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실

북악줄기(오패산(벽오산) )

북한산의 대동문과 보국문 사이에서 남동으로 뻗은 칼바위능선의 한 지맥이 삼양동 지선을 넘어 미아동 신일고등학교 뒷산을 이룬다. 이 산세는 남북으로 뻗어 동쪽으로 속칭 공주릉과 드림랜드를 품고, 남쪽으로 동덕여자대학교를 품으며, 123m의 오패산과 115m 봉우리, 그리고 135m의 벽오산(碧梧山)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오패산은 강북구 번동과 미아동의 경계를 이루고, 성북구와 강북구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오패산은 일명 빡빡산·벽오산·매봉짜 등으로도 불리운다. 먼저 빡빡산은 가운데벌리(번2동사무소 일대)에서 미아동으로 넘어가는 곳을 1950년대 말경 교원택지로 조성하느라 나무를 모두 베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아랫벌리 남쪽 일대 산은 비교적 수목이 울창한데, 철종 때부터 벽오산이라 불리어 왔다. 벽오산은 이 곳에 오현(梧峴)이란 고개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철종비 철인왕후가 손자 김석진(金奭鎭)에게 ‘碧梧山’이란 글씨를 하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패산은 산세가 남북으로 뻗었으므로, 동서로 이어지는 고갯길이 발달되었다. 오현은 번동에서 미아삼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머귀고개' 또는 줄여서 ‘며고개’라고 칭했다. 이는 오동나무의 일종인 머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릿굴고개’는 월곡동 다릿굴에서 장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장위고개’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우장현(雨裝峴)이라 하였다.
오패산 지맥에서 천장산 지맥으로 이어지는 ‘마른대미고개’는 화랑로를 따라 상월곡동에서 장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를 넘으면 평지가 시작되므로 고개가 바로 끝났다는 뜻으로 ‘바로대미고개’라 불렀는데, 언제부턴가 발음관계상 ‘마른대미고개’라 불렀다고 전한다. 이 고개 마루턱에는 동네의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인 서낭님이 들어있는 커다란 소나무가 서 있었는데, 주택이 들어서면서 고개는 흔적조차 없어졌다.
또 성황당나무가 있는 고개 전체를 ‘푸석산’이라고 하는데, 성황당나무인 소나무가 워낙 크고 또 사철 푸르기 때문에 산 전체가 푸르러 보인다 해서 푸석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푸석산 앞에 있는 석관동쪽 마을을 푸석골 혹은 돌곶이말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오패산 동쪽에 형성된 골짜기로 명덕골 또는 명덕동(明德洞)이 있으며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곳은 속칭 공주릉 동남쪽의 동방생명주택단지 일대인데, 주택지 조성을 위해 계곡을 매립할 때 ‘石芝洞’이라 새겨진 반석이 땅 속에 들어갔다고 한다. 석지동 202번지 가운데벌리의 노인정 앞과 공주릉 입구 길가에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오패산 기슭은 옛부터 오얏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집집마다 울타리로 삼을 정도였다. 봄이 되면 주변의 수려한 풍치 속에 오얏나무 꽃이 만발하였다. 특히 오패산에서는 수정 등 보석이 많이 나오고, 맞은편 초안산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의 중신들도 이 곳을 자주 다녀갔다. 그들은 당시 ‘목씨(木氏)’ 성이 왕이 된다는 도참설이 유행함에 따라 목씨 성을 오얏나무의 이씨(李氏)로 연상하고, 이를 막기 위해 번동 공주릉 남쪽 명덕골에 벌리사(伐李使)를 배치하고 오얏나무를 벌채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마을이름이 ‘伐李’라고 불리어지다가 ‘樊里’로 고쳐졌다고 한다. 지금도 오패산 동쪽 번동의 자연부락은 웃벌리·가운데벌리·아랫벌리라 불린다. 아직도 자연부락 이름이 사용되는 것은 대부분 군사보호지역으로 한때 개발이 제한되어 원주민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랫벌리는 정자말이라고도 한다. 정자말은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신경진의 별장이 있었기 때문에 연유되었고, 이 별장은 19세기 초 이요헌의 소유가 되어 삼벽정(三碧亭)이라 하였다. 아랫벌리는 궁말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번동 산 28번지에 조선 순조의 딸 복온공주(福溫公主)와 부마 김병주(金炳疇)의 묘가 있기 때문이며, 속칭 공주릉이라 부른다. 묘역은 200여평 밖에 되지 않으나 주위 경관이 수려하다. 묘소 입구 29번지의 창녕위궁(昌寧尉宮)은 원래 창녕위 김병주와 복온공주의 재실이었다. 창령위궁이라고 칭하게 된 것은 그 손자 김석진이 을사조약 이후 이 곳에 은거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공주릉 남쪽 95번지에는 그 후손들이 묻혀 있는데, 그 중에는 일제강점 때 번동 자택에서 순국 자결한 열사 김석진의 묘가 있으며, 이 일대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인근 주민들의 산책과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또 오패산 지맥의 남쪽 끝 봉우리는 월곡동에 위치하여 월곡산이라 하는데, 하월곡동 23번지 1호에 동덕여대가 자리잡고 있다. 동덕여대가 위치한 곳은 월곡산 남쪽 언덕인데, 어려서 세상을 떠난 고종의 큰 아들 완화군의 묘(속칭 애기릉)가 있던 곳으로, 소나무숲이 우거지고 풍치가 뛰어난 곳이었다. 이밖에 완화군의 사친인 영보당 이씨와 내안당 귀인 이씨, 복령당 귀인 양씨 등 고종의 후궁들의 묘인 귀인묘도 이 곳에 있었다. 애기능과 귀인묘는 지금은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경내로 옮겨졌다.
그리고 오패산(벽오산)은 드림랜드가 있는 강북구 번동 산 5번지 일대 149필지 1,214,249㎡와 동덕여대 뒷산인 성북구 월곡동 산 2-1번지 27필지 222,887㎡를 대상으로 미시설 근린공원인 월곡제1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동공원이라 이름하였다. 오동공원은 1966년 2월 5일 건설부고시 제2181호로 처음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오동공원 월곡동지구는 1985년 2월 1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72호로 최종고시 되었으며, 1985년 3월 29일 서울특별시고시 제214호로 지적고시 되었고, 1990년 11월 12일 서울특별시고시 제377호로 공원조성계획이 수립되었다. 공원시설로는 31종 349개가 있다. 광장 1개소와 6개 도로가 시설되어 있고, 조경시설로 파고라 1동이 있다. 휴양시설로는 노인정 2동과 벤치 208개, 운동시설로 간이운동장 3개소와 성인 운동기구 17종 271개가 설치되어 있다.
번동지구는 1993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고시 제93-185호로 최종고시 되었으며, 1993년 7월 5일 도봉구고시 제93-40호로 지적고시 되었다. 부분 시설공원으로 이 지역에는 23종 1,041개의 공원시설이 있고, 존치가능건물 76동과 존치불가건물 78동이 있다. 광장 7개소와 도로 10개소, 1개 산책로가 있으며, 조경시설로 파고라 1동과 분수대 1개소가 있다. 휴양시설로 노인정 4개소와 벤치 400여개, 유희시설로 놀이기구 1종 2개와 유료시설 19종 19개, 운동시설로 성인 운동기구 11종 92개와 풀장 2개소가 있다. 그리고 교양시설로 전시관 1동이 있고, 기타 주차장·매점·화장실·공중전화·음수대 등 편익시설과 각종 관리시설을 갖추고 있어 연인원 152만 5천명이 이용하고 있다. 이곳의 임야면적은 1,349,20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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