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서예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는 황석봉씨. 그가 오랜 침묵 끝에 일을 저질렀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순례하던 그가 기어코 또 하나의 반란을 일으켰다.
‘서예전 같지 않은 서예전.’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한 작품은 書藝고 나는 書藝家다." 라고 갈파하며 27일까지 새로 단장한 소격동 學古齋에서 `不立文字展' 을 열고 있다. 전시 제목은 문자를 쓰지 않고도 문자가 지니는 의미를 전달한다는 뜻이다.
캔버스 또는 나무에 아크릴과 먹을 써서 추상 회화나 액션 페인팅 같은 화면을 일군 그는 그의 작품들을 `造型書藝`, `氣 art` 라고 불렀다.
마음에 이는 파장을 그 刹那에 點과 劃으로 터뜨리는 것을 그는 `不立文字`, 즉 문자에 기대지 않고 마음으로 그 의미를 전달하는 깨달음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예 정신과 회화 양식을 접목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뜻 그대로, `불립문자` 연작은 관람객에게 `서예인가, 회화인가`를 고민하며 보게 만든다.
출품작은 서예의 정신과 회화의 양식을 접목한 현대적 조형서예. 서예의 기본인 지필묵(紙筆墨)을 사용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종이 대신 캔버스나 오동나무 상자를 쓰고 붓 대신 나이프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의미가 전달되는 문자도 찾아볼 수 없어 언뜻 보면 추상회화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황씨는 회화가 아니라 서예라고 주장한다. 형식의 변용은 있을지라도 정신과 행위는 서예라는 것이다. 점,선,획을 한자의 상형에서 빌려온 만큼 조형성과 행위성은 틀림없이 서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 전시는 1991년에 창립한 한국현대서예협회의 초대 이사장을 지낸 황씨의 10번째 개인전. 지금과 같은 서예작업은 1998년 7번째 개인전 때부터 선보였다. 그는 자신의 서예 행위가 기운을 발산하는 방법이라며 예술적 지향을 ‘氣 art’라는 개념으로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