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일랑 이종상전

▲ 일랑의 2003년작 ‘원형상-평화를’.
 
같은 모필을 잡고 살면서도 늘 가슴벅찬 메시지를 전해주는 일랑 이종상씨.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좋고, 신화를 읽는 그림이라 좋다.

"내 몸이 곧 모필이요 천지에 널린 게 물감"
일랑(一浪) 이종상(65)씨는 별명이 `25시의 사나이`다. 그의 호 그대로 파도처럼 일에 낮밤을 잊고 살았다. 육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끊임없이 출렁이며 한국화의 새 경지를 개척하는 멜빵 청바지를 즐겨입고 작업실에 묻혀 사는 그가 오랜만에 개인전을 연다. 21일부터 6월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일랑 이종상 작품전`이다.

이번 전시는 여러 모로 뜻깊다. 일랑에게는 30여 년 그가 봉직했던 서울대 미대를 정년퇴임하며 8월에 서울대박물관에서 열 기념전에 앞서 작품들을 갈무리하는 자리고, 선화랑(대표 김창실)으로서는 20여년 만에 화랑 건물을 신축해 여는 개관전이기 때문이다. 일랑은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던 학교를 떠나 이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업작가로 다시 등단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일랑은 그가 평생을 매달려온 `원형상(源形象)` 연작 60여 점을 내놓았다. 70년대에 겸재 정선의 진경을 일구려고 전국을 떠돌던 시절부터 그는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낸 한국화 창조에 일생을 걸었고, 이 출품작들은 그 과정에서 하나씩 매듭지은 결실이다.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러 북한으로 달려가고, `독도를 문화로 지키자`며 십여 차례 섬을 찾아 그 기(氣)를 화폭에 담았다.

그는 특히 재료와 기법이 서로 조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노력해 왔다. 흔히 채색에 문제가 있어 색이 변하고 물감이 벗겨진다고 하지만 물감은 결국 흙이기에 문제는 접착제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랑이 고안한 것이 동유화(銅釉畵)다. 동판에 불로 물감을 직접 밀착시키는 무접착제 방식이다.

장지건 닥지건 그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필력은 재료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어가는 것이라는 젊은 날의 깨달음을 늘 잊지 않는다. "내 몸이 곧 모필이요, 천지에 널린 게 다 물감"이라는 일랑은 학교에 묻었던 세월을 딛고 다시 제2의 인생을 맞는 설렘으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02-734-0458.
<중앙일보에서>

* 첨기 : 2002년 10월 10일 기사
  우리 땅 독도를 정치가 아니라 문화로 지키자는 미술인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았다. 1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전시실에서 열리는 `역사와 의식, 독도 진경`은 독도를 붓끝으로 사수한다는 화가 10명의 의지가 가을하늘처럼 푸르게 빛나는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화가들은 지난 여름, 2박 3일에 걸쳐 독도를 다녀왔다. 손장섭·박대성·이왈종·한진만·민정기·황인기·서용선·강경구·김선두·엄정순씨는 어렵게 들어간 독도에서 한반도의 기(氣) 흐름이 서려 있는 순정한 땅을 새삼 발견했다. 서너시간 독도에 머무는 동안 화가들은 하나라도 더 독도의 실경을 머리와 가슴에 담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때 화첩에 기록한 풍광들을 작업실에서 각기 화풍으로 다듬어 이 특별전에 선보였다.

지난해부터 독도 탐방단을 꾸려 이 행사를 이끌어온 일랑 이종상 서울대박물관장은 "생활 속에 독도를 풀어내면 그게 진정으로 독도를 우리 땅으로 만드는 길"이라며 "독도 사랑의 마음을 시로, 글로, 춤으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곧 국제사법재판소가 영토를 인정하는 원칙인 `실질적 점유권`"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주의 풍경화로부터 설치미술까지, 독도의 장엄한 모습이 각양각색으로 드러난 전시장 들머리에는 독도 현장에서 참가 작가 열 명이 한마음으로 붓을 휘둘러 완성한 공동작품(사진)이 선보인다. 전시와 아울러 25일 오후 2시 박물관 강당에서 독도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세미나도 마련됐다. 02-880-5333.

