번 추모제 행사를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 중에는 이름 모를 새들도 위로  소리내어 날아 가고  끝나고 지방을 태울 때도 그 재는 하늘로 잘 솟구쳐 날아 갔읍니다.
 서울 동작동 ,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 보다도 더욱 먼저 모셔야 하는 광복군 묘소입니다만 후손이 없음으로 제 때에 향응하지 못한다는 건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으로 여겨집니다.
  이 묘소에 남아 있는  17분 중에는 1943년 중국 태항산 전투에 희생된 분이 네 분인데 이러한 분들의 희생으로 중국 공산당  팔로군이 살아 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팔로군 사령부가 일본군 40만명에 포위되어 도로는 전부 차단되어 전멸, 질식 직전에  우리 광복군, 조선의용군 들이 지게부대를 편성해서 게릴라식으로 식량, 소금, 실탄을 보급했기에  포위망에서 살아 났기 때문입니다.  또 정보 활동하시다 체포된 분은 혀를 깨물어 자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선열 수천명이 희생되어 우리는 반쪽이나마 광복을 했고 중국은 살아 났읍니다. 그러나 헤게모니 투쟁에 위협세력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그 막강했든 조선의용군의 상당수를 북한에 보내  6.25의 남침 주력이 되게 하였으니  이 한스러움을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어야 할까요?
 6.25 전쟁이 없었드라면 절대로 중국에서 조선족이 당당하게 살고 있지 지금처럼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거로 봅니다.
 전 국가보훈처 이종정 차장님께서 7억 예산을 배정해 주어 입구와 도로는 정비되었지만 이끼에 덮혀 있는 봉분과 주변의 아까시아 잡목등은 다시 정비되어야 할것 입니다.
 뜻있는 분이 계시면 내년도 구정에 동참하시면 기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