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한대 와당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한 허선영씨

중국 고문자학 전공,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

중국 한대(漢代) 사람들이 만든 기와 중에서
처마 끝을 장식하는 둥근 와당(瓦當)에는 
4언체(四言體) 주문들을 많이 새겨 넣는데, 
이러한 표현은 부적이나 서예 또는 전각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나아가 이런 문구는
고구려 적석총 출토 와당이나 전돌에서도 꽤 자주 확인된다.
심지어 어떤 무덤은 천추만세(千秋萬歲)라는
문구 새김 전돌이 출토되었다 해서
그 이름조차 천추총(千秋塚)으로 정해졌다.

그러므로 고문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와당,
특히 그 실물자료가 대단히 많은 편인 한대의 유물들은
그 이전 혼란기를 방불하던 전국시대 문자가 통일되기 전의
말기 흔적도 농후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주목해 내친김에 문자 자료뿐만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한대 와당 전체에 대한 체계적 정리를 시도한
학술성과가 제출됐다.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허선영(許仙瑛.35) 씨.
여섯 살 난 아들을 둔 어머니이기도 한 그는
지난 4월, '한대와당연구'(漢代瓦當硏究)라는 박사학위논문을
국립대만대학 중국문학연구소에 제출해 심사를 통과했다.

이 논문은 아마도 한국인이 중국 와당에 대해 시도한 첫 연구가 될 것이다.

제목처럼 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허씨는
한대 와당 전체에 대한 체계화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와당을 도안문(圖案文)과 문자 와당의 두 가지로 나누었다.
시대별로는
▲한대 조기(早期) ▲중만기(中晩期) ▲만기(晩期) ▲동한(東漢)의
4기로 구분했다.
앞 세 시기는 전한(前漢) 시대에 속하게 되는 셈이다.

나아가 도안문은 그 무늬 종류에 따라 운문(雲文. 구름무늬),
양각문(羊角文. 양 뿔 모양), 권운문(卷雲文. 달팽이 무늬) 등으로 세분했다.

그가 가장 주력한 분야는 주전공인 문자 분야.
즉, 이 논문에서 허씨는 와당에서 확인되는 문자(문구)를
그 성격이나 출토 지역을 기준으로
▲길상(吉祥. 좋은 일을 기원하는 글)
▲기사(紀事. 사건을 기록한 글)
▲궁원(宮苑)ㆍ택사(宅舍)
▲관서(官署. 관공서)ㆍ사대(祀臺.제사시설)ㆍ표지(標誌) 와당의
네 가지로 쪼갰다.

하지만 중문 번자체로 418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박사논문에서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그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부록 편이다.
여기에는 한대 와당을 대표하는 유물들에 대한 방대한 탁본 자료를
축소 영인하는 한편,
문자 자료에 대해서는 같은 글자에 대해서도
와당에 나타나는 다양한 글자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이번 박사 논문 완성까지 그가 대만에서 투자한 기간은 14년이라고 한다.

"중국을 공부해 보겠다는 생각은 중학교(인천 부평서여중) 3학년 때부터
이미 굳히고 있었습니다.
고향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A대학 중문과에 들어갔다가 2학년 때인 91년 10월에
대만으로 자비 유학을 떠났습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행한
대만 유학 초반 1년 동안 언어 연수를 마친
이듬해인 92년 9월에 타이페이 소재
사립 동오(東吳)대학 중국문학과에 들어가 학부를 마치고
96년 9월에는 국립대만사범대학 국문과(중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석사논문은 제목이 '선진(先秦) 조충서(鳥蟲書) 연구'라고 해서
진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양쯔강 하류 지역인 오(吳)나라 월(越)나라를 중심으로
초(楚)나라 송(宋)나라 채(菜)나라와 같은
남방 문화권 고문자 자료를 연구했습니다."

조충서(鳥蟲書)라는 글자체는
후한시대 언어학자인 허신(許愼)이란 사람이
서기 100년 무렵에 완성한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한자어 사전 서문에 보이는 것으로,
그 모양이 마치 새 발자국이나
곤충이 기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붙은 명칭.

"조충서가 확인되는 유물은 대개 칼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드물게는 와당이나 동경에서도 보입니다.
이 조충서 연구가 더욱 곤란한 것은
글자 판독이 대단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실물이 아니라 종교적 권위를 상징하는 기물들에 주로 썼기 때문에
일부러 어렵게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와신상담, 오월동주라는 고사의 직접 당사자인 월왕 구천.
그가 사용했다는 검이 최근 출토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 몸통에 새긴 글씨가 바로 조충서다.

허 박사는 국내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박사논문을 개별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국내 와당이나 동경 연구에도 주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2005-06-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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