2002년 8월 5일 기사
티격태격
입씨름을 해봤자
다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 땅` 독도는 정치가 아니라
문화로 지켜야 한다.
그림으로, 춤으로,
또 음악으로…
실질적 점유권은
그럴 때만
인정받을 수 있다

사 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짙푸른 바닷물 일색이다.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뱃머리에 일렁이는 파도가 제 몸을 부딪고 흰 거품을 일으키며 만파로 부서진다. 출렁출렁 멀어지는 그 물결은 다시 동해와 몸을 섞으며 파도로 돌아갔다.

지난달 31일 오전, 독도로 가는 해양경찰청 경비선 갑판에 선 일랑(一浪) 이종상(李鍾象·64·서울대 박물관장)씨는 "일생을 내 호 그대로 저 파도처럼 끊임없이 출렁이며 살아왔다"며 먼바다로 눈길을 던졌다. 그는 수평선 어디쯤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솟아오를 독도를 더듬고 있었다.

병고를 겪고 난 일랑에게 독도는 이제 남은 시간, 그가 일렁이며 다가가야 할 신념의 공간이 된 듯했다.

하늘이 내려준 건강을 버팀목 삼아 한국화의 새 경지를 개척하려는 일념을 불태워온 일랑은 육십여 평생을 별명 그대로 `25시의 사나이`로 살아왔다. 하지만 무쇠같던 그 몸도 나이를 이기지는 못했다. 지난 5월 22일 가슴에 통증을 느낀 일랑은 스스로 차를 몰아 찾아간 병원 응급실에서 혼절했다. 병명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올 초부터 밀려드는 일감에 눌려 하루도 쉬지 못했던 그는 결국 병실에 누워 텔레비전으로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월드컵 개막식을 지켜봐야 했다.

"며칠 밤낮을 꼬박 작업해도 끄떡 없던 육신이 드디어 빨간 신호를 보내는구나, 깨달았죠. 병이 오히려 고맙더라구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제는 몸과 의논하며 사이좋게 가야죠."

일랑이 첫 손 꼽는 일은 지금 그가 가고 있는 독도와 관련이 있었다. 서울대박물관이 지난해부터 열어온 기획 특별전 `역사와 의식, 독도 진경`을 위해 탐방단 30명을 이끌고 여덟번째 독도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독도를 문화로 지키자`는 운동은 그가 25년 전에 스스로에게 지운 사명 같은 것이다.

"1970년대에 나는 조선 후기의 걸출한 화가 겸재 정선에게 미쳐서 그처럼 우리 땅을 그대로 담은 진경산수화를 일구려 전국을 떠돌아다녔어요. 제주도를 걸어서 일주하며 그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를 사생했지요. 조선의 고유색을 한껏 드러낸 한국화를 창조하고 싶어서였어요. 심심찮게 한국과 일본 사이에 독도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할 때였지요. 혹시 조선 화가 중에 독도를 그린 이가 있을까 싶어 겸재를 비롯해 싹 훑어보았는데 아무도 없는 거라. 그래서 이번에는 일본 쪽에서 다케시마(독도) 그림을 남긴 이가 있나 수소문했는데 역시 단 한 점도 없는 거예요. 빨리 이걸 그려서 일본에 뿌려야겠구나 마음먹었죠. 그래서 독도에 들어가려고 알아보던 중 77년에 드디어 기회가 왔어요."

