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한국 서예의 위기와 필묵의 재해석

  한국 서예의 위기와 필묵의 재해석
- 위기의 서예, 그 존재에 대한 의문 -

현재 한국 서예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서 지적하고 있다.

현실성이 없는 서예의 내용, 작품의 시장성 부재, 보수적 해석과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작가들의 의식구조, 기존 서단의 문제성 등이 서예의 존재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타이포그래피의 시대에 손으로 쓰는 것에서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서예가 시대변화를 수용하고, 작가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담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서예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는 말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1997년의 서예계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작가들의 활동이 전개되었다.
전통서법 고수파, 필묵의 재해석에 의한 새로운 경향의 실험파, 문인화의 변신, 국제전, 기획전, 특별한 단체전 등이 한국 서예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대열에 섰었다.
이제 그 활동들을 점검하면서 한 해의 서예계를 개관해 보기로 한다.

전통서법파의 활동들
김응현전(2. 6~2, 18, 공평아트센터)
진학종초서전(3. 25~4. 3, 백상기념관)
선주선전(4. 2~4. 8, 운형궁미술관)
정해천전(4. 24~4. 30, 백악예원)
조성주전(5. 9~5. 25, 예술의 전당 서예관)
송종관전(9. 30~10. 5, 예술의 전당 서예관)

위의 전시들은 서예의 고전적인 해석에 가장 충실한 작가들로서 자신의 수양과 정진을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김응현은 전통서법파의 원로로서 국내외에 그의 서품은 법파의 이상을 오랜 정련 끝에 완성시킨 고수의 솜씨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체계적인 훈련과 철학적 미학에 대한 구축도 없이 무질서한 실험을 앞세우는 사람들에겐 교과서적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선주선은 붓끝의 유연성과 탄력, 먹의 뉘앙스, 능숙한 재기(才氣)등이 어울려 고전 서예의 깊이를 재음미할 것을 요구하는 전시였고, 정해천·조성주·송종관은 서예의 직인(職人)적 숙련도를 통해 자신들의 사상과 예술적 성취도를 구현해 내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특히 조성주의 5천여 자의 금강경 전각은 작업의 방대함, 태도의 성실성, 장인적 끈기 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성과를 거둔 전시였다.

전통서법파의 이러한 긍정적인 면은 서예가 동양문화의 정점에서 한모퉁이를 차지하는 존재임을 인식, 그 원형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이 오늘의 삶이 투영된 주제이며 한국인의 조형의식이 반영된 서예냐 하는 의문을 제기케 해줬다.

시대가 변화하고 예술도 변화했다.

현재는 19세기 이전 농경시대 한자문화의 계층이 문화를 주도하던 시대도 아닌 시지각이 우선시되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이다.
삶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졌으므로 거기에 대응되는 서예문화가 새로운 인식과 수단을 통해 어떻게 창출되어야 하느냐 하는 고민이 기술적 완성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것이며 중요한 화두라는 것을 인식할 단계에 왔다고 본다.

필묵의 재해석과 새로운 실험들
여태명전(10. 1~10. 13, 전주 문화예술회관)
석용진전(11. 25~11. 30, 예술의 전당 서예관)
물파창립전(12. 12~12. 21, 서초갤러리)

전통서법파와 대위관계에 있는 일군의 작가들이 펼치는 새로운 경향의 실험들은 현대서예의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서예 발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전통을 재조명하고 시대정신을 투영하고자 하는 이들의 필묵에 대한 재해석은 매체제약성의 돌파, 시지각적 구조에 의한 조형언어의 개발 등 전환적 발상과 기법의 다양화를 통한 서예의 영역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태명은 민중미학에 그 정서가 닿아 있으며 서예의 상품화, 생활 속의 서예로 자리매김하는 데 힘을 쏟고 있고, 석용진은 서예 조형의 회화적 발상, 다종다양한 기법의 시도 등을 통해 경계를 해체하고 기존의 문법을 부정하는 작업들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잠재력은 주목되는 바이며 기대가 크지만 한편 주제의식의 산만함, 기법의 다양함과 파괴에서 오는 생경함과 가벼운 이미지 등은 극복해야 될 과제로 남는다.

