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환의 '고구려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1>
고구려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근래에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켰다고 해서, 작년 말부터 세간의 이목이 이 문제에 집중되었고,
여기저기서‘역사 전쟁’이니‘고구려사 되찾기’니 하는 위기감을 담은
목청이 높아진 바 있습니다. 사회의 이목이 이렇게 불처럼 끓어올라 역사 문제에 집중되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어서 역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반갑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냉정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이 문제야말로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풀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동북공정’이니 ‘고구려사’니 하면서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그 중요성이나 관심의 폭만큼 구체적인 내용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우선은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정확하고 올바른 정보를 공유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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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와 국학원 회원들이 13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앞에서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중국은 2002년 2월부터 사회과
학원에 소속된 변강사지
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란 기관이 주도하여 소위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를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의 원래 명칭은 ‘동북변
강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으로, ‘동북 변강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현재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의 역사ㆍ지리ㆍ민족 문제 등과 관련된 여러 사안을 다루고 있으며,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상당히 중요한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북공정’ 프로젝트에는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ㆍ발해 등 한국
고대사는 물론 간도 문제 등
한국사와 관련된 주제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내용들이 우리의 고대사 인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라는 데에서, 근자에 소위 ‘역사 전쟁’이 터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 역사로 편입하려는 게 최근 1, 2년 사이에 이렇게 바뀐 게 아닙니다.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파악하는 논리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좀더 그 연원을 살펴보면 1980년대 전반에 나타난 소위 ‘통일적 다민족국가론(統一的 多民族國家論)’까지 그 맥락이 닿게 됩니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중국은 현재뿐 아니라 2000년 전부터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현재 중국 영역 내에 위치한 소수 민족은 다민족(多民族) 국가인 중국의 구성원으로서,
중원 왕조와 항상 정치ㆍ경제ㆍ
문화적으로 밀접한 연계를 가지며, 중국 영역의 일부를 구성하고 중국사에 공헌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억지 주장입니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중국이란 국가가
한족 이외에도 55개나 되는 많은 소수 민족을 포함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러한 고민이 이해되는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현재 중국의 입장에서는 소수민족이 분리 독립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초래되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중국 내의 모든 민족의 융합과 통일을 표방하며 소위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민족 개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소위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이란 주장이 그래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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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구려사』 책 표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한 중국의 책들은 ‘요즈음 중국고구려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임기환 |
이러한 ‘현재의 논리’를 ‘과거의 역사
해석’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심각한 역사 왜곡의 폐해를 낳게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현재 중국 영토 안에 과거 고구려의 영역 일부가 겹쳐지게 되면서,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야만 하게 된 셈입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구려의 수도가 국내성(현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있을 때에만 중국사의 일부로 파악하는 정도로서, 어느 이상의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태도를 바꾸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여러 가지 배경이 있겠지만, 근자에 부쩍 커진 정치적ㆍ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짐작됩니다.
물론 중국측 주장은 학문적으로는 심각한 오류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현재 중국의 정치적 입장이 강하게 투영되어 나타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당장의 대책도 마련해야겠지만, 보다 차분하게 장기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사의 위치와 의미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럴려면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고구려사에 대해 막연한 감상에서 벗어나서, 좀더 구체적으로 고구려사의 실상에 다가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소유란 곧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잘 이해하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뜻에서 앞으로 고구려사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면서, 또 천5백년전의 고구려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역사적 의미와 교훈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최근 몇 달 동안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에서는 고구려사를 특집으로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도 근 십몇년 동안 실린 양보다 더 많은 글과 기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획물을 보면서 재미있는 현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즉 고구려사에 대해 오늘날 우리들이 어떤 이미지들을 갖고 있었는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당장 ‘고구려’하면
금방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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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수렵도(狩獵圖). 고구려인의 씩씩한 기상을 전하는 대표적 그림 중 하나로 꼽힌다. 달리는 말 위에서 호랑이와 사슴을 겨냥한 고구려 무사의 역동적인 모습이 화면을 가득채우고 있다. ⓒ임기환 |
아마도 대개는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소유하였던 나라였다는
인상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특히 광활한 만주 대륙의 지배자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렬하여, 소위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자주 나오는 기마상을 두고 “만주 대륙 말 달리던 고구려인의 활달한 기상” 같은 식의 이미지는
상투적으로 많이 이야기되는 편이죠.
이와
연관하여 고구려인들은 상무적 기풍이 두드러지고 군사력이 뛰어난 나라라는 점도 두드러진 이미지의 하나입니다. 특히 중국의 통일제국인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에 당당히
맞선 전쟁에서 얻은 빛나는 승리 즉, 예컨대 살수대첩이나 안시성 전투 등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로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력과 군사력을 발휘하였던 나라, 대외적 정복활동과 팽창이 눈부셨던 나라, 만주 대륙을 호령하며 중국에 위세를 떨쳤던 나라 등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금방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인상들이 대체로 고구려사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강대한 국가라는 일측면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사가 갖는 특성의 일부만이 이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고구려사에 대해 우리들이 갖고 있는 편향된 이미지는 사실상 오늘의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과 무관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갖는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 근대 초에 경험한 식민지배,
미국이나 중국ㆍ일본 등 열강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 국제사회에서 초라하다고는 못해도 그다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국가의 위상을 생각하면,
일종의
보상심리 차원에서 과거 역사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측면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관점들이 고구려사를 막연하게 이해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고구려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고구려사가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역사란 역사 현장에서의
체험이 매우 중요합니다. 경주에 가면 우리는 신라인들이 남긴 많은 문화
유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불국사ㆍ석굴암ㆍ첨성대 등을 통해 신라인들의 삶과 생각들을 어느 정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부여나 공주에 가면 백제인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현장에서 만나는 역사는, 우리에게 역사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 대한 이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역사를 만나려면 북한이나 중국의 만주에 가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처럼 역사 현장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웬지 고구려사는 신라사나 백제사에 비하여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고 신비에 쌓여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고구려사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고구려를 만나는 데 제약이 되는 조건들을 극복한다는 의미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지리적인 조건 등으로 고구려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신라사나 백제사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점에서 고구려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장차 남북의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사의 문제가 단지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 우리는 강렬하지만 막연한 이미지에 그친 고구려상을 벗어버리고 보다 구체적인 면에서 접근하고 객관적이고 과학적 이해를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사람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생각과 기억들을 만나는 작업이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고대사처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때에는, 워낙에 우리에게 주어진
사료가 적기 때문에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그러한 점 때문에 무슨 숨겨진 역사의 비밀을 탐색하는
가슴 두근거리는 매력도 적지 않습니다. 앞으로 고구려사가 갖는 그런 매력을 여러분들에게 하나씩 보여
드릴까 합니다.
필자 소개
필자 임기환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강의교수와 한신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고구려 정치사 연구> <고대로부터의 통신>(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