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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환의 '고구려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3>

임기환의 '고구려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3>

고구려란 이름

기사입력 2004-07-01 

  고구려는 언제 우리 역사에 등장하였을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는 기원전 37년에 시조 주몽이 동부여로부터 남하하여 졸본지역에 도착하여 고구려란 나라를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른바 주몽 설화입니다.
  
  그렇다고 고구려란 국명이 이 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그 땅에 낙랑군ㆍ현도군ㆍ진번군ㆍ임둔군 등 4개의 군현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 현도군이 바로 고구려 지역에 설치되었습니다. 이 현도군에는 3개의 현이 설치되었는데 그 중에는 ‘고구려현’이란 이름이 보입니다. 이 때가 기원전 107년이니,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고구려’라고 불리는 세력집단이나 종족이 그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고학 자료를 보아도 고구려라고 부르는 집단이나 종족이 기원전 2세기 경부터 압록강과 혼강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철기문화와 농경을 기반으로 강가나 계곡에 자리잡은 지역 정치집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지역집단을 ‘나(那)’라고 불렀는데, 땅(地)이나 내(川), 또는 냇가의 평야를 뜻합니다. 곳곳에서 성장한 이들은 『삼국사기』나 『삼국지』에 조나(藻那), 주나(朱那), 소노(消奴), 절노(絶奴) 등등의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종족은 보통 예(濊)족, 혹은 맥(貊)족, 혹은 예맥(濊貊)족으로 중국 역사책에 기록된 종족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맥족이 직접적으로 관련됩니다. 물론 고구려를 세운 맥족은 크게는 예족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입니다. 예족은 발해 동북지역의 종족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기에, 부여나 옥저․동예들도 모두 예족에 해당한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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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일어난 첫 수도에 남아있는 오녀산성. 중국 요녕성 환인현에 있다. ⓒ임기환

  그래서 중국 역사책에는 2세기경 고구려의 풍속이 부여ㆍ옥저ㆍ동예 등과 비슷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맥’이라 칭호는 고구려가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발전하여 다른 집단과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따로 불리워진 칭호로 생각됩니다.
  
  고구려의 칭호와 관련하여 몇가지 재미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지금 외몽고 오르콘강에서는 돌궐이란 종족이 남긴 옛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비문은 730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내용 중에는 돌궐 시조인 이스타미의 장례식에 ‘동쪽의 해뜨는 나라’에서 조문사가 왔다고 하면서 그 나라 이름을 ‘배크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배크리는 ‘매크리’와 통하는 발음으로 곧 ‘맥(貊)구려’가 됩니다. 이는 맥족인 고구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는 돈황문서보관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위그르족이 남긴 기록에 과거 돌궐인들이 고구려를 ‘무구리’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역시 ‘맥구리’와 통하는 말입니다. ‘무쿠리'라는 이름은 티베트의 기록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서로마제국의 기록에는 무크리트(Mukruit)로, 동로마제국의 기록에는 '모굴리(Moguli)'라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통상 고구려라고 부르는데, 당시에는 이를 어떻게 읽고 불렀겠습니까?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습니다만, 맥그리, 우구리의 예를 보아 아마도 ‘고구리’ 또는 ‘고우리’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추정됩니다. 비슷한 예가 중국 기록에도 보입니다. 즉 고구려가 아니라 고구리나 고우리로 부르는 것이 당시 발음에 근사한 것입니다.
  
  그러면 고구려의 뜻을 새겨 봅시다. 고구려에서는 성(城)을 ‘구루’라고 불렀습니다. 고구려의 ‘구려’는 ‘구루’와 통하는 말로서 ‘성’이란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말의 골, 홀이란 말과 통하는 것입니다. 고(高)자는 크다, 높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즉 고구려라는 이름은 대성, 큰 성이란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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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원고구려비 - 고려라는 이름을 전하는 한반도 유일의 고구려비. 충북 중원군에 있다. ⓒ임기환

  그런데 우리는 고구려란 이름만 알고 있는데, 고구려는 ‘고려(高麗)’라는 이름으로도 불렀습니다. ‘고려’하면 흔히들 왕건이 세운 고려 왕조만을 생각하는데, 고구려도 고려라는 국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잘 알다시피 왕건의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명도 그대로 따온 셈이죠.
  
  고구려가 언제부터 ‘고려’라고 불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략 5세기 이후의 중국 역사책에서부터 고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충청북도 중원 지방에 남아있는 중원고구려비에서도 고구려인 스스로가 ‘高麗’라고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비는 장수왕대 세운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데, 아마도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 분위기를 쇄신하는 뜻에서 ‘高麗’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나 추측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역사상 고려라고 불리운 왕조는 두 번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칭호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우리 남한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데, 여기의 ‘한(韓)’은 과거에 ‘삼한(三韓)’ 등으로 불리운 바 있듯이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칭호에서 나온 것입니다. 북한의 공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데, 여기의 ‘조선’ 역시 역대에 조선이라 불리운 왕조가 2차례나 있었으며, 근세의 왕조 명칭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칭호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통일 국가로서의 칭호를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을까요. 이미 한(韓)이란 이름과 조선(朝鮮)이란 이름을 남북한이 각각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둘 중의 하나를 사용하게 되면 아무래도 다른 쪽에서 반대하겠지요. 그러면 결국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칭호로는 ‘고려(高麗)’라는 칭호가 남게 됩니다. 역대에 고려로 불리운 왕조가 2번이나 있었고, 또 고려에서 유래하여 지금도 서구에서는 ‘코리아’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적당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그 이름부터가 다시금 통일을 지향하는 오늘 우리들에게 새롭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임기환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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