물파창립전은 40대를 중심으로 한 현대조형성의 작가군으로 그 명단은 황석봉 손병철 노상동 김순욱 이숭호 석용진 여태명 한병옥 등이다.
그중에서 김순욱은 60대 재미작가로서 물파 회원들의 미주전시와 소개에 도움을 줄 동인이다.
일본은 이미 50년대부터 그들의 현대파 서예를 미주지역과 유럽에 전시, 소개함으로써 일본 서예의 이미지 구축과 세계성 확보에 성공하였으며, 동시에 서구의 현대 추상회화에 정신적 영향을 미치는 바가 되었다.
물파동인들은 나름대로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출범하였지만, 일본 추상서예의 흉내 또는 서구 5·60년대 앵포르맬 운동을 연상케 하는 부문들은 이들이 지닌 한계로서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필묵의 재해석에 의한 새로운 경향의 실험들은 보수적인 법파(法波) 서예가들과 함께 양축을 형성하면서 한국서예를 발전시키고 용량을 풍부하게 하는 존재들임에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새로워지는 문인화의 세계
박종회전(2. 6~2. 18, 공평아트센터)
고암 이응로 문자추상전(2. 25~3. 9, 현대갤러리)
이원동전(4. 1~4. 8, 동아쇼핑센터)
전진원전(12. 3~12. 10, 대백갤러리)

동양정신의 끝을 나타내는 예술양식으로서 현대적 매력을 가장 많이 지닌 것을 들라면 문인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필묵의 유희적인 정신세계, 유현한 뉘앙스에서 풍기는 담박한 품격, 고도의 절제와 단순미가 지닌 은유적 서정 등은 현대회화의 정수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응로 문자추상전은 서예정신이 구현해 낸 고암예술의 완성과 극점이 아닐까?
서세옥의 경우도 마찬가지로서 서예적 필력이 현대회화 속에서 어느 정도 그 위력을 보이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라 하겠다.

쉽게 말하여 동양예술의 핵심이라 할 기운생동(氣韻生動)미가 바로 그것이다. 기가 있어야 살고, 살아 움직여야 멋스런 운치가 있으며, 운치가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미적 체험은 지속적인 필묵의 훈련을 거쳐 얻을 수 있는 정신세계의 도달점이기도 한 것이다.

박종회의 신문인화는 대작을 위주로 화면의 의도적인 분할, 깔끔하게 처리된 색면구성, 화제의 다양함과 전체 화면에서 차지하는 높은 비율 등에서 종전에 볼 수 없었던 그의 작업을 총체적으로 결산한 의미가 있었다. 그의 작품에선 위와 같은 특징과 함께 풍부한 먹의 괴량감, 넘치는 힘의 분출, 일회적이고 찰나적인 흐드러짐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느낌이다.
이런 점에서 이원동과 전진원의 작품이 대비된다. 박종회가 조탁하고 다듬는 것을 중시한 문인화라면, 나머지 두 사람은 일회적 필의(筆意), 친근한 소재, 투명한 서정이 담박하게 처리된 문인화의 절제미가 인상적인 전시였다.

의미있는 중요 기획전과 그 성과
유물에 새겨진 고대문자전(1. 20~2. 16,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
석봉 한호전(6. 5~6. 22, 예술의 전당 서예관)
97 문자와 이미지 Ⅱ(11. 18~98. 1. 31, 한림미술관)
전각 초서의 오늘전(12. 16~1. 18, 예술의 전당 서예관)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부산시립박물관 복천분관 개관 기념전인 고대문자전은 국내 처음으로 문자유물을 한자리에 모은 특별기획전이었다.
이두문이 새겨진 ‘영태2년병 곱돌항아리’(국보 제233호), 경남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기원전 1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붓·흙벼루·종이 베는 칼 등 가야지역 연맹체 형성기보다 3백~4백여 년을 앞서 문자를 사용한 수준 높은 고대 문자 유물과 ‘大王’이란 글자가 뚜껑과 몸체에 거칠게 새겨진 목이 긴 항아리(5, 6세기),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시대 주사위의 새김문자, ‘井’자가 새겨진 가야유물 등 B.C 1세기 때 원삼국시대로부터 9세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유물들로 발굴 당시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67점을 한데 모은 의미깊은 전시였던 것이다.

유물에 새겨진 고대문자는 그 소장처가 흩어져 그 가치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조명되지 못한 세계였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기록보다 더욱 생생한 당대인들의 기록이자 흔적으로서 그림을 만들고 사용한 고대인의 문자에 대한 인식 및 숨결을 느껴볼 수 있고 고대사의 비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석봉 한호전은 예술의 전당이 마련한 <한국서예사 특별 기획전>의 17번째 전시로서, 조선 중기 서예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데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한석봉은 ‘어머니의 떡썰기 가르침’으로 한국서예사에서 명필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지만 정작 그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조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석봉체는 조선초기 유행했던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 영향에서 벗어나 깐깐한 기골과 꽉 짜인 획법으로 호방한 풍골이나 신운(神韻)이 감도는 개성미는 부족하지만 당시 조선의 국서체(國書體)로서 그의 천자문은 방방곡곡 서당에서 배우는 글씨교본이 되었던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것에 맞추어 급히 기획됐기 때문에 의외로 작품 모으기가 어려워 관련자료를 합쳐 100여 점이 선보였을 뿐이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97문자와 이미지 Ⅱ]는 ‘서예 쪽에서 바라본 미술’, ‘미술 쪽에서 바라본 서예’의 여러 양상과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기획전이었다.

