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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雲 時調-古梅 a shijo (a kind of short lyric poem)

1900년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도동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정주랑(靜洲郞), 본명은 주현(柱鉉)이고 운(雲)은 필명이다. 목포상업전수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영광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여 만주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시조 동호회인 추인회(秋蚓會)를 결성하였으며, 영광학원의 교사이자 시인으로서 일제강점기의 사회 계몽운동에 힘썼다. 1926년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대항하여 가람 이병기 등과 국민문학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37년 영광삐라사건으로 투옥되어 1939년에 출옥하였다. 8·15광복 후인 1947년에 서울로 올라와 동국대학교에서 시조론과 시조사를 가르쳤으며, 1948년에 가족과 함께 월북하였다.

1921년 《동아일보》에 《불 살라주오》를 게재하는 등 초기에는 자유시를 썼으나 좋은 평을 얻지 못하였고, 이후 1925년 《조선문단》에 《법성포 12경》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시조 창작에 매진하였다. 그는 고어투에서 벗어난 일상어로 생활에서 느끼고 경험한 구체적인 소재를 담아 시조가 현대적인 율격과 내용을 갖추도록 만든 선구자였다. 시조라면 버려야 할 구시대적인 유산으로 여기던 일제강점기의 식민지적 무의식에서 벗어나 시조 특유의 운율을 잘 살리면서 우리 민족의 서정과 정감이 오롯이 배어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여 현대시조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에 사설시조의 전형으로 꼽히는 《구룡폭포》를 비롯하여 《석류》 《파초》 등이 있다.

월북한 뒤로 잊혀진 문인이 되었다가 1988년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 이후 문학사적 위치가 재조명되어, 1990년 9월에 유족과 영광 지역 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운문학전집》을 출간하였으며, 2000년 7월에는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조운시조집》을 복간하였다. 이 시조집에는 1947년의 초판본에 수록된 작품들과 그 후에 발표한 시조 및 자유시가 망라되었다. 탄생일에 맞추어 고향인 영광 지역에 시비(詩碑) 제막식을 갖기로 하였으나 훼손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0년 9월에 제막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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