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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취임축하 라이브서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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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Thank you!
권상호
이명박 (李明博)

  이명박 (李明博), LEE MYUNG BAK
  1941년 12월 19일 (양력), 뱀띠, 남
  (현)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기본 사항 (59)
구분  내용
아호  일송 (一松)
별칭  컴도져(컴퓨터+불도저))
출생지  일본 오사카
본적  경북 포항시 북구 홍해읍 의창면 덕성동 537
원적  경북 영일군
본관  경주
직업  정치인(대통령)
기관/부서/지위(1)  (현)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기관/부서/지위(2)  (전)서울시 시장(32대)
직장주소  [110-820]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직장전화  (02)3786-3000
E-Mail  mb2181@chol.com
홈페이지  http://www.mbplaza.net
소속단체  6.3동지회,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삼청로타리,4월회,새한CBMC,한백회
가입정당  한나라당
병역  면제(입소 후 의병 퇴소) [병역기간] 1980년 18월 18일 ~ 1980년 18월 18일
혈액형  B 형
신장  173 cm
체중  68 kg
시력  (좌)1.0 - (우)1.0
종교  기독교
주량  맥주2잔
흡연량  금연
취미  테니스,수영
특기  테니스
결혼일  1970년 12월 19일
결혼형태  연애
자녀  부인 김윤옥씨와 1남 3녀
자격/면허  운전면허증
존경인물  안창호,간디,잭 웰치
좌우명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가훈  정직
감명깊은 책  슈바이처 전기
감명깊은 영화  오아시스, 집으로, 캐스트 어웨이, 벤허
선호음식  순두부,김치찌개,비빔밥,스파게티,된장찌게
애창곡  사랑이여(유심초), 아침이슬(양희은), 만남(노사연)
즐겨하는 운동  테니스
좋아하는 연예인  조용필,보아,안성기,장동건
건강관리  조깅,테니스,긍정적사고,음식 골고루 먹기
외국어 구사  영어,일본어