문자와 미술 그 이미지의 교환은 무엇이며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문자가 지닌 위력, 한자와 같은 인간의 문명사를 압축한 부호, 수천 년간 인간의 지혜를 보태고 또 보태어도 결국 남길 것만 남긴 추상의 극점, 그것이 서예란 점을 재해석해 보고자 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한글·한문·문인화·전각·서각을 포함한 전통서예는 물론이고 시대정신을 보이는 것, 재료와 기법 면에서 현대성을 모색하는 작품들 모두가 문자를 텍스트로 한 예술성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주고 있었다. 신두영 윤양희 권창륜 박용설 여태명 원중식 이곤순 인영선 전정우 정도준 정태희 조성주 등은 전통적 방법을 고수한 작품을 보임으로써 기획의 의도에 벗어난 느낌이고, 구자무 박종회 홍석창은 문인화를 보였으며, 김양동 이숭호 전종주 유재학 임재우 전도진 등은 새로운 기법과 내용으로 독자적 이미지 구축을 시도했다.

안민관 유장식 이현춘 조명웅은 서각을 차용한 공간해석으로 경계 무너뜨리기의 신선함이 있는 반면, 상충과 모호성이 공존하기도 했다. 문자시장과 서예문화의 변화를 요구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문자와 이미지는 어떤 근원적인 부분이 공존해 있는가를 반문케 해준 전시였다.

<전각·초서의 오늘전>은 예술의 전당이 한국서예의 새로운 전망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본질 분야를 재해석함으로써 그 용량을 넓히고자 한 기획전이었다.
초서가 서예의 꽃이라하지만 현실은 문자사용의 환경이 초서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전각 역시 그 완벽한 조형세계의 장점이 있음에도 전각이 지닌 예술적 품격이나 정신성을 개발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서의 일회적 흥취는 서예의 정점이다.

문자가 내 속에 완전히 들어와서 다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지닐 때 초서는 형성된다. 그것은 테크닉의 구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이념의 설정, 즉 초서정신이 먼저 존재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서예의 초서수준은 중국이나 일본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이번 전시는 교훈적으로 암시했다고 본다. 동시에 이 분야는 많은 도전이 요구되며 공략 여부에 따라 상당한 예술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초서부분에서 두드러진 작가는 김충현 진학종 정주상 조용민 양진니 고강 권창륜 정보인 김진익 조용철 권시환 선주선 황방연 등을 꼽을 수 있다.
방촌(方寸)의 세계인 전각은 이번 기획전에서 몇 가지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된다. 우선 그 해석을 확대하고 연출을 시지각적 볼거리로 끌어들인 작품들이 있었는데, 정병례의 <풍어제>는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외 황석봉의 <평촌에 부는 바람>, 김양동의 <각의 시원>, 여태명의 <댓잎>, 석도윤의 <재상불교>, 전경택의 <원시서탐>, 정탁균의 <농요> 외에 임재우 이숭호의 작품이 두드러졌다고 평가된다. 그 중에서 암각화를 차용한 정병례의 노작은 설치미술로 연출하여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전각의 이러한 변화는 조형적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서예에서 그 파급 효과는 매우 크다 할 것이다. 세계 최초의 서예 비엔날레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한 금년 벽두에 전라북도는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기념하여 맛(음식)과 소리(판소리), 서예를 전북의 삼대 문화자산으로 선정하여 한국적 문화이벤트로 삼았다.

전북이 예향답게 동계유니버시아드 기간 중 열린 <세계서예 전북 비엔날레>(1. 20~2. 20, 전북 예술회관)는 45세~65세 사이의 창작활동이 가장 왕성한 작가들을 77명(한국 47명, 중국·일본 등 8개국에서 30명 초대) 선정하여 서예의 세계화 가능성에 대한 화두를 던졌던 전시회였다.

서예는 과연 세계화할 수 있는 예술일까? 있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며 그 내용은 어떤 것이 될까? 라는 물음에 대한 궁금증은 강렬하다. 그러나 세계화란 것은 탈국가나 탈민족이 아니라 세계화를 향한 경쟁력의 힘을 빌려서 민족이나 국가의 고유성을 강화하자는 데 근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예도 서예가 지닌 전통예술문화의 깊이 있는 정신적 가치로 하여금 경박하고 메카니즘적인 현대문명을 준엄하게 비판하고, 현대문명의 시대적 감성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서예문화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그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서예의 세계화일 것이다.

