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민족서예교류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산하 서예단체인 한국민족서예인협회(회장 여태명)는 6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경운동 물파아트센터와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동시에 '2003민족서예교류전'을 개최한다. 남측 민족서예인협회 소속 서예가 36명의 작품 68점, 북측 고려서예연구회 소속서예가 11명의 작품 11점, 재일본 고려서예연구회 소속 서예가 28명의 작품 51점이 각각 출품된다. 북한의 고려서예연구회와 재일 고려서예연구회는 이미 여러해 전부터 상호 방문으로 서예강습 프로그램을 비롯, 교류전과 학술세미나를 개최해왔다. 이번에 전시되는 북한 서예가들의 작품은 일본을 통해 보내진 것이다. 당국의 허가를 얻어 북한 서예작품이 반입되고 재일동포 서예가들 중에서 조총련계 서예가 21명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에서 교류전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0일 오후 2시에는 전주역사박물관 녹두관 회의실에서 '민족서예의 발전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린다. ☎서울 739-1997. 전주 (063) 288-6485 [이삭줍기] 북한, 서예작품 첫 현상모집 북한은 오는 2000년 12월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 9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서예작품 현상모집을 실시한다. 북한의 중앙TV는 작품규격이 2m이상을 넘지 말아야 하며 작품은 11월 25일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에 보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방송은 이번 현상모집에는 김 총비서의 명언을 주제로 한 작품, 김일성 주석과 김 총비서의 영도업적과 위대성을 주제로 한 작품, 그리고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구현한 작품을 비롯해 조국통일 주제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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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통일의 물꼬를 트는 서예전을 보다
 [오마이뉴스 2003-08-19 19:12]
 조선의 선비는 4예(四藝) 즉,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걸고, 꽃을 꽂는 일과 함께 삶을 살았다. 특히 문방사우는 선비들의 필수품이어서 먹의 향내를 맡으며, 난을 치고, 글씨를 쓰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멋은 먼 나라의 일이 되어 버렸다. 동네마다 있던 서예원은 이제는 동사무소의 주민자치센터 등에서나 겨우 볼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대인들은 그저 컴퓨터에 매몰되고, 스피드, 섹스, 영화, 게임 등에 빠져서 이제 자기들만의 향은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붓끝으로 자기 내면의 멋을 조용히 찾아가던 선비들의 멋은 이제 어디에도 그 흔적이 없다.

이런 때에 정말 소중한 전시회가 열렸다. 남한의 서예가들은 물론 북한, 재일동포들까지 같이 한 '민족서예교류전'이 지난 8월 6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 인사동의 물파아트센터와 전주의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엔 북한의 대표적인 서예가 오광섭 외 10명이 11점, 재일동포 고려서예연구회장 장윤식 외 27명 51점, 남한 한국민족서예인협회장 여태명 외 35명 68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대부분 붓글씨 작품이지만 일부 한국화와 전각 작품 등의 다양한 내용을 보인다.

전시작품을 보면 6·15 공동선언 세 돌을 맞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여러 방면에서 눈녹듯이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한 북한 리학만의 <눈석이>, 두 줄기 물 흐름이 하나가 된 것을 표현한 북한 리재명의 <합류>, 재일동포 리정자의 <파스포트가 필요없는 삼팔선의 새들>, 남한 장운식의 전각화 <산 너머 남촌에는>이 특히 눈에 띄었다.

지난 8월 10일에는 전주 역사박물관에서 ‘민족서예교류전 국제학술대회’도 있었다. 여기서 발표된 논문은 재일고려서예연구회 사무국의 <일본에서의 서예활동 상황>, 원광대 김수천 교수의 <5, 6세기 서예사를 통해 본 한국서예의 정체성>, 원광대 여태명 교수의 <한글 민체의 자형미 고찰> 등이다.

아쉽게도 마지막 날 전시장을 찾았고,전주의 작품들은 직접 보지 못해서 이 의미있는 전시회를 독자들에게 미리 전달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한국민족서예인협회장 여태명 원광대 서예학과 교수를 인터뷰 한 내용을 소개한다.

- 어떻게 서예교류전을 하게 되었습니까?

"지난 해 부산아시안게임에 온 재일 ‘조선인 문학예술가동맹’ 김광성 서예부장을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때 민족간의 서예교류전의 필요성을 서로 공감하여 추진하기로 합의하였고, 그 뒤 북한 쪽의 동의로 열게 되었습니다."

