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실

니진스키/ 파블로바/ 튜튜 - 이원국발레단 후원회원 등급

바슬라브 니진스키 (Vaslav?Fomich?NIJINSKY)
1889년 ~ 1950년 러시아 태생의 무용수겸 안무가

12세때 이미 발레 신동으로 러시아 전역에 이름이 날린 니진스키는 상트 피체르부르크 황실
발레학교(바가노바 발레학교의 전신) 졸업하자마자(18세) 마린스키 극장의 무용수로 들어간다.
당시 마린스키 극장의 무용수겸 안무가였던 포킨의 수제자로서, 발레 사상 가장 위대한
세명의 발레리나 - 크세신스카야, 파블로바, 칼사비나 - 의 파트너로서 그는 그 특유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풍부한 표정, 깃털과도 같이 가벼운 움직임과 강철같은 강인함,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엄청난 도약과 날아오름으로 관객과 평론가를 열광시켰다.
그의 굉장한 묘기와 비상한 도약은 유명한 무용수였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미소년인데다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던 니진스키는 <세헤라자데>의 황금노예, <페트루슈카>
의 인형, <지젤>의 공작, <목신의 오후>의 판신 등 역에 따라 완전한 변신을 이루는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 였다.
그의 인생의?절정은?20세기의 천재적인 공연기획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만나 발레륏스에서
활동하던?시절(1909~1913)이다.
1912년(23세)부터는 안무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내 <목신의 오후> <봄의 제전>을 안무했는데
이 두 작품은 당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대담하고?현대적이어서
당시 그에게 장미꽃을 선사하러 갔던 대다수 관객들이 엄청난 야유를 퍼부울 정도로 상당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안무작품은 인간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당시 발레 풍토에서 발레도 현실적인
체취를 지닌 인간의 육체와 그 심리까지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작품이었다.
그는 발레를 통해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려 했으나 그가 남색가였던 디아길레프와의
5년동안의 연애를 청산하고 헝가리 무용수 로몰라와 결혼해 버림으로써 그의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질투에 불탄 디아길레프가 그를 해고시킨 것이다 .
니진스키는 주위의 시기와 그의 진보적인 예술관을 펼칠 곳이 없어 방황하다가 결국?29세의
나이에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된다.
그가 61세로 죽기까지 32년동안 이 불행한 천재의 안식처는 정신병원이었다.

*대표적인 안무작 : 목신의 오후(L'apres-midi d'un faune 1912년),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 19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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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바 [Anna Pavlovna Pavlova, 1881.2.12~1931.1.23]

러시아의 발레리나. 마린스키극장에서 활동하며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였고 무용단을 조직한 후 영국을 본거지로 하여 세계 순회 공연을 다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하였다. 왕실() 발레학교에서 공부한 후 마린스키극장서 데뷔하였다. 1907년부터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였으며, 1907년 파리에서 S.P.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에 참가하고, 1913년 마린스키극장을 탈퇴하였다. 이듬해 무용단을 조직, 영국을 본거지로 한 이래 17년 동안 세계 각국을 순연하였다. 주요 출연작품으로 《지젤》《백조의 호수》 등이 있으며, 특히 《빈사의 백조》는 대표적인 무용이었다. 1931년 네덜란드 순연 중 헤이그에서 객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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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튜 - 발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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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노원 이원국 발레단 후원회장  국회의원 정의화
노원 이원국 발레단 운영위원장 서울시의원 부두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