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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을 위한 정치 칼럼 - 스페어 후보론(중앙일보)

스페어 후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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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선거는 총 16번이었다. 그중 10번이 직선제였다. 영화에나 나옴 직한 돌발 상황은 제3대 정·부통령 선거부터 벌어졌다.



56년 5월 신익희(당시 63세) 민주당 후보는 투표일을 열흘 앞두고 호남 유세를 떠났다가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서(急逝)했다.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선거 구호와 ‘비 내리는 호남선’이라는 유행가는 당시의 좌절감을 말해준다. 성난 민심은 추모표(무효표)와 기권 양상으로 표출됐다. 당시 추모표는 총 투표수(906만 표)의 20.5%인 185만 표나 됐다.



비극은 4년 뒤 되풀이됐다. 6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조병옥(당시 65세) 박사는 위암 증세로 1월 29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승만 정권은 곧바로 국무회의를 열어 투표일을 3월 15일로 두 달이나 앞당겼다. 수술은 잘 됐지만 조 박사는 2월 15일 심장마비로 불귀의 객이 됐다. 그는 임종 전 “빨리 돌아가야 한다.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라며 애를 태웠다고 한다. 조 박사의 3남 조순형 의원은 “조기 선거에 따른 스트레스도 사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한나라당 일각에선 ‘스페어(spare·여분) 후보론’이 나온다. 만의 하나 있을지 모를 자당 후보의 유고 사태에 대비하자는 명분을 내세워서다. 한국 대선판에 기상천외의 변수가 하도 많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1789년부터 4년마다 대선을 치른 미국에선 공화·민주 양당의 대선 후보가 유고 사태를 당해 ‘반쪽 선거’를 치른 적이 전무하다. 다만 대통령 취임 뒤 질병·암살 등으로 8명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1840년 당선된 윌리엄 해리슨은 폭우 속에 취임식을 강행한 뒤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노예 해방을 밀어붙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암살당한 네 명의 대통령 중 첫 번째 희생자다.



대통령 재임 시 암살 위기를 겪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76년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제럴드 포드에게 패했으나 깨끗이 승복했다. 그것이 4년 뒤 최고령(69세) 대통령에 당선되고, 84년 재선돼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발판이 됐다.



공자는 2500년 전 ‘정(政)’을 말하면서 “급히 서두르면 일을 이루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집착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논어 자로 편)고 말했다. 대선 투표일을 47일 앞두고 레이건과 공자를 떠올리는 현실이 서글프다.



이양수 정치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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