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道伴(도반)

수연 유석태 시인께서 시집을 보내왔다. 너무나 오랜만이라 직접 시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욱 반가웠다. 이대도록 깊고 넓은 세계를 누리고 있다니! 그 중 한 수를 적어보는데......
--------------------------- 수연의 명상 편지 중에서
                   어떤 꿈


  저는 오랜 꿈을 하나 지니고 있습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니 쉰이 된 나이라면 그냥 꾸어본 꿈으로 치부할 법도한데 그렇지 못합니다.  젊은 날의 온갖 삶의 환상이나 허영은 벗어 던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꿈만은 나이가 더할수록 더 간절해지고 구체적이 되어 갑니다.  꿈 중에서도 헛된 거품은 거듭 걷어내고 높이를 낮추고 현실과의 괴리를 줄이려고 부단히 노력도 해왔습니다.

 

  우선  숨 막히는 이 도시를 탈출하고 싶습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장단에 맞춰 미친 듯이 부를 쌓고 맹목적 욕망충족과 욕망의 확대재생산을 반복하는 이 광기의 열차에서 그냥 뛰어내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내가 가진 소유를 팔아 시골 마을 끝자락에 작은 땅 뙈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뒤는 산이요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전면은 좀 툭 트인 곳이면 좋겠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니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양지 바른 곳에 자연에서 온 것들로 투박한 방 두어 칸짜리 황톳집을 짓고 싶습니다.  돌이나 대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앞마당에 작은 꽃밭과 텃밭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담벼락 밑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은 자작나무를 두어 그루 심어 가꾸고 앞뜰에는 파! 란 잔디를 깔고 싶습니다.  마당 곳곳에 걸터앉을 수 있는 널찍한 바위를 놓아두고 싶습니다. 작은 연못을 파고 수련(水蓮)을 띄울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  잔디밭 위에는 열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통나무로 만든 야외 테이블을 놓아두겠습니다.

 

  그리곤 그냥 죽을 때까지 한 번 살아보는 것입니다.  먼저 문명에 찌든 내 영혼과 육신을 맑은 공기로 씻겨내고 자연의 세미한 소리에 귀를 기우려 무디어진 나의 귀를 예민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자연의 오묘한 질서 가운데서 내 삶의 의미를 고요히 짚어보고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내 영혼의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밝혀내고 싶습니다.  여유 있게 책 읽고 음악 듣고 무료하면 터벅터벅 산길을 걸어올라 갑니다.  특히 마음이 고요해지면 아름다운 모국어로 영혼을 맑게 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생계비를 벌 수 있는 작은 일거리가 있다면 좋지만 그것이 탐욕을 불러 일으키지 않은 일이면 좋겠습니다.  작은 전원 도서관을 갖추어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동네 아이들을 모아 독서지도를 하고, 지금 배우고 있는 자연치유법과 한방을 이용하?! ?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주말에 친구나 친지가 찾아오면 즐거이 맞이하여 앞마당에서 예술의 향기가 감도는 소박한 가든파티를 열어 그들 각각의 삶의 고단함을 위로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이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늘 소망합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마지막 남은 삶의 열정과 에너지마저 다 식고 고갈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런 신세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여러분들도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둔 젊은 날의 꿈의 조각들을 다시 꿰어 맞추어 새해에는 한 번 펼쳐 보시기를 권합니다.(水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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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해가 지나가는 구나


  쉰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이가 되고 보니 가끔 앞으로 살날들을 헤아려 봅니다.  살아온 날들 보다 살날이 더 적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남아있는 시간들도 아무 예고 없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일이고 모래고 심지어 바로 이 순간에도 멈추어 버릴 수 있는 불확실한 시간들 입니다.  또 한 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보내고 정신이 번쩍 들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다짐해 봅니다.

 

  첫째, 사소하기에는 너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  정말 가치 있고 본질적인 일에 너의 시간을  쓰도록 하라. 세상의 헛된 것에 한 눈 팔지 말고 너의 내면을 가꾸는데 힘쓰라.

 

  둘째,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너의 소중한 시간이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아라.  눈은 늘 너의 내면을 향하고 너의 내면의 충동에 따라 물 흐르듯이 살도록 노력하라.

 

  셋째, 너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나 네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끊고, 너에게 주어진 것과 네가 가질 수 있는 것을 충분히 향유하여라.  너에게 허락된 것들을 누리기에도  너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는 것을 명심하라.

 

  넷째,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려고 노력하라.  지나가 버린 과거에 매달리고 아직 오지도 않는 미래를 설계하느라 너에게 주어진 유일한 현재의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과거와 미래는 모두 현재 속에 수렴된다.

 

  다섯째, 사랑하고 나누고 비우라.  미워하고 다투며 보내기에는 너의 삶은 너무나 짧고 너무나 소중하다.  인간의 선의지를 믿고 아무 조건 없이 아무런 댓가를 기대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며 살라.

 

  여섯째, 현재까지 삶과는 다른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라. 익숙함과 편함을 마다하고 낯섦과 불편을 감수하려고 하라.

 

  마지막으로, 너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라. 세상의 잣대로 너의 삶을 재려고 하지 말고 너의 삶은 그 자체로 무한한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받아들여라.(水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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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사회를 위해서


  인류는 늘 현실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유토피아(이상향)를 소망했습니다.  종교인은 종교를 기초로 하는 유토피아를, 철학자는 철학을 기초하는 유토피아를, 정치가는 정치적 이념을 기초로 하는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역설하듯이 한 번도 인간이 갈구하는 유토피아는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중세기에는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하는 것은 그가 ‘기독교교인이냐 아니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기독교가 전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중세 유럽사회는 지상낙원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중세 유럽사회는 무지와 폭력이 난무하는 미성숙한 사회였습니다.

 

  근세에는 르네상스와 합리적인 과학정신의 영향으로 인간의 가치척도가 ‘배운 사람이냐 아니냐’ 로 바뀌었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  폭력이나 무지는 사라지고 더 행복한 사회가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지식과 과학으로 인해 인간성은 더 황폐해지고 사회는 더 메말라졌습니다.

 

  그래서 21세기에 들어서는 인간에 대한 가치척도는 ‘성숙한 사람이냐 아니야’ 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많은 학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이란 몸과 정신과 영성이 조화롭고 균형있게 발달된 인간입니다.  특히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영성이 고도로 성장하여 영성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회를 이끌어 갈 때 우리 사회는 진정 성숙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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