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실

성(姓)의 기원(起源)

성(姓)의 기원(起源)

성이란 씨족관계를 표시하고 출생의 계통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회제도적인 인습으로 옛날부터 발생되어온 이름 앞에 붙이는 칭호를 말한다. 즉 인류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혈통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있어서 자기 혈통의 뿌리를 알고 계승하기 위한 겨레붙이를 일컫는다. 그러나 이 성이 고대부터 사용된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따르면 고구려의 시조(始祖) 주몽(朱蒙)은 국호를 고구려라 하면서 성을 고씨(高氏)라 하고, 백제는 온조(溫祚)가 부여(扶餘)에서 나와 성을 부여씨(扶餘氏)라 하였다.

한편 신라에는 박(朴)·석(昔)·김(金) 3성의 전설이 있고, 가야국(伽倻國)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은 황금알에서 태어났으므로 김씨라 하였다고 한다. 일부학자들은 한국은 고대 부족사회 때부터 성을 사용한 것처럼 되어 있으나 그것은 모두 중국문화가 수입된 뒤 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문헌상으로 한국에서 성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건국 초기인 1세기 무렵부터이고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近肖古王) 때부터이며 신라는 6세기 진흥왕(眞興王) 때부터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그 이후에 한자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실은 신라 이전의 진한 때에도 이미 국서로서 진나라와 교우한 흔적이 여러군데 나타난다. 그러하다면 한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이 며 신라는 박,석,김 외에도 이미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신라 6촌에 손,최,이,정,배,설씨 등 성을 사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것들을 참고로한다면 법흥왕때부터 성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황당한 오전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구려는 장수왕 시대부터 백제는 근초고왕시대부터 신라는 진흥왕때부터 중국과 국서를 교환하여 비로서 왕의 성을 썼으니 그때부터 신라에는 김씨라는 성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옳을수있으나 이미 석탈해왕 9년 서기 65년 3월에 시조 대보공이 강림하시어 김알지라 명하였으니 우리 김씨성은 대보공 시대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성의 수를 살펴 보면 1486년(성종)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277성, 영조(21대)에 이의현(李宜顯)이 편찬한 『도곡총설(陶谷叢說)』에는 298성, 1908년(고종)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496성(숫자가 많은 것은 고문헌에 있는 것을 다 넣었기 때문이다)으로 되어 있으나 1930년 국세조사에서는 250성, 1960년 국세조사에는 258성, 1985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는 274개의 성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최근의 조사인 2000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는 286개의 성씨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일제식민 통치하에서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의 일환으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라며 1939년에 시행한 창씨개명은 1945년 해방과 1946년 10월 23 일 미군정이 공포한 조선성명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에 따라 이름을 다시 찾을 때 까지 우리나라 성씨 역사의 가장큰 수난기였다. 이후에도 국제화 시대를 맞아 외국인의 귀화 등으로 새로운 성씨와 본관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현재는 성이 없는 사람은 없고 모든 국민이 성을 갖고 있으나 그 문중의 정통성은 영원하게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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