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간송미술관 10월 20일부터 추사명품전 열려

이 가을 秋史가 있는 풍경을 만나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고고한 예술과 넓은 학문의 경지로 조선시대 선비들의 우두머리가 됐던 인물이다. 일반인들은 ‘추사체’로 그 명성을 기억하고, 지식인들은 북학파 수장으로 시대를 이끌던 신묘한 혜안을 그리워한다. 시문서화(詩文書畵)에 두루 능했던 그를 당대인들은 ‘일세(一世) 통유(通儒)’라 기렸다. 20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추사 명품'전은 그 진면목을 한자리서 살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우리 문화재의 보고인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봄.가을로 꾸려온 정기 기획전 63번째 순서로 간송이 소장하고 있는 추사의 진적 가운데 명품만을 가려 내놓았다. 시중에 위작과 안품(가짜)이 많기로 이름난 추사인만큼, 진품에 더해 명품들을 직접 감상하는 건 이 가을 안복(眼福)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간송미술관 부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이 추사 글의 원문에 일일이 해설을 달아 한문에 어두운 관람객들도 누구나 쉽게 글씨 뜻을 알 수 있게 한 점이 돋보인다. 우리가 '추사체'라 부르는 김정희의 글씨는 한 눈에 '참 장하다' 또는 '괴기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과 개성이 넘친다. 조형미가 뛰어나 언뜻 '그린' 글씨라는 느낌도 든다. 추사가 '문자미(文字美)'에 갇혀있던 한자를 그 틀을 부수고 꺼내 '회화미(繪畵美)'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최 연구실장은 "한자는 상형문자이므로 그림으로 출발했고, 한자문화권에서 서예가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는 이유도 여기 있는 것인데 중국의 왕희지가 문자미를 완성하며 모두들 왕희지체에 매달려 회화성을 잊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추사의 위대함은 "서예를 서예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게 한 것"이라는 얘기다. 추사가 한자의 서예미를 되찾는 방법으로 연구한 것이 청나라 고증학계에서 진행해온 금석학 성과였다. 옛 글씨의 원형이 그대로 살아있는 비문(碑文)의 서법을 서예 수련의 근본으로 삼아 중국이 이루지 못한 것을 오리혀 조선 서예 발전의 디딤돌로 삼아 '추사체'로 일군 것이다. 정병삼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은 최근 공저로 펴낸 '추사와 그의 시대'(돌베개)에서 추사체를 "화강암 암산(岩山)과 같이 강경한 골기(骨氣)와, 푸른 하늘과 같이 삽상(颯爽)한 기운과, 사계의 변화와 같이 다양하고 분명한 조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표현했다. 또 글씨와 함께 나온 추사의 문인화와 사군자에 대해 백인산 연구위원은 "절제된 필치로 대상의 본질만을 간결하게 묘사함으로써 고아하고 청일한 문인화의 정수를 구현했다"고 평했다. 무료. 02-762-0442. 정재숙 기자<johanal@joongang.co.kr> 기사 입력시간 : 2002.10.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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