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歸去來辭 - 晉 陶淵明(365~427) 41세 작품.
☞ 세 번 벼슬살이. 마지막의 팽택령(彭澤令)을 80일 만에 관두고 歸園田居함에 따른 기쁨과 전원생활의 즐거움 및 인생관을 노래. 魏晉시대 정점에 서 있는 작품.
* 辭賦 : 중국 楚辭의 형식에 의거한, 散文에 가까운 韻文. 抒情的인 ‘辭’와 서사적인 ‘賦’를 아울러 이르는 말.
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외적 이유) 既自以心為形役, 奚惆悵而獨悲?(내적 이유)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과거와 미래에 대한 깨달음) 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벼슬길에 대한 깨달음) 舟搖搖以輕颺, 風飄飄而吹衣。(귀가의 즐거움-외관)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귀가의 즐거움-심리)
乃瞻衡宇, 載欣載奔。僮僕歡迎, 稚子候門。三徑就荒, 松菊猶存。携(본자,攜)幼入室, 有酒盈樽。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顏。倚南窗以寄傲, 審容膝之易安。園日涉以成趣, 門雖設而常關。策扶老以流憩, 時矯首而遐觀。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桓。
歸去來兮, 請息交以絕遊。世與我而相違,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農人告余以春及, 將有事於西疇。或命巾車, 或棹孤舟。既窈窕以尋壑, 亦崎嶇而經丘。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善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已矣乎! 寓形宇內復幾時, 曷不委心任去留, 胡為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鄉不可期。懷良辰以孤往, 或植杖而耘耔。登東皋以舒嘯, 臨清流而賦詩。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1. 歸去決意와 實行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意志)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전원이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이미 스스로 마음을 육신의 노예로 삼았으니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며 홀로 비통해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닫고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다가올 일은 좇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실로 길을 잘못 들었으나 멀리 벗어나진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지금이 옳고 어제(벼슬살이)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寓言’편.
舟搖搖以輕颺 (주요요이경양) 쪽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산들산들 옷깃을 스친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앞길(고향 길)을 물어보지만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稀微)한 것이 한스럽구나.
2. 家庭生活과 周邊環境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도리(처마)와 지붕이 보이니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쁘기도 하고, (걸음이) 바쁘기도 하다. 载:文言助司。
僮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는 환영하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자식은 문에서 기다린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세 갈개 길은 황무지가 되었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그대로구나.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놈 손잡고 방에 들어가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술이 있어 항아리에 가득하구나.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병과 술잔 끌어당겨 자작하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창에 기대어 마음을 푸니(호방한 마음 기탁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용슬의 편안함을 환히 알겠노라.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동산을 날마다 거닐며 취미를 삼고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은 달아 놓았지만 늘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로이유게) 지팡이로 노구 받들며 물 흐르듯 쉬고(流憩)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멀리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봉우리에 떠오르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새들은 날다가 지치면 돌아올 줄 안다.(感情移入, 歸巢本能, 새도 돌아올 줄 아는데...)
景翳翳以將入 (경예예이장입) 날은 어둑어둑 해는 지려 하는데(餘生暗示)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홀로 선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이후의 反轉, 隱者의 세상에 대한 고민)
3. 獨樂과 自然親和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確認과 安堵感)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교유를 끊어버리자.(息交絶遊)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이제 서로 어긋났으니
復駕言兮焉求 (부가언혜언구) 다시 수레 타고 나간들(벼슬한들) 무엇하나?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달래련다.(悅話樂優)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장차 서쪽 밭에 들일이 생기겠다.
或命巾車 (혹명건거)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서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이미 아름다운 깊은 골짜기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또한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기도 한다.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생기발랄하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흐리기 시작한다.
