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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노무현 욕하기

노무현 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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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3년이 간다. 평범한 해가 언제 있었을까만, 올 한 해는 정치적으로 예사롭지 않은 격변기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항상 대통령 ‘노무현’이 있었다.

특히 노무현이 스스로 주도한 ‘탈권위 몰이’는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겉으로 나타난 변화는 ‘말’이었다. “깽판” “조지고” “재신임을 받겠다” “10분의 1이 넘으면 그만두겠다” 등등 거침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대통령이 저래도 되나”하고 걱정하는 목소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말은 그 자체로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다.

중요한 변화는 권력 안에서 보이지 않게 조용히 일어났다. 검찰에 대한 통제의 끈을 노무현 스스로 놓아버린 것이다. 검찰은 더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됐다.

그리고 어느새 국민들이 이를 사실로 믿기 시작했다. 정치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난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대통령 측근 비리를, 아니 대통령의 범법사실을 거침없이 발가벗기고 있다. 노무현 스스로 몇차례 “이래도 되나 사실은 나도 겁이 난다”거나 “내가 만든 상황에 내가 당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을 한 일이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29일 발표된 검찰의 수사 결과는 그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말이 많아졌고, 검찰 통제를 포기했다는 두 가지 변화는 사실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검찰을 ‘쥐고’ 있으면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힘이 없으니 논리로 설득을 해야 하고, 말이 많아지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너도나도 노무현을 욕한다. 신문 칼럼의 단골메뉴가 노무현 비판이다.

술집에서는 최소한 노무현 흉이라도 봐야지, 아니면 ‘왕따’가 된다. 지난 대선 때 그를 찍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찍은 사람들도 “그럴 줄 몰랐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일종의 유행처럼 ‘노무현 욕하기’가 번져가고 있다. 노무현을 비판해야 나라가 잘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사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 것말고는 잘한 것이 별로 없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외교도 그렇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진다.

그러니 노무현은 책임이 있고 잘못이 있다. 반성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다.

더구나 측근 비리에 대해서는 직접 형사책임을 져야 할 판이다. 특검의 조사를 피할 길이 없고, 재임 기간에는 공소시효가 중단되니 퇴임 이후에 기소와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건 노무현이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몫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노무현 탓이 아닌 일도 많다.

한나라당의 ‘차떼기’는 노무현과 관련이 없다. 국회의원들이 ‘밥그릇’을 지키겠다고 발악하는 것도 노무현 탓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빌빌대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입당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신당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너무 무능한 탓이다.

노무현 때문에 기업이 투자를 안 한다고 기업이 투자를 아니 하는 것은 경영권 유지를 위해 내부 유보를 쌓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옳다. 시장의 질서를 왜곡하는 것은 노무현이 아니라, 수백억원을 정당에 가져다 바치고 반대급부를 챙기거나, 국가경제를 볼모로 “배째라!”고 버티는 재벌들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무현 때문에 북한을 쥐잡듯이 몰아붙이고 있나 그건 아니다.

‘노무현 욕하기’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 일이 잘못될 때는 그만한 원인이 있는 법이다. 모두가 노무현을 욕할 때 그냥 같이 욕을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노무현은 아무나 화가 날 때 두들기는 동네 북이 아니다.

이제 새해를 맞아야 한다. 할일이 너무나 많다. 노무현도 잘 해야 하겠지만, 우리도 ‘노무현 욕하기’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성한용 정치부장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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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수줍어 하는 미소
인자한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