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한국 목간학의 메카로 떠오른 성산산성

삼국시대 목간(木簡)은 거의 예외없이 연못과같은 저습지에서 출토된다. 국내 최초로 목간이 발견된 곳이 신라시대 궁원지였던 경주 안압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저습지는 두터운 뻘층을 형성하고 있어 이곳에 묻힌 고대 유물은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특징이 있다. 물과 뻘이 공기를 차단함으로써 유물의 산화와 부패를 막는다.

이번에 6세기 중.후반 신라목간 65점을 무더기로 토해낸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 역시 목간이 출토된 곳은 저습지였다. 이곳에서는 지난 94년에도 목간 27점이 발굴됐는데 그 장소도 역시 저습지였다.

올해 발굴성과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목간 자체의 다량 출토와 함께 이러한 성과가 그 규모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산산성 전체 저습지 중에서도 고작 3평을 발굴한 결과라는 점이다.

이 저습지는 최고 해발 139.4m의 구릉같은 야산인 조남산(鳥南山) 꼭대기를 감싸돌며 축조한 이른바 테뫼식 성곽(둘레 약 1천400m) 중에서도 조사단이 동문(東門)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성벽 바로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동문터는 계곡에 위치한다. 저습지는 성곽 조성 이전에도 존재했었는지 알기 어려울 뿐더러 많은 조사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다만 지금까지 발굴성과로 볼 때 성곽이 만들어지면서 규모가 꽤 큰 저습지가조성된 것만은 분명하다고 발굴단인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는 보고 있다.

발굴단은 이 저습지가 동서 폭 약 90m에 달하는 것으로 본다. 남북폭도 발굴 양상을 종합할 때 동서폭 못지 않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대규모 저습지에서 겨우 3평만 발굴했는데도 65점이나 되는 신라 목간이출토된 것이다.

따라서 이 저습지가 전면 발굴될 경우에는 얼마나 더 많은 목간이 출토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난 94년 및 2000년, 그리고 이번의 출토품을 모두 합친 93점보다 훨씬 더 많은 신라 목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저습지 밑바닥에 매몰돼 있으리라는 것이다.

전국을 합쳐 지금까지 출토된 삼국시대 목간 총수가 200점 가량에 불과한 점을볼 때 성산산성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가늠된다.

바야흐로 성산산성은 한국 목간학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성산산성에 대한 장기적, 체계적, 전면적 발굴계획을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 중앙정부(성산산성은 국가사적 67호로 지정돼 있다)와 지방자치단체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02년 11월 18일 (월) 연합뉴스에서 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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