羨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음을 부러워하지만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내 삶이 가다가 멈출 날이 멀지 않음을 느낀다.(道家的 - ‘其生若浮,其死若休(삶은 흘러감, 죽음은 멈춤)’
4. 人生觀과 決心
已矣乎 (이의호) 아, 그만두자.(됐다. 고생할 만큼 했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부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다시 얼마나 될까?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고
胡爲乎遑遑欲何之 (호위호황황욕하지) 어찌 허둥지둥 어디로 가려하는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부귀(돈과 지위)도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며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신선 세계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신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다가
或植杖而耘耔 (혹치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를 세워 놓고 풀을 뽑기도 한다.
‘植杖耘耔’와 ‘橫槊賦詩’(횡삭부시: 창을 내려놓고 시를 지음- 曹操)’의 대비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東坡)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죽음에로 돌아가리니(首尾相關)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부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엇을 두려워하랴!
반악(潘岳)의 는 ‘優哉游哉聊以卒世(우재유재료이졸세: 편안하고 유유자적하게, 애오라지 한세상 마칠 따름이다.)’
가의(賈誼)의 는 ‘知命不憂 細故蔕芥兮 何足以疑(자신의 수명을 알아도 근심하지 않으니, 사소한 어려움이야 어찌 족히 두려워하겠는가?)’
* ‘마음고생’이란 뜻으로, 이 ‘形役(형역)’을 사용한 예
1. 金時習 - 매월당집(梅月堂集)
終日芒鞋信脚行 (종일망혜신각행) 온종일 짚신 신고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데,
一山行盡一山靑 (일산행진일산청) 하나의 산을 다 걸으니 또 하나의 푸른 산.
心非有想奚形役 (심비유상해형역) 마음은 생각이 없는데 어찌 육신의 노예가 되며,
道本無名豈假成 (도본무명기가성) 도는 본래 이름이 없거늘 어찌 거짓으로 이루리오?
宿霧未晞山鳥語 (숙무미희산조어) 간밤의 안개 사라지지 않았는데 산새 지저귀고
春風不盡野花明 (춘풍부진야화명) 봄바람 여전히 일고 들꽃은 눈부시구나.
短笻歸去千峰靜 (단공귀거천봉정) 짧은 지팡이로 돌아오는 길 뭇 봉우리 고요한데
翠壁亂煙生晩晴 (취벽난연생만청) 푸른 절벽의 짙은 연기는 저녁 햇살에 피어오른다.
*晞(마를 희; xī) 稀貴
*에서는 ‘宿露’
*押韻 : 庚
2. 丁若鏞
觀其氣色樂莫樂(관기기색낙막낙)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了不以心爲形役(료불이심위형역)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樂園樂郊不遠有(낙원낙교불원유)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何苦去作風塵客(하고거작풍진객)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오?
* 寄傲 : ‘복잡한 마음 내려놓으니’의 뜻. 陸雲(서진 최고의 문장가인 陸機의 동생)의 . 소동파는 바로 도연명의 이글에서 따 이란 시를 지었고, 조선시대 純祖의 아들 孝明世子)는 이 단어를 따서, 창덕궁 후원에 기오헌(寄傲軒)이란 건물을 지음.
* “自酌, 怡顔, 寄傲, 容膝, 易安, 成趣, 常關, 流憩, 遐觀 등 은거의 뜻을 내포하는 어휘 알맞게 포치하였다” - 송기한
위진시대(魏晉時代)에 하안(何晏)이 도덕론을 짓고 왕필(王弼)이 노자주(老子注)를 저술함으로써 노자사상은 위진 현학의 기본사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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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 노자와 21세기 제01강 21세기의 3대과제(상) -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
노자 도덕경
노자는 사람 중심
道德morality과 관련 없다. 어쩌면 도덕을 거부하는 내용이다.
도경과 덕경의 합본이므로 도덕은 우연의 명칭이다.
길과 얻음(덕은 得)으로 번역하기도.
내 글이 고전이 될 수 있을까.
classic 곧 문명을 움직이는 힘이다. 예컨대 신약성경.
고전은 사실 저자를 모른다. 傳寫 곧 베껴쓰기 때문.
