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지하철 통로의 더덕 할망


갈아탈 전철을 향해 흘러가는 사람들 속에


자갈처럼 물살을 가르며 늙은 여인이 앉아 있다


검은 흙이 묻은 더덕을 자루에서 꺼내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있다.


지하통로를 물들이는 더덕 내음


그 중 허리가 끊어진 더덕 한 뿌리


하얀 살을 들킨 더덕 한 뿌리


저 눈부신 속살을 키워냈을 검은 흙


물기를 잃고 더덕에서 떨어진다.




빗지 않은 머리카락


검은 흙이 모두 떨어져나간 머리카락


기른 것을 모두 떠나보낸 머리카락


그래, 사랑은


저렇게 다 버려야 보이는 속살 같은 것


은 아닐까, 늙어가는 일은 그래서 상처를 들키며 가는 길


은 아닐까, 아무도 사지 않는 더덕


언젠가 닿을 마지막 밥상을 위해


남은 세월을 떨구며 앉아 있는 여인은


더는 속을 숨기지 못하는


상처 난 더덕은 아닐까, 그런 것은 아닐까.



* 위 시는 시집『나는 궁금하다/문학동네』에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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