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필(運筆), 붓은 잠들지 않는다
수월 권상호
우주는 한순간도
가부좌를 틀지 않는다
해와 달은 애증의 거리를
좁혔다 늘리며 타원을 그리고
별들은 여행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제 궤도를 지켜낸다
오밤중에도
잠들지 못하고
제 몸을 낮추며 뒤척이는 강물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등성이에 올라
졸 듯 쉴만도 한데
마술처럼 사라지는 바람
춤을 멈추면 썩는 강물
노래를 멈추면 질식하는 바람
내 몸의 강물인 핏줄과
내 몸의 바람인 호흡도
혈풍(血風)이란 이름으로
흔들리고 있는가
붓을 든다는 것은
그 거대한 운행 속에
내 삶의 배 위에서
노(櫓)를 잡는 일
먹물은 향기로운 피가 되어
종이의 혈관을 타고 흐르고
붓끝은 지느러미처럼
제 몸을 엎치락뒤치락하며
새 길을 연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흔들리는 법
박제된 글씨가
자기만의 우주를 돌며
떨 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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