비단에 쓴 책 帛書와 대에 쓴 책 竹簡이 있다.
*** 죽간은 篇으로 세고, 백서는 卷으로 센다.
중국 그림 – 황하와 장강, 장강 중간에 동정호, 동정호 북쪽은 호북성, 남쪽은 호남성이다. 호남성 長沙(모택동 고향) 馬王堆 분묘에서 1973년 帛書 출토. - 거기에서 노자 출토
BC168년의 무덤. 고증학자의 주가 요동.
1993년, 호북성 荊門에서 郭店?에서 죽간 나옴(BC300) - BC세기에 노자가 엄존했다는 사실. 그런데 2/5밖에 없다. 이것이 진짜. 그 사이 3/5이 불어났다고 추정.
노자는 지혜의 서,
배고프고 힘없으면 서럽다. - 富國强兵을 위하여 정신없이 산 20세기. 지혜를 잃어버림.
21세기 3가지 과제 – 인류의 희망과 폐망의 문제. 노자의 필요.
1. 인간과 자연의 화해
2.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3. 지식과 삶의 화해
1. 인간과 자연의 화해 – 그린 벨트.
2.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 종교는 좋은가 나쁜가. 모든 전쟁을 생각하면? fundamental(원리, 원칙). 일본 기독교인들의 점잖음. 성경 공부 정도.
1900년 돌아가신 니체 ‘신은 죽었다’ - 신의 사망 선고. 20세기처럼 종교가 극성을 떤 적이 없다.
금강경 강의.
종교는 믿음이다. 따지지 말라. 과연 종교는 믿음인가. 상식도 믿음이다. 종교만이 믿음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다 믿음이다.
종교는 신이다. 그래서 신학이라 한다. 불교는 무신론. 그래도 종교가 된다. 유신론, 무신론은 다 틀린 명제. 그럼 종교란 무엇인가. 난제. 도올 ‘삶의 의미’ - 자식이 의미면? ‘삶의 기쁨’을 주면 된다. 종교를 교리로 생각하지 말자. 종교는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종교는 삶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한 집안에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도 싸우지 않는 것은 5백년의 confucian rationalism(유교적 합리주의)의 공덕 덕분이다. 유교 문명의 축적. 우리나라만큼 유교적 문명 위에 얹혀 있는 나라는 없다.
evangelism(모든 종교의 전도주의). 기독교만이 배타적 전도주의. 이제는 쌩으로 전도하면 안 돼. 확신을 갖고 안 믿는다. 예, 성씨마을 깨어짐. 김치, 마늘 욕하던 일본이 여기에 미침. 과학과 기술의 랑데부로 많은 것이 파괴. localism(모든 종교의 지역주의). 구약은 폐쇄적인 유태민족들의 습관. 그것을 깬 것이 신약인데, 구약을 믿고 있다.
3. 지식과 삶의 화해
삶이 먼저다. 20세기는 지식이 삶을 이끌었다. 지금은 모두 교실 내의 문제다. 난장판.
吾未見好德如好色者也 – 논어, 위령공편.
食色(식욕과 색욕) - 맹자. 길거리는 온통 이 둘뿐.
도올은 식색보다 공부가 더 재미있음. 한두 번 재미있지 삭신(몸의 근육과 뼈마디)이 쑤심. 공부는 아무리~~~ 해도 재미있음.
힙합도 얼마나 고생.
공부는 집중력이 안 생기기 때문. 지식은 삶에서 떠나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면 아무도 안 봐 주는데, 헛소리 하면 웃어주기 때문이다.(도)
지식의 보편화. 지식의 쉬운 접근. 과거에는 원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억압도 방치도 안 돼. 뭔가 노하우가 생길 것임.
강의보다 삶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길...
EBS 기획특강 - 김용옥의 동양고전_노자와 21세기_3강,제1장 도가도 비상도_#001
長袍(청나라 도포)와 양복. 양복의 평상복으로 생각 - 짱꼴라. 생철(서양철의 준말)
儌(갈 교; ⼈-총15획; jiǎo) 구하다, 속이다.
