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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고문소개 - 석고문, 도서출판 고륜, 전윤성-

   1. 서언
   석고(石鼓)는 북모양의 10개 돌 위에 명문을 새긴 것으로 전서 가운데 대전으로 분류하나 대전에서 소전으로 변화해 가는 과도기의 서체라 할 수 있다.


   명문의 내용은 사냥에 관한 것을 노래 형식으로 칭송한 사언시사로 일명 렵갈문자(獵碣文字)라고도 한다. 갈(碣)이라고 하는 것은 석고와 같이 원주형을 말하는데 한대에 이르러 장방형의 비가 나타나기 이전까지는 모두가 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석고는 이러한 각석(刻石) 가운데 중국 현재 가장 빠른 시기의 문자각석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석고가 언제 만들어지고 새겨졌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일치하지 않는다.


   석고문을 연구한 학자들은 대개 석고문의 내용과 당시 역사의 사실들을 대조하거나 서체의 변화 특징을 근거로 석고문의 제작 시기를 추정하고 있다. 당 장회관과 한유는 주나라 선왕 때의 것이라 주장하였고, 위응물은 주나라 문황 때의 돌에다 선왕때 새긴 것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송나라 때의 동유와 정대창은 주나라 성왕 때의 것이라 하였고, 정초는 진나라 때의 것이라 하였다. 이후 20세기에 이르러 왕국유를 비롯한 곽말약. 라진옥. 마형. 당란 등이 모두 석고문을 선진 시대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당란은 진 헌공 11년 (기원전374년) 때의 것이라고 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춘추 시대 진나라 때 제작되었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석고문은 당나라 초기에 천응현에서 출토되었으며, 그 글씨의 예술성이 고박정묘(古朴精妙)함으로 인해 역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석고문을 찬양하고 추숭하는 문장을 남기며 관심을 기울여왔다.


   석고의 형상은 크기가 일정치 않다. 아래 부분은 크고 평평하며, 위는 작고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모두 10개로 이루어진 석고는 각 석고마다 매구 4행, 전체 10수의 운문이 새겨져 있으며, 한 수의 시는 18구 혹은 19구로 이루어져있다.


   처음 출토 당시에는 전체 약 700 여자 가량이었다고 전하나, 이후 국가에서 보존하지 않은 까닭에 오대의 전란과 자연의 풍화작용, 혹은 인위적으로 글자가 파손되어 현재 약 400 여자 정도가 남아있으며, 원석은 현재 북경고궁박물원에 보관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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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만세 3창이군요. 아자!
권상호
귀한 내용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이왕이면 해석문도 도움 주신다면 만세삼창이겠습니다.
허성옥
넵. 곧 서체의 특징과 해석문을 차례로 올리도록 하겄슴당~
미리  만세~만세~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