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망선루 복원기념 서예대회

2003. 10. 11(토) 오후 2시부터 청주 중앙공원 망선루에서 3회째 실시된다.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거주자는 누구든 참가할 수 있고 참가비는 2만원이다. 휘호내용은 일봉 나숙용의 '망선루'라는 7언절구의 시이다.

주최 : 청주예총사무국 043-223-4048
주관 : 해동연서회(회장 김동연)

망선루(望仙樓)는 고려시대 관아 부속누정으로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려 공민왕10년(1361)홍건적의 침입때 개경이 함락되자 왕은 왕비와 안동으로 파천하였다가 그해 11월 청주에서 수개월 피신하며 홍건적의 난이 평정되자 공민왕이 청주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고 합격자의 방을 이곳에 붙였다고 한다.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건축물이다.
* 현재 : 중앙공원내로 이전 망선루 구교사 복원(2000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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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망선루 이전(移轉) 복원(復元) 상량문
 상당(上黨) 낭성(娘城) 옛 이름
서원(西原) 천 년 옛 고을은, 민족의 정기 담은 백두대간 동으로 흘러내리고 비단결 금강(錦江) 하늬바람 따라 달리며 굽이치는 한수(漢水) 북향 길을 잡는 서기(瑞氣) 어린 곳이다. 먼 옛날 두루봉 선인들의 자취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무상할사 남으로 나는 까치 소리 문득 그립고 옛 선인들의 모습, 아련한 흔적 꿈처럼 희미하다. 솥발 형세로 서로를 겨루던 삼국 시절 청주는 나라의 중심이었으니 청주인들의 불편부당하고 온유한 심성은 그로부터라고 전해 온다.
        고려(高麗)의 옛 이름은 청주(淸州)라 했는데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하늘 아래 맑은 고을 이 곳에, 달나라 계수나무 은도끼로 찍어 내고 구름 속 목란(木蘭) 금도끼로 끊어 내어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솜씨로 지은 누각(樓閣) 하나가 날아갈 듯 우뚝 섰다. 그 이름 고려 적엔 취경루(聚景樓)라 했으니 묘하다 그 자태, 늠름하다 그 형세. 호서의 명루(名樓)로 자자한 취경루엔 낮과 밤을 이어서 은하수 푸른 꿈 하염없었고 우짖는 연작의 소리 요란했었으리. 따사롭게 부는 바람 취경루를 휘감고 흘러갔어도 표표히 떠가는 맑은 하늘엔 깃털 구름 예전 같으며 서리 앉은 기와 싸늘하건만 고려인들의 따스한 숨결 아직 식지 않았어라. 홍건적의 난(亂)이 평정된 후 공민왕이 어가(御駕)를 머물러(서기 1361) 널리 인재를 구하고자 과거를 시행할 제 이 누각에 붙었던 선비의 이름 바람결에 들려오는 듯하니 아, 옛적 그 시절 아득하여라.
        충절이 살아 있는 고을 조선(朝鮮) 땅 청주에는
의로운 선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온유한 사람들이 다정하게 모여 살던 아름다운 고장이었으리. 사람들은 청주인을 일러 의리(義理)를 알고 겸양(謙讓)을 지킨다고 했으니 나라의 동량(棟樑)을 셀 수 없이 길러낸 그 이름 어찌 헛되리오. 산천은 의구하고 인걸은 간 곳 없으되 학의 날개 용의 기둥 망선루 그 자태에 선녀(仙女)와 신선(神仙)도 마음을 빼앗겼으리라. 영욕(榮辱)의 세월은 흘러서 시인 묵객들의 발자취가 끊이지 않던 목조 누각 취경루가 쇠락하여 안쓰러우매 목사(牧使) 이백상(李伯常)이 중수(重修)하고 한명회(韓明澮)가 망선루(望仙樓)란 이름을 새로이 지어(세조 7년, 1461) 둥두렷이 편액을 걸었다.
        아! 청천의 벽력이어라,
비분에 망연(茫然)했던 날이 있었으니 간악한 일제는 삼천리 강토를 유린하고 이천만 조선 사람을 능멸하매, 그 날 망선루에 적신 눈물과 남석교에 쌓인 비감(悲感)은 한이 없을진저! 나라 잃은 서러움은 사무치는 아픔이라. 간악한 일제는 선조들의 숨결 가득한 청주성(淸州城)을 강점하고 혼백(魂魄)이 스민 유적을 훼손하였으니 지하의 귀신도 진노(震怒)케 한 천인공노할 만행(蠻行)이었도다. 참람(僭濫)한 제국의 칼날 명치끝을 겨누고 사람 사람의 창자가 에는 듯하여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 신채호 손병희 선생의 정신과 기백으로 민족을 일깨웠으니 아름답고 장한 그 이름 후대에 영원하고 또 영원하리라. 오호라, 애절하다 일제는 서리 까마귀 울부짖던 날 망선루를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무덕전(武德殿)을 지었을 때(1921), 역사의 숨결이 서린 700여 년 흔적은 비통한 눈물 속에 허물어졌어라. 애통하고 절통하다 나라 없는 설움이여!