서예는 동양의 지역문화의 하나지만 그 철학적, 미적 가치는 서양의 미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예술이다. 흑백음양 대비의 강렬함, 유동하는 필력에서 풍기는 에너지의 분출, 고도로 간결하고 함축적인 절제미의 품격, 여백과 문자미에서 오는 동양 사유의 철학세계 등 그 깊이를 알면 왜 이 예술이 수천 년간 변함 없이 인간의 영혼을 다스려 왔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세계서예 전북 비엔날레는 개막일 서예의 본질과 21세기 서예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학술발표도 가졌으며 출품작 중 최우수작을 선정하여 시상하기도 했는데 중국의 왕동영 교수(중국미술학원 교수)가 초서작품으로 영광을 안았다.

필묵의 재해석과 세계성 확보
컴퓨터 등장 후 필기문화의 변화는 불가피하게 서예의 위축을 초래했다. 21세기, 앞으로 서예가 지닌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서예 고유의 실용성과 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할까? 이런 위기의식을 세계 속에서 해결해 보려는 의도에서 예술의 전당 서예관은 <청년작가 한중일 국제교류전>을 개최했다(2. 25~4. 13). 이 교류전은 예술의 전당 창립 10주년과 개관 이래 해마다 개최해 온 <한국서예 청년작가전>의 열 돌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획된 특별전이었다.

그간 청년작가전을 통해 배출된 한국의 정예작가들과 중국·일본의 청년서단을 선도하는 그룹의 작품들을 비교, 현단계에서 각국 서단의 작품전개 양상과 특질을 추출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각국의 작가선정은 매우 엄정한 선발을 거친 것이 특징이었다. 각 국의 커미셔너들을 통해 그 배수로 선발된 분야별 작가 중 주최측에서 최종 30명씩 확정했던 것이다.

중국은 고전파·학원파·현대파의 작품들이 고루 출품되었는데, 지필묵 외에 오브제를 오려 붙이거나 덧칠하는 방법, 지우는 방법, 찍어 내는 방법 등 기존 서예 개념을 탈피하는 파격적인 작품이 많았다.
일본은 전위서예(묵상작업)와 고전의 개성적 해석에 의한 운필중심의 작품 등 다양한 내용을 펼쳤다. 이에 비해 한국의 청년작가는 서예의 예술적 운용에 있어 매우 고식적인 형식과 한정적인 발상에 머문 공모전에 순치되어 개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현단계에서 장차 서예 주역들의 교류전이 거둔 성과라면 첫째 전통과 창작, 서예의 미래에 대한 삼국간 논의, 둘째 서예 속의 회화, 회화 속의 서예 그 위상, 셋째 법식·훈련·질서만을 존중하는 한국서예의 자기변화에 대한 논의 등이라고 본다.
전시와 함께 각국의 대표적 이론가 6명의 주제발표 및 토론을 하는 심포지엄도 있었는데, 현재 서예문화의 진단과 미래 서예문화의 전망 등이 진솔하게 논의되었다. 이 교류전에 선발된 한국의 청년작가 명단은 다음과 같다.

여태명 주영갑 양호승 백현수 최민열 손인식 조희구 이은설 전윤성 유재학 신동엽 이재무 최돈상 전상모 전종주 선주선 전정우 황석봉 조용철 권시환 조성주 김기동 박동규 정웅표 송종관 조문희 김영삼 유수종 박태후 이숭호 황보근 백영일 진영근

맺는말
중앙일보 윤철규 미술전문기자는 3회에 걸쳐 위기의식의 한국서예를 ‘흔들리는 서예계’란 제목하에 다루었다. 서예공모전의 실태와 문제점, 미술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서예, 서예의 진로와 방향 등에 대한 충고와 애정의 질책이었다.
매체의 이러한 지적은 말할 수 없이 아프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삶의 질이 달라진 현 시점에서도 아직까지 농경시대 서예양식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겐 경종이 될 것이다.
한국서예 내일의 모습을 위해 작가들은 새로운 형상성에 대한 탐구와 이념부재를 극복하기 위한 철학 구축, 경계의 해체, 기법의 변화를 통해 시대와 호흡하는 서예미 개발에 힘써야 하리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난 한 해는 의미 있는 기획전과 국제전, 당당한 작가발언을 가진 개인전 등 새로운 경향에 의한 필묵의 재해석이 계속 시도되어 왔다. 이것은 한국서예의 가능성과 생명에 대한 희망의 표징임이 틀림 없다.

김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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