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서예가 이재무 - 중부일보

서예가 이재무씨  
 “나이도 젊으시죠, 친구처럼 대화 잘 통하시죠, 거기다가 밥도 잘 사주시죠. 우리 선생님 최고예요.”
경기대학교 한국화과 ‘서예기초’ 수업이 열리고 있는 강의실을 찾았을 때 학생들은 한결같이 “선생님 최고예요”를 외치며 즐거워했다. 아직 때묻지 않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들을법한 외침을 대학강의실에서 들었을 때의 느낌은 생소했지만 이내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대학강단을 통틀어 가장 보수적이고 근엄한 강의로 꼽힐 것만 같았던 ‘서예수업’을 접할수록 재미나고 신나는 수업으로 이끄는 장본인인 서예가 이재무(42)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97년 국전에 최연소 초대작가로 추대된 그는 대한민국서예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본보가 개최하는 중부서예대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불혹(不惑)의 초반에 있지만 어느새 서예인생 30년을 바라보고 있는 중견작가이기도 하다.
한국화과 1학년 학생들은 저마다 밝은 목소리로 한마디씩 더한다.
이범석군은 "붓놀림 감각을 익힐 수 있고 필력까지 좋아지지 시간이 지날수록 재밌다"고 말한다. 김주희양은 “서예학원을 다녔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재미와 매력이 있다”며 “먼저 선생님께서 재밌고 편안하게 가르쳐주시니까 더 흥미롭게 접하게 된다”고도 말한다.
이씨는 수업시간에 늦어도 야단을 치지 않는다. 핸드폰은 진동으로 하되 필요시는 나가서 자유롭게 받을 수 있게 배려한다. 지나치게 자유로워 자칫 수업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스러웠지만 학생들의 표정에는 그 어느 수업보다 진지한 열의가 묻어있다.
불과 2달여의 만남이지만 이미 그들은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서로 이해하고 있는 남다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예의 맛을 알게 되면 점차 ‘먹의 검은 마력’에 빠지게 된다고 말하는 이씨.
“처음엔 도구며, 마음이며 준비도 많아야하고 글씨도 잘 안 늘어서 정말 배우기 힘든 게 서예지요. 3개월을 넘기면 3년을, 3년을 넘기면 30년을 붙들게 된다고들 하지요. 추사 선생 가르침에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슴속에 고아(古雅)한 뜻이 들어 있지 않으면 손에서 나올 수 없고, 가슴속의 고아한 뜻은 또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들어있지 않으면 능히 팔뚝과 손끝에 발현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서예의 참멋이야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성을 글씨로 고스란히 옮겨놓는 과정에 있는 셈이지요.”
중학교 1학년 때 특별활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서예에 매진하게 됐다. 소현 정도준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았고, 부인 역시 스승의 서실에서 만난 인연으로 아들 둘을 두고 동거동락하고 있다.
경기대를 비롯 원광대, 대전대 등 국내 대학과정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예술인 서예 관련 학과는 불과 다섯 손가락 안으로 아직까지 아쉬움이 많다.
“요즘은 모든 교육 자체가 ‘빨리빨리’잖아요. 서예를 하면 이해력과 인내심이 배양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정규교육과정에서부터 등한시되고 있는 게 사실이지요. 그나마 요즘은 서실 등을 통해 서예인구가 많이 확대돼서 서예의 내일은 희망적인 셈입니다.”
88년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이 주최한 '청년작가'전을 통해 다양한 서체를 공부하게 됐다는 그는 특히 전서로서 상형문자에 해당하는 금문(金文)과 행초서를 즐겨 쓴다. 거기에는 서법에 준하되 서법을 뛰어넘는 작가특유의 개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예술성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거리의 간판들조차 유명작가들의 글씨가 참 많아요. 행초서의 경우 중국여행 때 반하게 됐지요.”
행초서에는 무궁무진한 변화가 있어 그 멋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그 만큼 그는 현재 생활과 사고방식 역시 변화를 추구한다. 정체되지 않고 젊은 필우들과 교우하고 그들의 사고에 동참하며 끊임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예술가다.
순수 민간단체인 한미문화재단 주최로 오는 7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워싱턴전시’에 참가하는 이씨는 웅장미 넘치는 판본체나 그 조형미와 아름다움이 빼어난 궁체 등 한글 작품을 많이 출품할 생각이다.
“이제 우리 문화를 알려야 상품도 팔리는 시대입니다. ‘한문서예’하면 일단 중국으로 인식하지만, ‘한글서예’하면 무조건 한국이거든요. 가장 한국적인 색깔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고유의 자부심인 한글 아니겠습니까.”
현재 고향인 남양주 노농동에서 서실을 운영하며 분당에서도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55세를 전후해 고향에서 후진양성과 개인작품에 매진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삶의 방식이 편안함 그자체인 그는 글씨 역시 편안한 가운데 생기가 있고 힘차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시대정신을 먹과 한지에 담아내는 서예인이요,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 그대로다.
김순화기자/ksh@joongboo.com

입력일자[200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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