        그러나 어찌 세상에 기개가 없다 하랴!
찬이슬 밤바람에 젖은 채 수년간 복원되지 못하다가 뜻 있는 사람들의 공덕과 원력(願力)의 힘으로 제일교회(현 상당구 남문로 1가 154번지) 안에 이전 건축할 수 있었으니(1923),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하의 선조들께서 감복하신 음덕(陰德)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망선루 이전은 한 건축물의 재건이 아니라 지난 역사를 흠모하여 겨레의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국권회복의 비장한 의지였던 것이요, 나라의 동량을 길러 도탄에 빠진 민족을 구하고자 하는 원대한 뜻이었던 것이며, 선인들의 정신이 담긴 민족의 문화 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으니, 청주인들의 빛나는 정성이 이루어 낸 자랑스런 일이었도다. 삼천리 국권 회복과 교육 입국의 애국계몽운동 정신이 살아있던 망선루 이전 사업은 청주인들 최초의 시민운동이라 해야 마땅하리로다. 이 때에 그 뜻을 세우고자 잠을 못 이루었을 함태영 목사와 김태희 장로, 최창남 선생을 비롯하여 구름처럼 모인 분들의 높은 뜻을 후대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하리라. 또한 자리를 옮겨 새 생명을 얻은 후 청남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교가 둥지를 틀었고 근대 교육의 산실이자 민족 교육의 요람으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재를 길러 낸 그 학사(學舍) 그 시절의 눈물 젖은 사연(事緣)을 후세인들은 깊이 간직해야 하리로다.
        무릇 우주는 큰 집이라 했던가.
사람은 집에서 나서 집에서 자라고 마침내 우주의 큰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놀라워라 세상의 이치여, 한 치도 빈틈이 없네. 무한한 우주는 우리를 감싸고 유장한 세월 우리를 인도하노니 사람이 산다는 것은 오묘한 이치라고 하지 않을 수 있으련가! 흐르는 세월 빛처럼 빠르고 사람의 자취 눈처럼 녹는데 천지는 한 순간도 변하지 않음이 없다 한 옛 글은 하나도 그르지 않아 오늘 우리는 이 누각에서 선인들의 숨결을 느끼고 역사의 흔적을 보노라. 옛말에 이르기를 나무는 인간과 상생(相生) 재질이라 몸과 정신을 편하게 하므로 나무로 지은 집은 우주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 수수백년 쌓인 영욕과 풍상을 겪은 고색창연한 목조 망선루는 청주의 크나큰 자랑이어라.
        위 증즐가, 세월은 살같이 흘러
깊은 여름 무성한 잎 하늘로 치솟고 햇볕 따사로운 서기 2000년 단기 4333년 7월 오늘, 우리는 선인들의 자취를 되살리고자 읍성 관아의 옛터 중앙공원에 누각을 이전 복원하는도다. 이 일은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청주시민 60만의 이름을 모아 뜻을 세워 선조들께 공경(恭敬)의 마음을 올리고자 우암 바람 무심 물결에 정히 씻은 몸으로 일을 도모하나니,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 지붕의 옛 모습을 살리는 대역사(大役事)로다. 지나는 길손이시여 부디 지난날의 사연을 잊지 말고 옛적의 자취를 귀하게 생각하사, 망선루 아름다운 이름을 길이길이 보전토록 힘쓰소서. 우리는 삼가 민족 건축의 들보를 새로 얹고 삶의 터를 깊이 닦아서 선인들의 숨결을 여기 옮겨 세우노니 하늘이시여 무한한 우주여, 우리의 조그만 정성이 무궁토록 전하게 해 주소서.
        맑은 날의 밤하늘 은하수처럼,
하늘에 새긴 비취 기둥처럼 오늘 상량 후 하늘이 도우시사 거친 풍파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광활하고 그윽하며 아름다운 망선루로 남게 하소서. 바람은 다시 맑고 달은 더욱 밝으니 신선도 누대를 사랑하시고 모든 청주 시민이 행복하길 비옵니다. 원컨대 취경루 옛 이름이 새겨지던 그 날처럼 민족이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망선루 아름다운 현판이 걸리던 그 시절처럼 사람의 정리가 두텁기를 기원하면서,
        상량(上樑)의 예 갖추어 깊이 고개 숙이나이다.
                                  2000년  7월  일
                              글 충북대학교 교수  김  승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