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계소식

송하와 호림

낭만시대15-소나무 밑에 잠든 호수

경북대학교 동창이자 경묵회를 함께 만든 호림자 채용복님, 그는 3년전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리고 친구를 잃어버린 대구서학회는 더 이상 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친구인 동갑내기 송하 백영일 교수도 그립다.
마침 대구 매일신문을 읽다가 이 두 친구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여기에 옮겨 놓는다.

글쎄,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누구나 아호 하나쯤은 갖고 싶은 마음을 먹지 않았을까. 서양화가, 서양음악가, 무용가, 연극인 등은 아예 호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거니와 있다한들 사용되지는 않는 편이고, 더러 한국화가, 문인, 국악인 등은 나이 마흔쯤 넘으면 은근슬쩍 호를 만들어 두고 있으나 이들 또한 내놓고 쓰는 예는 드물다.
헌데, 서예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짓고, 이이들이 집에서 개를 기르면 이름을 짓듯이 서예계 사람들은 입문만 하면 이내 선생으로부터 호를 하나씩 받는다. 말하자면 배꼽만 떨어지면 호를 하나씩 달고 다닌다. 그러곤 서로서로 이름보다는 호를 부르며 지내니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이름 대신 호를 불러 주곤 한다. 서예는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여전히 도제방식으로 전수되는 예술이기 때문 그러한 듯한데, 그러다 보니 서예를 한다는 사람 치고 이름 석자 앞에 호가 없으면 무슨 불구자 같거나 덜 떨어진 사람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하기야 추사 김정희는 불세출의 대가답게 완당, 예당, 시암, 과파, 노과 등
등 무려 200개가 넘는 호를 지녔어도 부족해 보여 더 만들어 주고 싶은 게 후학들의 심정일 게다.
각설하고, 아호가 궁합을 이룬 서예가 백영일과 채용복의 호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자. 백영일의 호는 송하(松下)이고 채용복의 호는 호림(湖林)인지라, 명함을 처음 받아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묻고 두 사람은 늘상 같은 대답을 되풀이한다.
"송하라? 소나무 송에 아래 하, 소나무 아래, 이게 무슨 뜻입니까?"
"소나무 아래 도인이 되자는 의밉니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옛 그림을 통해서 청청한 소나무 아래에 도인이 의연히 앉아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겁니다. 저는 서예가로서 장차 그런 도인의 경지에 오르기를 희망하면서 송하라고 호를 지었습니다. 하하하. 송상(松上)이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건방져 보이고 뜬구름 같기도 하고. 전 소나무 아래에 있습니다. 하하하."
"호림 선생 호는 아주 목가적이네요. 호수가 있고 그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 있으니 말입니다. 전원카페 이름 같기도 하지만."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서예 하는 사람은 마음이 호수 같아야 합니다. 맑고 고요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야 아름다운 글씨의 숲을 이룹니다. 호림이란 호는 그런 뜻인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숲이 있는 호수를 소요하는 학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서 호를 호림이라고 지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더니 송하와 호림에 대한 해석도 그 이름보다 더욱 거창하여 너나없이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진정으로 부러워한 것은 그들의 호가 아니라 그들의 우정이었다. 둘 다 대구예술대 서예과 교수로서 같은 직장에 다니고, 같은 길(엄밀히 말하면 송하는 서예가의 길, 호림은 서예이론가의 길)을 가고 있고, 죽자 사자 붙어 다니며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있으니 누군들 그 우정을 부러워하지 않으랴. 더욱이 송하는 키가 크고 피부가 맑고 흰 편인데 비해 호림은 키가 작달만하고 얼굴빛은 검붉어서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니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만 보아도 웃음이 날 지경이다.
"으 하 하 하!"
오래 전부터 송하와 호림을 알고 지내던 한 한학자가 느닷없이 파안대소하였다. 송하, 호림, 그리고 한학자 셋이어 술판을 벌이고 있던 자리에서였다. 한학자란 자는 사서를 한번쯤 읽어본 수준의 작자로서 호림의 한문실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나 마땅한 직업이 없어 그렇게 부를 뿐인데, 싱겁고 짓궂기로는 따를 자가 없었다.
"복권에 당첨이라도 됐나? 웬 호들갑이냐?"
송하와 호림이 물었다.
"콜롬버스보다 더 큰 발견을 했어. 네 두 놈들 호는 찰떡궁합이야. 자, 보라구. 송하, 소나무 아래엔 뭐가 있지? 산송이가 있어.
산송이는 남근이야. 그리고 호림. 호수와 숲을 그림으로 그려봐. 먼저 타원형의 호수를 그리고 그 주위에 나무를 그려 넣어봐. 무슨 모양이지? 옥문이야. 남근과 옥문. 자네들 둘은 그러니까 붙어 다니는 거야. 안 그러면 죽겠지."
"하하하. 맞네." "히히히. 그렇네."
송하와 호림도 박장대소했다. 기분 좋게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이날 이후부터 술집에 가면 송하는 아가씨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으나 호림은 뒷방 늙은이 신세였다. 그 까닭은 자명했다. 송하는 자기 호를 대며 산송이 자랑을 하니 아가씨들이 빨려드는 것이고, 호림은 옹달샘이라면 그래도 모를까 연못보다 크나큰 호수자랑을 해대니 할머니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오기가 난 채용복은 호림에다 아들 자(子) 자를 더 붙여 만든 호림자(湖林子)란 호를 쓰고 다니며 "난 호수와 숲을 다스리는 사나이다."
라고 술집 아가씨들에게 으시댔다. 이 꼴을 못 보는 한학자 친구는 "웃기지 마라. 호림자는 호수에 빠져 죽고 숲에 갇혀 죽는 이름이다."라며 놀려댔다.
말이 씨가 됐을까. 3년 전, 호림자 채용복은 대학교 학생들과 호수와 숲이 있는 곳으로 수련을 갔다가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궁합이 맞지 않아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살았던 호림자.
그의 타계는 대구 서예계의 큰 손실이었다. 다행히 호림자가 송하의 무릎에서 눈을 감고 지난해엔 송하가 앞장서 호림자의 유고전을 열고 유고집을 내는 일을 도와줬으니 아호의 인연도 만만찮은 인연인가 보다. 영원히 잠든 호수에 이 글을 바친다.  


작성일: 2003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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