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서예경매 사상 최고가?

(다 읽으시면 해답이 나옵니다.)
한국일보 [지평선]  안중근전쟁

1992년 7월,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중수교 한 달 전이었던 당시는 재중동포들을 취재하는 일이 조심스러웠다. 그들의 의식을 알기 위해 설문지를 내밀었지만 설문지가 뭔지도 몰라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가장 많이 쓴 이름은 안중근 의사였다. 다음은 김일성이었고,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과 같은 분을 꼽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안 의사가 이북출신이며 거사장소가 재중동포들이 많은 동북3성 중 하나인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성도(省都) 하얼빈(哈爾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친근감 때문에 그를 존경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더 큰 요인은 그들이 열사 투사 혁명 투쟁에 익숙하며 안중근이야말로 대장부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종대왕 이순신을 모르는 것은 우리 역사를 배우지 못한 탓이다. ‘백범일지’에는 이미 열세살 때의 안 의사가 글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장부가 할 일이 아니라며 총을 들고 사냥을 다녔으며 사격술이 뛰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어려서부터 대장부였던 그는 이른바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ㆍ대장부, 집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의 삶을 통해 큰 이름을 남겼다.

▦영웅과 위인의 행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본보기가 되며, 어려울 때 일어서는 힘이 된다. 대한상의 부회장과 금통위원을 역임한 송찬규씨는 안 의사를 뒤늦게 발견한 것을 아쉬워하며 올해 84세의 고령인데도 5년째 안중근연구소를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ahnjewngkeun.com이라는 홈페이지도 만들어 안중근정신을 선양하고 있다. 출판사 열화당 대표 이기웅씨는 파주출판문화정보 산업단지 조성과정의 어려움을 안 의사의 삶과 조국애를 생각하며 이겨냈다고 한다. 그는 안중근의 옥중 투쟁기록을 모아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는 책도 냈다.

▦옥중에 있는 다섯 달 동안 200여 점을 썼다는 안중근의 유묵은 한일 양국에서 두루 사랑을 받고 있다. ‘大韓國人 安重根’이라는 낙관과 특유의 장인(掌印)이 찍힌 유묵 중 한 점은 지난해 국내 서예경매 사상 최고가인 2억 여원을 기록했다. 어제 서울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순국 93주기 기념식에는 유묵을 기증한 일본인 야기 마사스미씨도 참석했다. 그런 일본인이 있는가 하면 그저께 일본 최고재판소는 “일본정부는 군대위안부에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안중근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입력시간 : 2003/03/2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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