마 침 독도에 새삼 관심을 보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 직통전화 개설과 고사포 설치 등을 하라는 명령을 내려 그 작전을 수행하러 들어가는 해경선이 한 척 있었다. 민간인은 안 된다는 걸 팔방으로 다리를 놔 간신히 허락을 얻어냈다. 접안 시설이 없어 작은 배로 갈아타고 다시 보트를 내려 장대로 밀며 뛰어내리는 곡예 끝에 독도에 처음 발을 디뎠다. 그때 물안개 속에서 본 독도의 일출 광경을 일랑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수석 하시는 분들이 일품으로 꼽는 `수반경석` 그대로야. 서울대박물관이 개발한 펜던트의 문양이 바로 그 독도 일출을 담은 겁니다. 그로부터 내 독도사랑이 시작됐어요. 그동안 일곱 번을 들어갔는데 갈 때마다 다 달라요. 제가 80년대부터 그려온 `원형상` 연작에 그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형상이란 기가 모여서 이뤄지는 것인데 독도는 제가 찾는 그 최초의 형상, 최초의 기의 흐름이 서려 있어요. 그 힘 때문에 여기 한 번 왔던 이들은 가슴에 평생 독도의 진경을 품고 살게 됩니다. 그 마음을 시로, 글로, 춤으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독도사랑이죠. 생활 속에 독도를 풀어내면 그게 진정으로 독도를 우리 땅으로 만드는 길입니다. 티격태격 정치적인 입씨름은 소용없어요. 아, 누가 처를 매일 `이 사람이 내 마누라요` 떠들고 다닙니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자꾸 외치는 건 꼭 그 꼴이에요. 독도는 정치가 아니라 문화로 지켜야 합니다. 그게 문화의 힘입니다."

일랑은 "바로 이런 문화적 행위가 쌓여서 얻게 되는 것이 국제사법재판소가 영토를 인정하는 원칙인 `실질적 점유권`"이라고 설명했다. `독도 탐방단`으로 참석한 10명의 화가들이 일랑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장섭·박대성·이왈종·한진만·민정기·황인기·서용선·강경구·김선두·엄정순씨는 화첩에 부지런히 손을 놀려 스케치를 하고 나중 작업을 위해 카메라로 이곳저곳의 풍경을 담았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독도를 찾은 이애주 서울대 교수는 헬기장에서 독도를 위한 `해돋이 춤`을 추었다. 그가 뻗어올린 몸짓 하나하나를 독도가 품어 안았다. 이 춤과 그림들은 두고두고 독도를 되새김질할 이들 화가와 춤꾼들의 손으로 다듬어져 오는 10월 1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서울대박물관 현대미술전시실에서 열릴 `역사와 의식, 독도진경`전에서 선보이게 된다. 또 배지와 티셔츠 등 문화상품으로 개발돼 울릉도 도동 약수공원 안에 있는 독도박물관 등에서 독도를 알리는 상징물로 판매된다.

"이 런 행사를 국고로 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라가 독도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게 의미있는 거지요. 제가 내년 8월 말이면 정년퇴임이에요. 마침 맞춘 듯 8월 말에 박물관장직도 임기가 끝납니다. 하지만 `독도 문화심기 운동`은 이제 시작입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와 춤꾼 홍신자씨가 동참을 약속했고, 작곡가 김영동씨는 『삼국유사』 에 나오는 `만파식적`이 독도 얘기 같다며 그걸 소재로 한 음악을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문화인들이 이렇게 뜻을 모으면 독도는 저절로 우리 땅으로 굳어지겠지요."

육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멜빵 청바지를 입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독도 정상에 오른 일랑은 여덟번째 독도 방문이 대견하고 흔쾌했던지 즉석에서 손가락을 먹에 담가 지두화(指頭畵)를 쓱쓱 그려나가며 말했다.

"내 몸이 곧 모필이요, 천지에 널린 게 다 물감입니다. 독도에서 거둔 흙으로도 채색화가 됩니다. 독도사랑은 환경과 문화가 같이 가기에 더 소중한 거지요. 앞으로 독도문화재단을 만들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독도를 문화로 지키렵니다."

일랑은 이제 `독도 사나이`로 제2의 인생을 출렁이며 헤쳐나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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