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명필 & 거장시리즈1 해동서성 김생 1300주년 특별전

명필 & 거장시리즈1 해동서성 김생 1300주년 특별전
2011.12.24(토) - 2012.03.04(일)
서울서예박물관

장소 서울서예박물관
가격 일반 7천원 / 초중고생 5천원

사실상 지금 우리는 한자문맹에 가깝다. 일상문자생활에서 지필묵이 사라진지도 오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우리는 서예하면 어렵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해왔고, 한국서예는 없거나 있다고 해도 중국서예의 아류로 간주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전시는 ‘한자’와 ‘서예’, ‘한자서예’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한국서예역사야말로 우리나라 문자디자인 내지는 타이포그라피의 역사임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현장이다. 더 크게는 글씨미학을 넘어 우리 미의식(美意識)의 근저(根底)이자 보편(普遍)의 역사이고, 정신줄임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http://www.sac.or.kr/program/schedule/view.jsp?seq=8291&s_date=20111224

[전시구성]


Ⅰ. 통일신라(7C -10C) : 김생, 한국서예 전형의 탄생
Ⅱ. 고려시대(11C-14C) : 탄연, 정통과 혁신의 융합
Ⅲ. 조선전반기(15C-16C) : 안평대군ㆍ석봉, 왕법복고와 조선화
Ⅳ. 조선후반기(17C-19C) : 백하ㆍ추사, 첩(帖)과 비(碑), 첩비혼융


 


[전시소개]


사상 초유의 전시
전시작품은 현재 도난상태인 국보238호인 안평대군의 <<소원화개첩>>과 같은 작품이 담긴 <<대동미적첩>>, 국가지정 보물13점 등 한국서예걸작 30점, 조선시대 김생 계승관련 유물 20여점을 포함 총 50여점이 전시된다.
이와 같은 사상 초유의 전시는 전시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등 전국 개인 사찰 문중 국공립, 대학박물관 30여 곳에서 협력한 것이다.


한국서예 ‘필신(筆神)’ 총출동
주요작가는 다음과 같다. 통일신라 김생을 시작으로 고려 탄연, 조선의 안평대군, 한석봉, 윤순, 김추사 까지를 대맥(大脈)으로 선조, 영조, 정조등 어필(御筆), 황고산, 양봉래와 같은 광초(狂艸)작가, 이황, 허목, 송시열, 송준길 등 도학자(道學者), 서산대사와 같은 선승(禪僧), 강세황, 이인상등 화가(畵家)와 같은 우리서예역사의 필신(筆神)들이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서예와 중국서예
이번 전시는 한국서예의 전형을 처음 세운 김생부터 조선말기 추사까지 우리역사에서 등장하는 거장들의 필적을 통해 한국서예가 중국서예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보는 것이 목적이다. 즉 중국서예와 다른 어떤 독자성이 한국서예에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줄잡아 3500여년의 한자서예역사 중 한국서예는 한자(漢字)도입을 기준으로 2000년이 훨씬 넘는데 크게 보면 통일신라와 조선말기가 분수령이다. 8세기 통일신라 김생이 처음으로 한국서예의 전형을 만든 이래 1200여년이 지나 19세기 조선의 추사가 첩(帖)ㆍ비(碑) 혼융을 통해 우리글씨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중국의 경우도 궤를 같이 한다. 당대이후 명말청초까지 계속된 왕희지 재해석의 첩학(帖學)역사가 그 이전의 비학(碑學)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우리 서예역사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김생
이러한 서예역사에서 화두가 된 두 성인이 있는데 중국이 왕희지라면 한국은 김생이다. 즉 왕희지가 이전의 전(篆) 예(隸)를 토대로 위(魏) 진(晉) 이래의 글씨의 법(法)을 세웠다면 김생은 통일신라 이전의 삼국 글씨를 토대로 왕법(王法)과 당법(唐法)까지 하나로 녹여 우리나라 서예(書藝)의 법(法)을 처음 세운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과 같고도 다른 화엄불국(華嚴佛國)의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김생체(金生體)를 창출해낸 것이다. 이것은 석굴암(石窟庵) 본존불이 세계 불상의 미를 완성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와 같다. 또한 김생으로부터 한국서예의 미학(美學) 기준이 제시됨으로서 동아시아 세계서예 판도는 중국에서 한국 일본으로 다원화(多元化)되면서 확대 재편되었던 것이다.


혼융미학(混融美學)의 결정(結晶), 한국서예
이와 같이 통일신라의 김생이 우리글씨의 전형(典型)을 세운 이래로 고려의 탄연, 조선의 안평대군 한석봉, 윤백하, 김추사 등과 같은 거장들이 등장하여 우리글씨역사를 토대로 중국서예를 녹여내면서 한국서예는 중국서예와 같고도 다른 궤적을 걸어왔다. 특히 김생 이후 고려 조선에 걸쳐 탄연 이암이나 이용 이황 황기로 한호 윤순 이광사 김정희 등과 같은 거장들이 유(儒) · 불(佛)이나 노장(老莊)과 같은 사상을 토대로 우리와 중국서예를 혼융(混融)해냈다.(더 나아가 세종대왕은 서예역사의 패러다임임을 바꾼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조해냄으로서 중국도 만들어내지 못한 한자·한글의 중층적(中層的)인 한국서예문화의 꽃을 피워내었다.) 이번 전시는 이와 같이 한국의 한자(漢字)서예역사를 통해 우리 글씨미학(美學)의 결정(結晶)과 정신(精神)의 대맥(大脈)을 보고자 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번 전시는 한국서예 문자문화의 역사를 김생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우리 글씨 미학의 결정(結晶)’을 조명하였다. 특히 혼융미학의 관점에서 우리글씨가 중국서예를 어떻게 수용하고 재해석 해내는가하는 입장에서 우리서예의 독자성을 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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