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원곡 김기승 선생 3주기 추도식

1975년에 <신고 한국서예사>를 출간한 바 있고, 1995년에 서울정도600년기념 '자랑스런 서울시민'으로 선정되어 타임캡슐에 수록되었으며, 2000년 8월 14일에 서거 하신 원곡 김기승(原谷 金基昇·1909∼2000) 선생의 3주기 추도식 및 제26회 원곡서예상시상식(수상자 : 취원 노용운)이 아래와 같이 거행된
다.
일시 : 2003년 8월 14일(목) 오후 5시
장소 : 한국프레스센터(20층) 프레스클럽(태평로 1가 25)
                 ---- 원곡문화재단 이사장 김성재

   “산같이 망막하고 강같이 줄기차다. 우리의 한글이 제 본연의 성품으로 온전히 나타났다.”   김기승(91) 옹이 개발한 한글서체 ‘원곡체’에 대해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이 한 말이다. 원곡은 글자 머리 부분을 찍어 눌러 쓴 이 독특한 서체를 통해 궁중 여인들이 썼다는 반흘림의 궁체와 대비되는 남성적이고 힘찬 서예의 세계를 개척했다는 평을 들었다.

   원곡은 1960년 국전 초대전을 가진 이래 무려 33회의 개인전을 열었을 만큼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각종 서체에 능통했던 그는 중국어 성경을 국전에 출품하기도 했으며, 제갈량의 출사표, 노자의 도덕경 등을 작품으로 남겼다. 또  기독교에 심취, 몸에 밴 신앙을 성경구절을 담은 수백점의 서예 작품으로 남겼다.

   그는 보수적인 서예가들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도 일종의 서예 전위예술이라는 묵영(청묵의 번짐이나 먹물의 농담을 조절해 시각효과를 나타내는 기법)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또 교육자로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원곡서예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인생을 정리한다는 뜻에서 그가 소장하고 있던 추사 김정희와 오세창, 김구의 글씨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을 아들 명호(58·재미 의사)씨의 모교인 연세대에 기증했으며, 자신의 작품도 이화여대와 고려대, 중앙대 등지에 나눠주기도 했다.이중 서산대사의 한시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은 백범 선생이 만년에 가장 즐겨 쓴 구절로 선생은 1949년 6월26일 암살당하기 직전에도 이 시를 썼다.

  [이삭줍기] 2002년 12월 20일 사위인 문화관광부 김성재 장관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 4점을 백범기념관에 전달한 바 있다.
  기증한 휘호는 ‘광복조국(光復祖國)’ ‘충효전가(忠孝傳家)’의 문구와 서산대사가 지은 답설시(踏雪詩), 맹자(孟子) 중 고자장(告子章)의 한 구절 등이다.
  이중 서산대사의 한시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은 백범 선생이 만년에 가장 즐겨 쓴 구절로 선생은 1949년 6월26일 암살당하기 직전에도 이 시를 썼다.
  이들 휘호 중 한점은 김 장관이 장인인 서예가 원곡 선생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