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실

PC통신 유머방을 통해 본 현대 이야기문화의 단면

* 신동흔 교수의 논문이다. 전체 내용은 첨부화일에.

4. 맺는 말

이야기의 거대한 공장 겸 물류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PC통신 유머방, 그 사이버 이야기판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다. 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수많은 사람, 무수한 이야기들과 만나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지금도 그 이야기판에는 계속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속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다. 유머에 걸맞지 않는 엉뚱한 글이나 사기성의 글에서 짜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다소간의 요령만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 특히 남다른 입담과 재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꾼(작가)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들은 유쾌한 웃음은 물론이려니와 종종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한다. 실제의 이야기판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사이버 이야기판이 지닌 가능성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헤쳐나가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이제 그것을 소화류의 이야기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경험담류의 글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현대 유머의 전형적인 형태인 짤막하고 기발한 우스개 이야기는 일상적 이야기판과 사이버 이야기판이 공유하고 있는데, 양적인 면에서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에 있어 유치하고 무의미한 언어유희가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때로 기발함과 교묘함으로 하여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피곤하고 답답하게 하는 측면이 우세하다. 최근 이야기판을 휩쓴, 모자란 구석이 있는 인물에 대한 공모적 웃음을 꾀하는 ‘사오정 시리즈’만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그러한 말장난식 우스개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 우리 이야기문화의 한 단면이다.

말장난식 이야기에 대한 대안의 부재는 무엇보다도 ‘스토리’의 붕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의 ‘스토리’, 오랜 기간 동안 ‘설화’의 세계에서 생동해 왔던 그 풍성한 스토리가 거의 붕괴지경에 있는 것이 오늘날의 상황이다. 유머방에 쌓여 있는 그 수많은 소화들 가운데 훌륭한 스토리를 갖춘 것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그나마 간혹 발견되는 것은 대부분 외국 유머인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스토리의 생산력이 멈춰진 상태에서, 이야기문화가 제자리를 찾기는 어렵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스토리’가 풍성하게 창출되어야만, 그리하여 그것을 사이버 이야기판과 실제의 이야기판이 상승적으로 공유해야만 우리의 이야기문화는 온전히 살아날 수 있다.

소화류 이야기와 비교할 때, 아마추어 작가들이 경험담류의 이야기를 통하여 사이버 이야기판의 가능성을 실현한 양상은 주목에 값한다. 그들의 주인의식과 열정은, 그리고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치와 입담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 작가들 대부분은 언어유희의 유혹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재기발랄한 표현 능력은 물론 값진 것이지만, 그것이 공허하고 작위적인 말재주로 흐를 때 더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줄 수 없는 것이다. 실질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교란 언젠가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유머방에 삶에 대한 진지함을 추구하는 글들이 자주 올라와 사랑을 받고 있는 상황은 고무적인 일로 여겨진다. 의미있는 경험을 재구성하여 재미와 함께 감동을 전해주고 있는 그 이야기들을 통하여 일상적 이야기판에서 점차 퇴색하고 있는 진진한 경험담이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그것은 예의 ‘스토리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풀어 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삶을 반추하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이버 이야기문화의 긍정적․전진적 단면이다.

그렇지만 그 경험담류의 이야기들이 설화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적이고 임의적인 이야기로서, 설화와는 다른 존재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특히 독자적 생명력을 지니면서 폭넓게 전이되기에 부적합하며, 그리하여 이야기문화 일반의 풍요를 선도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경험담류의 이야기와 짝을 이룰 ‘설화’의 부재에 있다. 진진하고 전형적인 스토리 속에 삶의 경험과 꿈을 알차게 응축해내는 설화, 그것이야말로 사이버 공간과 실제 공간의 벽을 넘어 이야기문화의 꽃 역할을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존재다. 그 설화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 거기 우리 이야기문화의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거듭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다.

설화의 재창출을 통한 풍성하고 건강한 이야기문화의 회복, 만약 그것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실제적 이야기판보다 사이버 이야기판을 통해서이리라고 본다. 실제적 이야기판에서 퇴색하고 있는 ‘진진한 경험담’의 문화를 사이버 이야기판은 그럴싸하게 되살려 놓았다. 다시 한번 보란 듯이 현대의 설화를 창출하여 이야기의 꽃을 피워내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럴 만한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건강하고 풍성한 이야기문화의 회복,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응원해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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