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내고향 정읍은

내가 태어난곳 고향 정읍은

항상 엄마품처럼 떠날때 마다

가슴 설래이게 한다.

마음놓고 다녀오는 고향 방문이면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울텐데..

나의 둘도 없는 친구 어머님의 부고를 받고

바뿐 와중이라도 먼저 도리이기에

밤11시 심야고속을 타고 조문을 갔다

장례식장에 찾아 영전에 향불 피우고 마지막 영전에

절을 올리고 가시는 어머님께 마지막 예를 가졌다.

우리 나이가 되면

이렇게 한분 한분 저세상으로 가신다는

친구의 말을 생각하면서 쓸쓸한 마음이 밀려왔다.

고향정읍까지 와서 문득 부모님께 인사라도

드려야 겠다는 마음으로

조문온 친구들에겐 죄송함을 미룬채

친구의 차를 타고 새벽 6시

마을 에 들어서면서 동네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사를 드리는 와중에 나의어머님도 

함께 있어 인사를 드렸다.

깜작 놀라며 무척 반갑게 맞아 주시는 어머님.

여윈 얼굴에 염색이 풀려

히끗 히끗 보이는 하얀머리가 눈에 들어오고,

난 어머님의 손을 꼭 잡아보며서

어머님의 따스함을 느꼈다.

요즘 시골은 일손이 부족해서 타동네까지 가서 일을

한다는 말씀에  마음이 영 좋지 않다.

연세도 건강도 좋지 않은 몸이 신데.....

부쩍 더 늙어 보이시는 어머님....자식이라고 효도도

제대로 한번 못해 드린린 저로썬 죄스러움이 함께 한다.

아침을 아버님과 겸상을 하고 이런 저런 얘기 나누며,

잠시의 부자지간의 행복한대화를 나누었다.

내년이면 고희을 맞는  아버님이 믿기질 않는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 버렸나!!

먼 이국땅 사우디에서 중동의모래먼지와

열사의 땅에서 달러를 버셨던 아버님의 그젊은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수가 없다.

나의 친구 어머님의 별세로 조문차 시골을 방문해서인지

마음속에선 또다른 만감이 나를 슬프게 한다.

바쁜 일정으로  용돈이라도 쓰시라고 손에 쥐어주는

자식의 마음의 정성도  오늘만큼은 어색하기만 한다.

마을 앞을 지나는 시내버스를 타고 그옛날 신작로 길을

생각하면서 정읍으로 길을 나섰다.

차창밖의 풍경들은 내고향 이지만

많이 많이 변해 있었다.

손바래기 마을 을 지나면서  우리 친구 정선님의

작고하신 아버님의 부정의 그리움의 글을

생각해 한다.

사거리를 지나니  신기 마을이 보인다.

저마을에 강선익 선생님이 사셨는데..

마을은  좀  옛 향기를 잃고있었고,

멀리 원불교 교당이 보이는데 

건물도 새로 신축되어 보였다.

신기 마을을 지나니 소나무가 가득한

산 언저리에 소나무는 없고

인삼밭이 눈에 들어 오고 그 산모퉁이를 돌아

로병해 친구 마을이 나오고

"약초 산닭"이란 간판은 여전히

그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덕천면 소재지앞을 지나는데

농협건물이 신축되고 있었고,

우리 초등학교는 쓸쓸히 마지막

여름방학을 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학교까지 4Km정도

거리를 우린 수도 없이 걸었다.

그 많던 우리 동기 선배 후배 모두가 이곳을 거쳐 간 모교...

여전히 그느티나무는

수백년의 모진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우리 친구 락구가 살던 래오마을을  지나

세로 놓인 옹골 다리는 현대식으로

시원스럽게 놓여 있었다.

이 다리 밑에선 멱을 감고 고기를  잡던 옛 생각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조용한

정읍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임대 현수막/ 가게앞 임대 문구는

현 정읍의 어려운 경기를

느끼기에 충분 했다. 어렸을때  터미널은

뭔가 활기가 넘쳐 보였는데..

서울에 올라가는 사람도 정말 많아었는데...

정읍은 조용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어디 정읍뿐만 일까!!!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도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웃음이 사라지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읍에서 만난 후배는 택시 운전을한지 2개월이 되었는데,

동석해서 요즘 택시운전 이 어떠냐는 물음에.....

" 저 나이 38 에 인생 경험하고 있어요" 라는 말이

마음 한구석에 떠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고향 정읍은 내가 태어난 곳...

그리고 다시 돌아 갈 수 밖에 없는 마음의 고향이다.

고향에는 나의 모교 동기들이 살고 있고,

차라도 한잔 하고 싶어 서울에 온 저에게 섭하다고

전화준 친구가있는 ..................

 

몇년 전 

참 힘들어 무작정 정읍에 내려가 실의에 잠긴 내게

물고기 매운탕에 눈물의소주을 건네며 ,

앞마당에 닭을 잡아 친구 접대를 해주던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사는 곳................

............................................................

...........................................................

 

그런따뜻한 고향이다.

난 그런 친구에게 잘해준것도  없는데..........

마음은 항상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2004년 8월 26일  이영욱

 

 

(이 글은 제 선생님께 말씀 드렸던 글 중의 하나이며,

  저희 카페회원에게 띄운 독백의글 입니다.  부족되고

  부끄럼이 앞서지만 이시대 이런 글을 올려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서로의 마슴속에 남아있는 추억의 향수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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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최점순
좋은 글 띄워주셔서 다시금 정읍을 따뜻한 마음으로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장 존경하는 위인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머니만큼 제게 살아있는 교훈을 몸소 보여주셨던 분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부모님이 계신 것 만으로도 선생님은 복많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씻겨주는 좋은 글에 거듭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