학력 사항 (10)
기간  내용
    ~  1954.2  포항 영흥초등학교 졸업
    ~  1957.2  포항중 졸업
    ~  1960.2  동지상고(야간) 졸업
    ~  1965.2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  1998  한국체육대 명예이학 박사
    ~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 객원연구원
    ~  2004  서강대 명예경영학 박사
    ~  2004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 명예 박사
    ~  2005  몽골국립대 명예경제학 박사
    ~  2005  목포대 명예경제학 박사
  경력 사항 (50)
기간  내용
 1965  ~    현대건설 입사
 1977  ~  1988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1978  ~  1981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 겸임
 1978  ~    한국도시개발(現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겸임
 1978  ~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1980  ~    해외건설협회 업계대표 부회장
 1980  ~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업계대표 부회장
 1981  ~  1992  대한수영연맹 회장
 1981  ~  1992  대한알루미늄 대표이사 사장 회장 겸임
 1982  ~  1987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 겸임
 1982  ~  1992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1982  ~  1992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1982  ~  1992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1983  ~  1992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1983  ~  1992  해외건설협회 이사
 1983  ~  1990  동남아 경제협력 건설분과 위원장
 1984  ~  1992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1984  ~    세계수영연맹 집행위원
 1985  ~  1986  한라건설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86  ~  1999  주한부탄왕국 명예총영사
 1987  ~  1992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88  ~  1992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1988  ~  1992  현대엔진공업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88  ~    한무쇼핑(현대백화점)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89  ~  1992  한·소 경제협회 설립준비위원장 겸 부회장
 1989  ~  1991  현대종합목재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90  ~  1992  현대자원개발 대표이사 회장 겸임
 1990  ~  1992  한국항만협회 이사
 1991  ~  1992  동북아 경제협력 민간협회 한국측 회장
 1992  ~  1995  14대 국회의원(민자당→이후 신한국당, 전국구)
 1992  ~  1994  6.3동지회 회장
 1992  ~  현  미국 아칸소주 명예대사
 1993  ~  1996  한국청년실업인협의회 회장
 1993  ~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 겸 운영이사회장
 1994  ~  2002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1995  ~    삼청로터리클럽 회장
 1996  ~  1998  15대 국회의원(신한국당→이후 한나라당, 서울 종로)
 1996  ~    한국국악협회 고문
 1997  ~    한나라당 종로지구당 위원장
 1999  ~  2002  아태환경NGO 한국본부 총재
 2000  ~    캄보디아 훈센 총리 경제고문
 2000  ~  2002  한국장애인정보화협의회 명예회장
 2001  ~  2007.12  해외한인무역협회 고문
 2001  ~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미래경쟁력분과 위원장
 2002  ~  2006.6  서울시 시장(32대, 민선3기)
 2002  ~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2007.8.2  ~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후보 경선 선출
 2007.10  ~  2007.12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살리기특위 위원장
 2007.11.27  ~  2007.12.18  2007 제17대 대통령선거 후보 (기호 2번)
 2008.2.25  ~  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가족 사항 (6)
관계 이름 생년월일 근무처 직위
 배우자 김윤옥(金潤玉) 1947.3.26  _  _
 자 이주연(李周姸) 1971.12.11  _  _
 자 이승연(李承姸) 1973.6.1  _  _
 자 이수연(李修연) 1975.5.19  _  _
 자 이시형(李始炯) 1978.3.7  _  _
 형제 이상득(李相得) 1935.11.29  한나라당  국회의원
  관련 기사 (8)
제목 매체명 게재연월일 기고자 
 "사사로운 정과 정치는 별개"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 회견  조선일보 1992.3.20  김민배 
 6.13의 선택: 서울시장 이 명 박 당선자  조선일보 2002.6.14  최원석 금원섭 
 리더십 연구 - 이명박 서울시장; 아이디어 내고 밀어붙이는 ‘코뿔 소 리더십’;  주간조선 2005.3.7  정장열 
 [朝鮮인터뷰] 청계천 복원 완료 1주일 앞으로 李明博 서울시장  조선일보 2005.9.24  이동한 박중현 
 [특집Ⅰ] 뚝심 황소, 알고보면 여우? - 이명박  주간조선 2005.10.24  이동훈 
 퇴임한 이명박 서울시장 “大選은 경제회생·사회통합 리더십이 좌우”  조선일보 2006.7.1  강인선 
 이명박 “11층 사무실까지 걸어 올라가”  조선일보 2006.11.15  권대열 
 [`정치의 계절` 대선주자 동행 인터뷰]⑤전남특산물 장터에 간 이명박  조선일보 2006.1.19  이하원 
  특이 사항 (13)
재산등록 현황-186억 6680만원/2004년말 서울시 공직자 윤리위 신고 내역
차기 대권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조선일보,29.4%)/2005.1.31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서울신문, 12.7%)/2005.07.18
차기 대권후보 호감도 조사(동아일보,14.2%)/2005.8.21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 여론조사(문화일보,20.3%)/2005.9.29
전문가 1천명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시사저널,27.9%)/2005.10
차기 대권후보 여론조사 지지도 조사(문화일보, 21.4%) /2005.11.1
보유재산 현황-186억/2005년 11월 2일 조선일보가 대선주자 6인에게 질문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차기 대선주자 이념성향 분석`에서 보수 33.1%, 진보 47.1%로 나타남/2005.11.25
한나라당 대선출마 예비후보 등록/2007.05.10
대통령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전 재산 사회헌납 천명/2007.12.07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의혹 등에 대한 특별검사법안 국회 통과/2007.12.17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2위 정동영후보에게 531만여표 차이로 앞서 대통령 당선/2007.12.20
  상훈 사항 (19)
체육훈장 백마장/1982.12/ /_/_ 
체육훈장 거상장/1986.12/ /_/_ 
민족훈장 석류장/1984.11/ /_/_ 
금탑산업훈장/1985.3/ /_/_ 
대한국토계획학회 현정국토개발상/1987.2/ /_/_ 
아시아수영연맹 공로상/1992.5/ /_/_ 
자랑스런 한국인상(사회,정치부문)/1996.7/한국자랑스런한국인상 표창위원회/ /_/_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1998.7/조선일보/ /_/_ 
20세기 한국을 빛낸 30대 기업인/1999/전국경제인연합회, 매일경제신문/ /_/_ 
2005 세계의 인물 대상/2005.6/영국 파이낸셜 타임즈 그룹 fDi 매거진/ /_/_ 
몽골정부 우정훈장/2005.9/ /_/_ 
제5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행정부문)/2005.11/한국언론인연합회/ /_/_ 
2005년 한국협상대상 대상/2005.12/한국협상학회 /청계천 복원사업 성공적 추진 공로/ /_/_ 
제22회 코리아 베스트드레서 남성수상자(정치부문)/2005.12/모델라인/ /_/_ 
뉴스위크 아시아판 선정 차세대 리더(정치분야)/2005.12/ /_/_ 
동문을 빛낸 올해의 인물/2005.12/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과정 총동창회/ /_/_ 
제4회 정책인 대상(교통부문)/2006.6/고려대 정책대학원/_ 
한국관광진흥대상/2007.2/한국관광학회/_ 
타임지 선정 환경영웅/2007.10/타임(TIME)誌 /_ 
  저서/논문 사항 (6)
[저서]
신화는 없다(자전에세이)/김영사/1995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에세이)/말과 창조사/2002.1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랜덤하우스중앙/2005.10
온몸으로 부딪쳐라
어머니 
  걸어온길 (1)
야간학교를 다니면서 뻥튀기 장사를 하던 소년이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룬 뒤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됐다. 이명박(李明博) 당선자의 삶은 마치 한 편의 성공 드라마였다.

