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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강호유학기(江湖遊學記)

[조용헌 살롱] 강호유학기(江湖遊學記)

 * 제 정신적 선생님이신 소천 박영호 선생님께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에 주인공으로 등장했길레 여기 옮겨서 기릴까 합니다.
- 조용헌 선생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안부를 여쭙니다. 

'천년고도'(千年古都)인 경주에는 구석구석마다 볼 만한 명물(名物)이 많다. 명물이 많으면 명인(名人)도 많은 법이다. 명인이란 누구인가?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이다. 이야기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산전수전 고생을 많이 해봐야 이야기가 축적된다. 소천(小泉·61) 선생은 경주의 명인이자 이야기꾼이다. 그와 만났다 하면 3박4일이다. 그의 이야기보따리는 강호유학(江湖遊學)에서 장만한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안이 전부 몰락하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교문을 나서는데 5학년 담임선생의 마지막 말이 귀에 쟁쟁하였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놓지 않으면 공부가 된다".

영등포역 앞의 중국집에서 자장면 배달도 해보았고, 이발학원에 들어가 하루에 수백 명의 노숙자들 머리 감기는 일도 해 보았다. 19세 때에는 충남 대천 앞바다의 섬을 떠돌다가 대천 시장에서 고무줄 장사에 재미를 붙였다. 강원도와 경상도의 5일장을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주막에서 장꾼들과 어울려 술 먹고 화투를 치며 온갖 세상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떠도는 와중에서도 유명한 선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무조건 찾아가서 큰절을 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저는 무엇을 여쭤봐야 될지도 모르는 처지입니다. 세상사는 데 필요한 말씀을 해 주십시오." 20대 후반에는 서울의 변만리 선생에게 역술을 배웠다.

대구에서는 당시 '살아 있는 두보' 소리를 듣던 삼필재(三必齋) 선생을 만나 한시(漢詩)를 배웠다. 한문에 문리(文理)가 터졌다. 이때 접한 두보(杜甫)의 시 가운데, 3가지 이별을 읊은 '삼별시'(三別詩)가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난리에 이리저리 떠돌면서 겪은 두보의 고생과 슬픔이 소천 자신의 신세와 비슷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후로 주역의 대가였던 아산(亞山) 선생을 만났다. 아산은 야산(也山)의 제자인 김병호(金炳浩)를 말한다. 건괘에 나오는 '운행우시(雲行雨施)하야 품물(品物)이 유형(流形)하나니라' 대목에서 주역의 묘미를 느꼈다. 불국사의 월산(月山) 스님 문하에는 유발제자(有髮弟子)로서 14년을 출입하며 공(空)을 배웠다. 소천 선생의 강호유학기를 듣다 보면 '고생이 곧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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