徼(구할 요; ⼻-총16획; jiào,jiǎo) 구하다, 훔치다, 순찰하다.
道: the Way(A. Waley 역) - 앞길이 漠漠하다.
predictability(예측가능성) 예언[예보]할 수 있음. 갑골문. 해달별도 길이 있다. law of nature. 자연 현상이 자연의 법칙, 인간의 법칙이 도. 다도, 태권도. 길 아닌게 없다.
monosyllabic language(단음절 언어) - 발음적으로 경제적 언어
bitter rice(쌀. 1950, 이태리 영화) - 도망가는 두 남녀. ‘하늘이 파랗다’
카노오 지고로오(嘉納治五郞, 1860~1938) : 유도의 창시자. 동경대 출신, 도가 사상.
常道의 常이 문제, ‘영원한 도’로 풀이하면 잘못. 동양에는 영원불변이 없다. ‘말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다. 말로 해결할 수 없다. 말~~~~ 문제.
말보다 실천, 똑똑한 사람보다 묵묵한 사람.
서양에 항상 뒤져온 과학. 과학의 언어다. 가도지도.
조세프 니담(Joseph Needham)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자.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교수. 曰
‘인간의 Reason(이성)이나 Logic(논리)마저 거부했기 때문에 희랍인과 같은 연역적 사유가 탄생할 수 없었다.’
유가와 달리 도가는 언어로부터 해방시켜 주는냐의 문제. 수학은 기호화된 언어. 수학적인 데에는 동양인이 약나 언어의 맹신에서 생기는 인류문명의 피해는 줄여주었다.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騈文 - 노자
楚辭(전국시대 초나라 屈原의 시가)
노자의 시이다.
중국어는 tonal language(성조 언어)
王弼(魏, 203~226. 23세에 죽음. 16세에 주석. 그런데 주역(중국 우주론의 대표 경전)의 가장 위대한 주석. 대략 20세.
모차르트 6세 작곡은 이해가 가지만, 철학은 미스테리.
오늘날, 같은 것 먹고 같은 거 보고... 획일주의. 자유를 모르고 다양성 없다. 풀면 풀수록 히틀러처럼 된다.
열 살의 천재 얘기 들어야. 21세기적 발상 이미 실험 끝남.
불교사상과의 만남 - 一切皆苦 - 고의 원인이 欲. 滅執(집을 없앰)은 무욕사상과 같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불교사상을 말하고 있다. 위대한 중국 사상!
百家爭鳴- 춘추전국시대의 자유.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 도가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불교가 들어옴. 苦集滅道. 그러나 노자의 스케일은 크다 – 유욕의 세계나 무욕의 세계나 같다. 차양자동. 玄. 玄妙 - 노자에 어원을 둔 말.
노자와 21세기 – 15강 대승불교와 노자
Let it be.
It seems like~(似) 노자 어법. is는 존재론에 빠지기 쉽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기자불립 과자불행) 뒷꿈치 드는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넓은 걸음 하는자는 멀리 갈 수 없다.(24장)
解其紛(4장. 얽혀있는 것을 풀다) Gordian Knot: 아주 힘든 일. 교착상태. 알렉산더 대왕이 칼로 쳐서 잘랐다는 소아시아의 고대 국가 프리기아(Phrygia)의 왕 고르디아스의 매듭.
발상의 전환, 임기응변, 결단력 등이 의외로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 정공법을 피해가는 것이 때로는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 지나친 좌고우면은 오히려 일을 그르침. 장고 끝에 악수.
3학년 3-1 성준호(보컬) 3-1 유민서(통기타) 3-2 이승진(통기타) 3-4 이정원(피아노, 대표)
2학년 2-1 백선열(드럼) 2-1 이주환(베이스) 2-4 심예주(보컬)
1학년 1-1 우현준(일렉기타) 1-4 김강빈(드럼)
* 곡명: 나는 나비, 잘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