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실

도교의 인간관(퍼서 정리)

도교의 인간관

[인간의 본성과 동물과의 차이] : 유교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별하여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다. 특히, 맹자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금수(禽獸)와 인간이 다른 점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인간다움을 발견하려 하였다. 그러나 도교에서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다른 점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천지 만물이 서로 통할 수 있으며, 같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았다. 자연계(自然界)와 인간계(人間界)의 밑바닥에는 보편적인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을 도(道)라고 하였다. 당시 '덕(德)'자는 '득(得)'자와 서로 통하여 쓰였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얻어진 것일까? 인간의 본성인 덕은 도로부터 얻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장자의 '마제편(馬蹄篇)'에서는 "대저 지덕(至德)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금수와 더불어 같이 거주하였으며 만물과 더불어 나란히 살았으니 어찌 군자와 소인의 구별을 알았으리오. 만물과 똑같이 무지(無知)하되 그의 덕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똑같이 무욕(無慾)하였으니 이것을 소박(素樸)이라 한다. 소박하면 백성들의 본성이 얻어질 것이다. 후세에 성인이 힘들여 인을 행하고 자랑스럽게 의를 행하게 되자 천하 사람들이 비로소 의혹(疑惑)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무지 무욕하며 무인의(無仁義) 할수록 온전한 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덕은 성현이나 군자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도 덕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장자는 덕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어린아이 같다고 하였다.『장자』'경상초편(庚桑楚篇)'에서는 "어린아이가 종일 울어도 목소리가 쉬지 않으니 심기가 화순(和順)한 극치이다. 종일 주먹을 쥐고 있어도 지치지 않으니 그의 순박함이 덕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종일 보아도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으니 치우쳐 보지 않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결국 그의 덕이란 지식, 정감과도 관계가 없으며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덕과도 관계가 없다. 맹자에게는 인의(仁義)가 인간만이 가진 것이라고 하지만 장자는 그러한 주장에 반대한다.

[도가의 자연적 인간관과 이상적 인간상] : 도가는 당시 몰락한 주대(周代)의 문물이 지닌 허위성과 형식성을 직시하고 반문명적인 생각을 지니면서 나타났다. 주대 사상과 문물의 주축을 이루었던 인의예지(仁義禮智) 등을 형식화함으로써 인의예지는 인간의 천진한 자연성을 구속하는 질곡이 되었다. 그러므로 도가는 외적 형식과 가치 체계뿐만 아니라 그 근원으로서의 내적 도덕성에 대해서조차 거부하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 출발에서부터 도가 사상은 인의예법(仁義禮法)을 논하는 사상과는 대립 충돌의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계는 공자와 노자의 만남에서도 알 수 있다. 공자가 젊었을 때 노자(老子)의 소문을 듣고 가르침을 청하러 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자는 "양고심장약허(良賈深藏若虛)요, 군자성덕용모약우(君子盛德容貌若愚)라"고 한 다음, "그대에게는 교만과 욕심과 색용과 음심이 너무 많소. 그것은 그대에게 해로울 뿐이요. 나로서는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소이다."고 했다. 고향에 돌아온 공자는 그의 제자들에게 노자의 인상에 대해서 "새나 짐승은 아무리 날쌔어도 이 손으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龍)은 잡을 수가 없지. 노자라는 사람은 그 용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하였다.

老莊사상의 주개념은 도(道)이다. 도는 스스로 그러한 自然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도는 인위 조작이 가해지기 이전의 본래 상태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도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 무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지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도의 존재를 인정하고 도의 기능과 일체화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 천지 만물은 도를 공통의 근원으로 삼는다. 이 도는 자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도가의 인간관은 자연적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장자는 학(學)과 사(思)에 의한 방법으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할 수 없다고 한다. 학(學)과 사(思)로 치기명(致其明)이나 복기초(復其初)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유가와 다른 점이다. 장자서(莊子書)에서는 상아(喪我), 좌망(坐忘), 무기(無己) 등의 신비스러운 수양 방법이 자주 언급된다. 특히 좌망은 인의예악(仁義禮樂)의 관념을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몰입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수양 방법을 거쳐 덕과 간격이 없는 경지인 '천인합덕(天人合德)'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는 이상적 인간을 성인(聖人), 지인(至人), 신인(神人)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逍遙自在, 順性, 順物自然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소요 자재는 어떤 外物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아가는 정신의 자유를 뜻한다. 순성은 본성인 덕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것을 말하며 素撲한 본성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순물 자연은 자기의 사심과 주관을 버리고 사물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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