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성(鐵城 철성 부원군은 최영을 작봉한 것이다) 최영(崔瑩)은 그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늘 “황금을 보기를 흙같이 하라.[見金如土]”라고 가르쳤으므로, 항상 이 네 글자를 큰 띠[紳]에 써서 종신토록 지니고 다녀 잊지 않았다. 국정(國政)을 잡아 위신이 중외에 떨쳤으나 남의 것을 조금도 취하지 아니하고 겨우 먹고 사는 데 족할 따름이었다. 당시의 재상들은 시로 초대하여 바둑으로 날을 보내면서 다투어 성찬(盛饌)을 차려 호사함에 힘썼으나, 공만은 손님을 초대하여 한낮이 지나도록 찬을 내놓지 않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기장과 쌀을 섞어서 지은 밥에다 잡동사니 나물을 차렸지만, 손님들은 배고픈 참이라 채반(菜飯)이라도 남김없이 먹고는, “철성 집 밥이 맛이 좋다.” 하니, 공은 웃으며, “이것도 용병(用兵)하는 술모(術謀)요.” 하였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시중(侍中)이 되었을 때에 점련(占聯)하기를,
3척 칼머리에 사직이 편하고나 /
三尺劍頭安社稷하니, 당시의 문사들은 아무도 대구를 짓지 못했는데, 공이 재빨리,
한가닥 채찍 끝으로 천지가 안정된다 / 一條鞭末定乾坤
하니, 모든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공이 항상 임렴(林廉)의 소행을 분하게 여겨 그의 종족을 모두 죽였는데, 공이 형(刑)을 받으면서, “평생 동안 나쁜 짓 한 일이 없는데, 다만 임렴을 죽인 것이 지나쳤다. 내가 탐욕한 마음이 있었다면, 내 무덤 위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의 무덤은 고양군(高揚郡)에 있는데, 지금까지도 한줌의 잔디도 없는 벌거벗은 무덤이라, 흔히들 홍분(紅墳)이라고 한다.
권상호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명구라, 익히 알고 있었다.
三尺劍頭安社稷(삼척검두안사직)
一條鞭末定乾坤(일조편말정건곤)
멋진 대구라 생각했는데, 과연 이성계와 최영과 같은 대인들의 기개가 돋보이는 명구입니다. 붓으로 이 기상을 표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