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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 입적 ㅡ대전일보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 입적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원담(圓潭) 스님이 세수 82세의 나이로 18일 오후 9시 충남 예산군 수덕사 염화실에서 입적했다.

원담 스님은 마지막 타계 전까지 설정 스님, 법정 스님, 법륭 스님 등 상좌와 손주 상좌인 정묵 스님 등 4명에게 “원래 일이 없는데 괜히 부산 떨지 말라”며 “청산은 저 혼자 내버려 두어도 푸르르다”는 임종게를 남겼다.

또 “올 때 한 물건 없이 왔고(來無一物來), 갈 때 한 물건도 없이 가는 것이로다(去無一物去)”라고 말하며 열반의 순간까지 죽음에 대해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 근·현대 선불교의 중흥조인 만공(滿空) 스님의 선풍을 계승한 원담 스님은 1926년 전북 옥구군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자랐다.

10살 때 이모를 따라 수덕사를 방문하고 정진하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을 본 뒤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 후 천상사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해 12살의 나이로 만공 스님을 시봉, 1946년 만공 스님이 열반에 들 때까지 모셨던 마지막 법손의 맥이다.

원담 스님은 1958년 불교정화 당시 화엄사 주지를 거쳐 1970년 수덕사 주지를 맡았고 1986년 덕숭총림 제3대 방장으로 취임했다.

또 1994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과 승가사, 개심사 보현선원 조실 등을 역임했다. 불교계의 거승이라고 칭송받는 원담 스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도, 예, 중생교화의 세 가지 정점을 잇는 큰 지도자였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서화와 예술에 능해 장욱진, 이응노 화백 등과 교유하며 서로 작품을 평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옹산 수덕사 주지스님은 “원담 스님은 글씨를 배운 적도, 사사를 받은 적도 없었던 천부적인 예술인”이라며 “다방면으로 능했지만 그 중에서 서예는 종이를 접어 쓰지 않아도 똑바로 쓸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원담 스님은 1982년 수덕사 대웅전 현판, 1984년 속리산 법주사 주련 등을 썼으며 1986년 독립기념관 건립 서예전을 열고 수익금 전액을 희사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그동안 남긴 서예 등을 모아 ‘원담대종사선묵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다비식은 22일 오전 10시 30분 덕숭총림 수덕사 연화대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예산 수덕사=윤여일·김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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