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표암 강세황의 詩·書·畵·評

 

거대한 바위 산을 지나가는 여행객을 그린 ‘영통동구’는 서양화 원근법을 쓴 강세황의 문제작으로 한국 회화사가 손꼽는 걸작이다.

 

 

한국서예사특별전23 - 豹菴 姜世晃

푸른 솔은 늙지 않는다(蒼松不老)

18세기 예술의 큰 스승 - 표암 강세황의 詩·書·畵·評

 

예술의전당은 한국서예사특별전 23번째로

‘푸른 솔은 늙지 않는다 蒼松不老’를 주제로

<18세기 예술의 큰 스승 - 표암 강세황의 詩·書·畵·評>을

2003년 12월 27일부터 2004년 2월 29일까지 서예박물관에서 개최한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진주강씨로 중시조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 963-1021)의 17세손으로

1713년(숙종39) 윤5월 21일, 서울 남소문동(南小門洞, 현재 장충체육관 자리)에서

아버지 문안공(文安公) 백각(白閣) 강현(姜鉉, 1650-1733)과

어머니 광주이씨 익만(翊晩)의 따님 정경부인 이씨 사이에서

3남 6녀 중 막내인 아홉 번째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등에 흰 얼룩무늬가 표범처럼 있었는데,

그의 아호인 표암(豹菴)은 여기에 연유하는데,

표암가문은 자신을 포함하여 아버지 현과 조부 백년(柏年) 등

3대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를 자랑한다.

그는 32세부터 30여년간 일체의 벼슬길을 단념하고

안산(安山) 초야에  묻혀 학문과 예술에 전념했다.

72세에 사신으로 연경(燕京)을 다녀온 이후 변화된  안목으로 

당시  영조ㆍ정조시대 조선의 사회 문화 전반을 휩쓸었던

변화의 기운을  예술을 통해 표출했다.

30여년을 초야에 뭍혀 지내다가

말년에 벼슬길에 나아가 중국에까지 이름을 높인

기인다운 풍모가 여럿 전해온다.


 

세상일에 매달리지 않고 자의식이 충만한 삶을 즐겼던 그의 내면은

'푸른 솔은 늙지 않는다(蒼松不老)'는 절명구(絶命句) 한마디에 담겨 있다.

 

표암은 여든 가까운 장수를 누리며

 

그가 살았던 18세기 조선 화단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대 중국 화론은 물론 서양 그림에까지 안목을 넓혀

표암은 시 잘 짓고 글씨 빼어나며 그림 좋아서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문인예술가이자,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화에 대한 탁월한 역사적 안목과 이론을 바탕으로

윤순(尹淳, 1680-1741), 이한진(李漢鎭, 1732-?), 정선(鄭敾, 1676-1759),

심사정(沈思正, 1707-1769), 김홍도(金弘道, 1745-?) 등

당시 서화계 주역들의 작품에 대해

방대한 비평을 남긴 서화비평가(書畵批評家)이자

겸재 정선(1676~1759), 단원 김홍도(1745~1806?),

자하 신위(申緯, 1769-1847) 등을 키워

시대를 앞질러 이끌만한 지도역량을 발휘한

18세기 조선 문예계의 큰 스승이다.

 

"취하지 않으면 미칠 수 없고

미칠 때에는 자못 시를 짓지/(…)

스스로 감상하고 스스로 인정할 뿐

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네"

 

는 표암이 마흔 두 살 때 지은 시로

풍류와 흥취를 알았던 그의 예술혼을 엿보게 한다.

전시는 크게 여섯 가지 주제로 짜여졌다.

표암의 자화상과 초상화를 다룬 '나는 누구인가',

산수.인물과 서화를 중심으로 한 '남종 문인화의 토착화',

시.글씨.도장을 모은 '취하지 않으면 미치지 않는다',

사군자와 초충화훼를 돌아본 '탈속.고아의 세계',

문인예술가로서 나눈 폭넓은 교유와 서화비평을 엮은 '술 한 잔에 시 한 수',

조선조가 꼽는 명문가였던 표암 가문의 필적과 장서를 소개하는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다.

이번 전시에는

초상 3건, 글씨 40건, 산수인물(山水人物) 30건,

사군자및  초충화훼(草蟲花卉) 18건,

서화평(書畵評)과 교유(交遊)관계를 보여주는 작품 23건 등 5개 분야 114건의 작품과

표암 가문의 필적(筆跡)과 장서 65건등

총 179건의 작품과  자료가 소개된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표암을 다룬 전시로는 가장 크고 충실함을 자랑한다.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영통동구(靈通洞口)'는

거대한 바위 사이를 말 타고 가는 여행객을 그린 것으로

독특한 채색과 인상주의적인 묘사로

그가 서양화의 원근법을 빌려오지 않았나 짐작하게 하는

우리나라 회화사의 한 문제작이다.

특히 '강세황 칠십일세상'은

초상화가로 이름난 이명기(李命基)가 그렸다고 짐작돼온 걸작으로

그동안 표암이 죽은 뒤 추모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번 전시 준비 과정에서 초상화 제작 일지인 '계추기사(癸秋記事)'가 발견돼

조선시대 초상화 제작 과정을 상세히 전해주는

귀한 자료 발굴의 쾌거를 올리게 됐다.

'계추기사'에 따르면 이 초상화는 1783년 7월부터 8월에 걸쳐

1756년생인 이명기가 정조의 어명을 받아

열흘 만에 그리고 다시 아흐레 동안 배접과 궤 제작 등을 거친 것으로

비단 10냥, 화원 사례비 10냥 등 지금 기준으로 4백만원쯤 되는 50냥이 들었다.

이동국 학예연구사는

"'계추기사'는 특히 족자를 만드는 표구 과정이 자세히 서술돼 있어

우리나라 표장 기술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이중 79세 작고하던 해 겨울에 쓴 표암의 말년작 「표암유채첩」은 

연행(燕行)이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19세기 '완당바람'을 감지케한다.

표암은 중국에서 들어온 남종문인화를 조선에 토착화시킨 인물로  평가받고있는데

이번  전시에는 그 토대를 확인하는 작품들이 대거 공개된다.

기존에 알려진 '방동현재산수도'  '계산심수도' '방심석전필벽오청서도'외에도

'방석도필법산수도'  '방공재춘강연우' '표옹서화첩'등이 선을 보인다.

또한 안산에 칩거하던 시절

시나 서화를 주고받거나 시회(詩會)를 통해 발표한 작품들로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강내한수친연송시첩'  '단원아집' '무이구곡도' '현정승집' '섬사편' 등이 전시된다.

한편 「계추기사」는

표암의 셋째아들 관(人+寬)이 쓴 것으로 

표암  초상화의 제작내력과 밑그림 초본(草本) 시작, 전신상 초본 완성,

정본(正本)의 테두리, 채색 완성, 표구 제작과정 등을 상세히 적고있다.

전시 기간인 내년 2월7일에는 표암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표암과 18세기 조선의 문예동향'에 관한 안휘준 서울대교수의 기조강연에 이어

이태호 명지대교수, 강경훈 동국대사회교육원 교수,

변영섭 고려대 교수, 이완우 대전대 교수, 한정희 홍익대 교수가 주제발표한다

02-58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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