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예술학교

조선일보에 풍덩 라이브 서예 소개

숭인시장 풍덩예술학교… 서예·한국화 등 17개 과정, 저소득층·외국인은 무료
강사진, 교수·전문가로 구성… 입소문에 수강생 점점 늘어

지난 10일 한 노인이 금테 안경을 책상 한구석에 벗어놓고 실눈을 뜬 채 하얀 캔버스 위에 섬세한 붓질을 하고 있었다. 붓끝에서 먼 산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황금빛 논이 출렁였다. 1970년대 시골풍경을 연상시키는 그림에 온통 빠져 있는 신종수(76·성북구 월곡1동)씨는 '풍덩예술학교' 수강생이다.

◆재래시장형 문화센터

고상한 화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풍경이 벌어진 곳은 강북구 송천동 숭인시장 한복판이다. 고소한 오징어냄새와 신선한 해산물 냄새를 맡으며 가발과 옷가게가 즐비한 상가 사이로 들어가자 한지에 서예글씨로 쓴 '풍덩예술학교' 간판이 보였다. 시장측이 500만원 전셋돈만 받고 내준 15평 정도의 깔끔한 방 두 칸을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10일 강북구 송천동 숭인시장에 있는‘풍덩예술학교’유화반 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유화반 선생님인 화가 김이남씨와 풍덩예술학교 교장선생님인 최 대식 중앙대 교수.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오후 4시쯤 유화반 선생님인 화가 김이남(47)씨가 쟁반에 팥시루떡과 과일, 음료수를 내어왔다. "학교가 재래시장 안에 있으니까 공부하다 출출할 때는 시장에서 간식거리를 사와요. 가끔 삼겹살 뒤풀이도 하죠"

지난 1월 문을 연 풍덩예술학교는 비영리 단체인 채고예술마당이 재래시장 활성화와 문화나눔을 위해 세운 예술학교다. 서예, 한국화, 유화, 사진, 도자기, 비즈공예 등 17개 과정의 체험교육이 마련돼 있다. 지난 2월 성북교육청으로부터 평생교육원으로 허가받기도 한 풍덩학교의 수강료는 월 1만원으로, 저소득층과 외국인에겐 무료다. "재래시장에 수준 높은 강사진을 갖춘 문화센터가 있더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25명으로 시작했던 학교는 주부, 학생, 노인, 외국인 등 수강생이 180여명으로 늘었다.

교장선생님을 맡은 최대식(63) 중앙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맹아 음악회, 불우이웃돕기 전시회 등을 개최하는 등 문화나눔을 실천해 왔다. 강북구 수유동에 살면서 숭인시장에서 장을 봐왔던 최 교장은 "서민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마트나 백화점만 붐비는 게 안타까웠다"며 "재래시장에 평생 교육시설인 예술학교를 열면 학생들이 공부하러 오는 길에 시장도 같이 볼 수 있을 것 같아 이곳에 장소를 정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왜 번잡스럽게 하느냐"며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던 상인들도 이제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최 교장은 "상인들이 풍덩예술학교 수강생들에게 물건값을 깎아주기도 하고 손님들에게 우리 학교 입소문을 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면모(63) 숭인시장 상인연합회 상무는 "빈 점포를 그냥 놔두는 것보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며 "풍덩예술학교가 들어와서 시장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더해졌다"고 했다.

◆재능 나누는 강사진

학교 강의는 재래시장에 자리잡아서인지 시장 특유의 활기가 넘친다. 최근 서예를 하면서 노래에 맞춰 퍼포먼스를 펼치는 '라이브 서예' 강좌도 생겼다.

강사진은 모두 자신의 재능을 나눠주기 위해 참여했다. 교장인 최대식 교수와 뜻을 함께해 선뜻 강의에 나선 20여명의 교수진은 현직 교수, 전통매듭 전수자 등 문화예술 전문가들이다. 월 5만원 정도의 수강료를 받지만, 수업 마치고 수강생들과 막걸리 한잔 할 때가 잦아 대개는 오히려 자신의 돈을 쓰면서 학생들과 어울린다.

인물화를 가르치는 윤석배(51) 극동정보대학 주얼리디자인과 겸임교수는 "그림에 흠뻑 빠진 수강생들을 보면서 오히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유화반 선생님인 김상홍(66) 화가는 "중년 이후 진심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동반자를 얻은 느낌"이라면서 "수강생들이 친구나 아는 사람을 데려와 학생들이 점점 불어날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수강생 박영숙(49·성북구 돈암동)씨는 "시장에 장 보러 왔다가 프로그램도 좋고 비용도 저렴해 등록했다"며 "이곳 교수님들이 '빵빵'하다는 입소문이 시장에 쫙 나있다"고 말했다. 오는 10~11월쯤에는 수강생들의 작품들을 모아 합동 전시회나 바자회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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