◆가난에도 학업 포기 안해
이 당선자를 당 경선 때부터 도왔던 최시중 선대위 고문은 “이명박을 미는 이유는 가난과 배고픔을 제대로 경험해본 후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뒤 포항에서 자란 이 당사자는 아버지 이충우(1981년 작고)씨가 목부(牧夫)로, 어머니 채태원(1964년 작고)씨는 과일 행상으로 일했지만,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때 방 한 칸에 15세대가 모인 곳에서 살기도 했다. 학교엔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안 돼 물로 배를 채웠고, 등록금을 못 내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뻥튀기 장사도 하고 성냥개비에 황을 붙여 팔았다. 군부대 철조망 밖에서 김밥과 밀가루떡을 팔다가 헌병에게 잡혀 맞았다.

그러면서도 하루 왕복 4시간을 걸어 학교를 다녔다. 당초 고교 진학은 엄두를 못 냈지만, 중학교 때 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해 동지상고 야간부에 들어갔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낮에 일하면서도 전교 1등을 유지했다. 그는 “내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들 공부를 안 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더 나은 직장을 구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생각에 고교 졸업 이후 서울에서 막노동을 하며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결국 또래 학생들보다 1년 늦은 1961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학생운동에서 ‘샐러리맨 신화’로
대학 3학년 때 상대 학생회장이 된 이 당선자는 1964년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으로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운동에 참가했다가 국가내란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했다. 이 경력이 그를 현대건설과 인연을 맺게 한다(1965년). 그는 “당시 운동권 출신으로 ‘블랙 리스트’에 올라 웬만한 기업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며 “그때만 해도 현대건설은 직원이 수십명인 작은 소기업이었다. ‘설마 여기도 막진 않겠지’라는 생각에 지원했다”고 했다. 입사 후 그는 태국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각목과 칼을 든 폭도들에게 맞서 공금이 든 금고를 지켜내 정주영 회장의 전폭적 신뢰를 받게 된다. 5년 만에 이사, 10년 만에 부사장, 12년 만에 사장, 23년 만에 회장으로 승진했다. 회사에선 “이명박은 정 회장의 친척” “박정희 대통령이 백”이란 소문이 돌았다. 이에 정 회장은 이 당선자에게 “내가 언제 당신을 승진시켰어? 당신은 당신 스스로 진급한 거야”라고 했다.

◆시련 딛고 서울시장으로 재기
이 당선자는 1992년 현대를 떠났다. 정주영 회장이 1992년 대선 출마를 위해 만든 국민당에 참여하지 않고, 민자당에 입당해 전국구 의원이 됐다. 그는 “고르바초프라는 한 인물로 인해 세계에 생긴 변화를 지켜보면서 나도 뭔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순탄치 않았다. 1995년 지방선거 때 민자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정원식 전 국무총리에게 패배했고, 1996년 15대 총선에선 서울 종로에서 당선됐으나 법정 선거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쓴 사실이 드러나 의원직을 사퇴한 뒤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2000년 귀국해 정치 재개를 준비했다. 결국 2002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뽑힌 뒤 본선거에선 당시 여당의 김민석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 당선자는 2005년 10월 청계천 복원 사업을 순조롭게 마무리지으며 대선 도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는 “4200번 이상 노점상들을 만나 설득했다”고 말해 왔다. 또 대중교통 시스템 개조, 뚝섬 서울숲 조성 등으로 서울을 바꾸면서 ‘일을 해내는 이명박’ ‘불도저’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치열했던 경선… 집중 공격받은 본선
대선을 목표로 지난해 6월 여의도 정치권에 돌아온 그는 박근혜 전 대표와 경쟁해야 했다. 그는 당보다는 국민을 상대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먼저 주력했고, 지난해 9월 북한 핵실험과 올해 초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에 힘입어 계속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유지했다. 경선 때 “이 후보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며 형들과는 배다른 형제”라는 소문이 나돌자, 그는 입 속에서 세포를 떼어내는 DNA검사를 통해 이 소문이 허위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와 유례가 드문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1.5% 차이로 신승(辛勝)을 거뒀다. 이 당선자는 본선에서도 다른 후보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BBK 의혹 연루 문제, 도곡동 땅 외에 한반도대운하의 적절성까지 총망라됐다. 지난달 BBK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가 귀국하면서 절정에 달했고, 대선을 이틀 앞둔 17일엔 자신에 대한 특검법까지 국회를 통과했다. 또 이회창 전 총재의 무소속 출마도 있었지만, 그는 역대 대선 사상 최대 득표율 차이로 압승했다.

