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실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 인도의 여덟 나라에서 그의 사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도로나의 의견에 따라 불타의 사리를 똑같이 여덟나라에 나누어 주어 각기 탑을 세우니 이를 분사리 또는 사리팔분이라고 하였다. 사리신앙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불탑의 기원 역시 이때부터 시작된다.

  석가모니불이 입멸한지 100년이 지나 대인도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아 왕조의 제 3대 아소카왕은 불사리를 안치한 8대탑을 발굴하여 불사리를 다시 8만4천으로 나우어 전국에 널리 사리탑을 세웠다고 중국의 불전은 전하고 있으니, 이는 아소카왕이 넓은 지역에 일시에 많은탑을 건리하여 불교를 크게 전파시켰음을 알수 있다. 서기전 3세기 아소카왕 때의 불교중심지였던 산칭에는 지금도 "산치탑"이라하여 거대한 불탑이 남아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수 있다. 이 "산치탑"은 거대할 뿐만 아니라 4대탑문과 주의 난간조각들이 아름다보 또한 가장 오래된 불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세계 제일의 탑파이다. 이와같이 탑을 세우는 의식은 인도에서 비롯되어 8기의 탑을 쌓았는데, 최초의 탑은 반구형을 이루어 마치 분묘와 같은 모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탑파가 우리나라에 건립하게 된 경로는, 먼저 중국을 거쳐 4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인도,중국과 다른 독특한 탑파의 양식을 이루었다. 한국고대 유적유물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것은 불교적인 조형물이다. 이 가운데서도 양과 질에서 볼 때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는것이 탑파와 불상이라 할수 있으니, 이러한 상황은 탑파와 불상이 불교의 예배대상으로서 불교도들의 신앙과 정성이 모두 이 두 곳에 결집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불교에서는 사원을 건립하는 목적이 탑파를 세우고 불상을 봉안하여, 이 탑파와 불상에 예배하기 위한것이었다고 할수있다. 탑파는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되었고, 불상은 직접 그를 향하여 예배를 올리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탑파와 불상은 가장 뛰어난 불교미술로서 한국의 고대미술을 대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탑파는 1,000기 이상을 헤아릴수있는데, 이 탑들은 건조한 재료에 따라
  분류하여일번적으로 목탑, 전탑, 석탑, 모전석탑, 청동탑, 금동탑이라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에는 목탑이 중국의 고루형목탑양식을 모방하여 누각형식의 다층목탑이 건립되었을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러 백제지역에서 목탑을 모방한 석탑이 비롯되고, 또한 신라는 전탑을 모방한 석탑에서부터 시작되어 바야흐로 석탑이 우리나라 탑파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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