- 교류전을 확대할 계획은?

"물론 계속해서 열 것입니다. 앞으로는 중국의 연변 조선족 동포, 러시아의 고려인 동포들과 함께 할 계획이며, 나아가서 유럽, 미국 등까지 확대하여 진정한 의미의 민족교류전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 교류전을 열면서 혹시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면?

"재일동포들은 고국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제게 왜 고국에 가지 않느냐고 물어오면 난감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게 되어 이젠 제자들에게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습니다. 부모님께선 고국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셨는데 자식들에겐 눈물을 흘리시면서 꼭 가보라고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오기 전 날 흥분에 잠을 설쳤지만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와보니 두려움은 없어지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그들을 보면서 민족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행사들은 계속해서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교류전을 여시면서 남북한과 재일동포 작가들의 작품 특징을 말한다면?

"북한은 힘있고, 구호적이면서 주체적인 서체라고 말하면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체들을 청봉체(靑峯體, 일명 청봉일호체 靑峯一號體)라고 하는데 백두산 청봉밀영지에서 이름을 딴 인쇄서체라고 합니다. 재일동포들의 작품은 북한, 남한, 일본의 영향을 고루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한 작품들은 기존 서단의 의식에서 벗어난 젊은 세대 특히 대학에서 서예과를 새롭게 전공한 사람들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교류전을 열면서 느낀 문화교류와 통일에 대한 생각은?

"중국의 예를 들자면 문화에 앞서서 경제인들이 먼저 들어가 경제교류를 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치, 경제적인 교류보다 먼저 문화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문화에 자부심을 가지는 일이 먼저 추진됨으로써 통일에 크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 지금 서예계에 바라는 바는?

"조선시대와 달리 지금은 지필묵이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의 서예는 사회 그리고 대중과 너무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활 속에 필요한 서예가 되어야 서예의 아름다움은 지속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예가 족자나 액자 속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벽지, 커튼, 넥타이, 방석 등에 활용될 수 있어야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서예 교육 현실은 어떤가요?

"지금 공식적인 교육기관은 전국 6개 대학에 서예과가 있으며, 매년 150여 명의 신인이 배출됩니다. 다만 대학 졸업 뒤 관련된 일을 할 여지가 극히 좁습니다. 겨우 교습소에 만족해야 하며 현재는 교사자격증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 회장은 고리타분한 선비가 아니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열려있는 자세를 가졌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그에게서 회장의 권위는 없다. 회장보다는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해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말에서 민족서예의 앞날이 보인다.

현대인은 이제 빨리빨리 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생각할 틈도 마음을 아름답게 할 여유도 없다. 그저 돈과 명예에 함몰되어 이웃을 바라볼 여지가 없는 모습이 도처에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현대인을 옥죄고 있다. 여기에서 의미있는 행복한 삶이란 없다는 생각이다.

이 때 서예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여유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줄 특별한 도구다. 동시에 이런 민족교류전은 우리의 통일을 한발 빠르게 실현해 줄 강력한 무기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서예에 애정을 갖음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통일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권상호
/김영조 기자 (sol119@hanafos.com)
덧붙이는 글
청봉체(靑峯體)-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양강도 삼지연군 백두산에 조성해놓은 '청봉밀영(숙영지)'에서 따온 것이다. 고전적인 붓글씨를 본따 만들었지만 힘있고, 주체적인 맛이 우러나는 특이한 서체라 하겠다.

청봉체는 크게 청봉1~4호체로 나뉜다. 보통 청봉체(명조체)는 청봉1호체를 말하는데 주로 출판에 많이 쓰인다. 또 주로 구호문과 출판, 쇼핑몰 등에 많이 쓰이는 천리마체(고딕체)라는 서체도 있다. 서예에서 쓰이는 청봉체의 변종으로는 바름체가 있으며. 컴퓨터에서는 붓글이란 서체가 있다고 한다.

기자소개 : 김영조 기자는 민족생활문화운동가입니다. 민족생활문화에 관련된 집필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운동(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역임)과 언론운동(한겨레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역임)을 동시에 10 여년 이상 하고 있습니다. 90 년대 초 주간 "노원라이프저널"에 교육칼럼을 1년간 썼으며, 현재는 민주노동당 동대문중랑지부의 소식지에 민족문화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