◆“내 인생의 성공은 어머니 때문”
이 당선자는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꼽는다. 평소에도 자주 어머니 얘기를 한다. 그는 “사춘기 시절 뻥튀기 장사하는 게 부끄러워 큰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장사를 하다가 어머니에게 눈물 나도록 혼났다. ‘왜 얼굴을 숨기느냐. 도둑질한 것도 아니고 네 힘으로 일해 돈 버는 건 떳떳한 것’이란 말씀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 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있을 때도 어머니가 면회를 와 “아들아, 소신대로 행동해라. 어미는 널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이 당선자를 격려했다. 이 당선자는 “내 인생의 성공은 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7일 전 재산 사회환원을 발표하면서도 “이는 내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1964년 이 당선자가 출감한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떴다. 그는 아직도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로 어머니 생전에 새 옷 한 벌 못 해드린 것을 꼽고 있다.

●생활기록부 속의 이명박
“적극적” “결단력 강함” 주요 과목은 모두 ‘수’
이명박 당선자의 꿈은 중학교 때부터 ‘관리(官吏·공무원)’가 되는 것이었다. 그가 졸업한 동지상고 생활기록부에는 ‘학생 희망 직업’과 ‘학부형의 희망’ 모두 ‘관리’로 적혀 있다. ‘중학교 때 희망 직업’도 ‘관리’라고 기록돼 있다.
고교 담임교사는 “활동 적극적”, “성격은 착실, 결단력 강함”, “학업이 우수하고 타의 모범”, “장래가 기대됨”이라고 평가했다. 자주성·책임감 등 ‘행동 발달상황’ 평가에서도 대부분 우수 등급인 ‘가’로 기재돼 있다. 포항중학교 학적부도 “성격 명랑” “적극성 유(有)”다. 다만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경솔하다”고 적혀 있으며, 고교 2학년 때는 ‘판단 경향’ 평가 항목의 ‘신중성’란에 ‘X’표시가 돼 있다.

성적은 어떠했을까? 이 당선자는 고교 3년 내내 국어, 도덕, 수학, 영어, 독어 과목에서 ‘수’를 받았다. ‘미’를 받은 건 모두 네 번이었다. ‘상업경제’(1학년), ‘상업부기’(1학년), ‘주산’(1·3학년) 과목에서였다. 1학년 때는 전체 20개 과목 중 ‘수’가 10개, ‘우’가 7개였고, 2학년 땐 23개 과목 중 ‘수’ 19개, ‘우’ 4개였다. 18개 과목을 들었던 3학년 땐 ‘수’ 16개, ‘우’ 1개였다. 따로 등수는 기재되지 않았다. 이 당선자 측에선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국·영·수는 열심히 했지만, 상대적으로 상업 관련 과목들을 잘 챙기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특기 및 취미’가 ‘탁구’였으나, 고교 때부터 ‘영어’였다. 초등학교 땐 “그림을 좋아한다”고 기록돼 있다. 고교 땐 ‘문예부’ 활동을 한 것으로 나온다. 낮에는 일을 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닌 것을 감안하면 출석도 양호했다. 1학년 때 4일, 3학년 때 5일 결석했고 2학년 때는 개근했다.
(조선일보, 2007.12.20) 
작성일 : 20080527
 
 
자료출처 : 조선일보 인물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