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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수난사/강준만/인물과사상사

어머니 수난사/강준만/인물과사상사

"앞산의 진달래도 뒷산의 녹음도/눈 주어 볼 겨를 없이/한국의 어머니는 흑인 노예 모양 일을 하고/아무 찬양도 즐거움도 받은 적이 없어라/이 땅의 어머니는 불쌍한 어머니…//5월의 비췻빛 하늘 아래/오늘 우리들의 꽃다발을 받으시라…." 시인 노천명이 지은 '어머니의 날'이란 시다. 언제나 불러도 목이 메는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전형적인 '한국 촌놈'들이 많다. 나도 그런 촌놈 중의 하나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 어머니는 '오랫동안 더없이 아름다웠지만 이제 굴종과 무기력의 상징이 돼버린 여성의 이름'이다. 포근한 느낌으로, 때론 눈물지어가며, 어머니의 다양한 역사적 풍경 속으로 빠져 들어 가보자."

저자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여자보다 강한 어머니 이야기' 70편을 들려주는 것은 "이대론 안 되겠다는 성찰의 기회를 얻는다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가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투사로 살아야 했던 어머니 수난의 역사를 통해 한국사회의 변천사와 구조적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조선시대와 개화기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아야만 대접받았다. "남자들은 집안에 새로운 여자를 하나 들여놓음으로써 가내 노예를 바꾼다. 그간 집안에 갇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 키우며 노예처럼 일하던 여자는 시어머니가 되면서 이제 며느리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다. 가족 노예인 며느리는 아들을 낳아야 그나마 기를 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는 조선 여성을 식민지 국민으로 통합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가 활용됐다. "교육을 통해 여성의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을 어느 정도 가능케 하고 국가나 사회의 목적 수행을 위해 여성을 이용하면서도 여성의 주체성을 엄격히 억제하여 최종적으로는 여성의 사적 영역, 즉 가정으로 제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는 '전쟁 미망인의 타락을 막아라'는 구호가 나도는 가운데 '자유부인' '허벅다리 부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60년대 굶주림의 세월 속에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성은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낳았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70년대 어머니는 가족의 수호신이었다. 반면 복부인과 주부도박단이 활개치기도 했다.

80년대 어머니는 입시전쟁과 혼수 사치경쟁에 뛰어들었다. "입시전쟁은 자식 사랑을 앞세운 어머니들의 인정 투쟁이기도 했다. 현대판 가부장제 아래서 어머니의 보람과 인정 욕구는 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킬 때에 충족될 수 있었다. 의사 판사 교수 후보생들을 얻기 위해 그들은 앞으로 딸이 수행해야 할 노동을 화폐로 환산해서 미리 주었다."

저자는 90년대 어머니를 자식 하나 보고 살아온, '대학교라는 신흥종교의 광신자'라고 말하고, "나는 월급 없는 파출부가 아니다"고 선언한 2000∼2005년대 어머니를 '원정출산' '모골탑'(母骨塔) '불륜' '기러기 아빠' '호주제 폐지' 등으로 설명한다. 2006∼2008년대 어머니는 '현모양처'(賢母良妻)에서 아니라 '전모양처'(錢母良妻)로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불행한 역사의 한복판에서 강한 모습을 보인 어머니들도 많다. 1899년 4월 최초로 축첩 반대 시위를 벌인 여우회, 사형이 확정된 안중근에게 "살려고 몸부림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라"고 당부한 어머니 조마리아, 아들의 뜻을 잇는 노동운동으로 180차례 범법자가 되고 3차례 감옥에 갔다 온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등의 삶이 대표적이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오려고 하는 눈물은 진실된 것인가. 효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는 말은 정말인가. 저자는 감상적인 효의 정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차원의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선 어머니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부터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머니가 투사가 돼야 하는 어머니 수난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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