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차대영 교수
권상호(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차대영 교수, 아니 작가 차대영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를 유능한 리더로 보고, 어떤 이는 훌륭한 선생님 혹은 잘 나가는 화가로 느낀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서 느끼는 것은 언제나 이제 막 시작하려는 신인화가의 이미지다. 그에게서는 늘 신선한 청년정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주된 테마가 되는 꽃이란 것은 식물의 일생을 두고 볼 때 열매 맺기 전의 가장 화려한 청춘에 해당된다. 적어도 그의 정신세계는 항상 청춘의 극지점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무심히 만나 교하(交河)를 이루듯이 차교수님과 나는 우리를 이루어 그렇게 만났다. 밀물과 썰물을 되풀이하면서 더러는 세월의 큰 흐름에 휩쓸려 바다로 나가 험난한 세상과 함께 거칠게 호흡하기도 하고, 때로는 갯벌 속 잔물로 남아 잔잔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차대영은 물과 친숙하며, 물처럼 겸손하고 너그럽다. 그의 작업 과정 중에도 물감을 물뿌리듯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의 깊은 만남을 일궈 낸 곳은 공교롭게도 모두 섬이 아니면 바닷가였다. 제주도, 진도, 강화도, 그리고 무창포, 서천, 평택 등등...... 몸담고 있는 水原大學校 역시 물과 관계가 있다. 수원의 고구려 시대 지명인 ‘매홀’도 ‘물골’이란 의미이다. 그와 식사를 할 때면 대개 반주를 곁들이는데, 술 역시 물이 주성분이다. 그러고 보면 차대영은 물의 성정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은 낮게 드리우면서 깊이를 더하고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물의 변형인 수증기나 얼음처럼 때로는 화를 낼 법도 한데, 늘 참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베푸는 편이다.
내가 화가 차대영을 앞날의 미술계 거목으로 기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미술계 일선에 몸담아 오면서 누구보다도 정확한 현실감각을 길러왔다는 점이다. 이미 한국미술협회 상임이사 시절부터 그의 매서운 세상읽기는 정평이 나 있었다. 나는 그러한 현실감각이 한 예술가로서 그의 성취에 중요한 자산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의 작품 속에 주로 등장하는 꽃이 무슨 현실과 관계가 있느냐 하겠지만, 캔버스 위에 무한히 확대된 꽃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엄정한 질서 속에서 치열한 경쟁의 논리도 살필 수 있다. 곧, 얼핏 보기엔 흐드러진 낭만을 연출하는 꽃잎 속에서, 하나의 암술을 향한 수많은 수술들의 치열한 경쟁 논리를 살필 수 있다. 그럼에도 도도한 암술의 선택은 늘 곁에 있는 수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벌나비나 바람의 중매에 의한 멀리 있는 꽃의 수술 꽃가루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른바 원친상간을 선택하고 있다. 잡종강세의 자연 섭리인가.
그는 더불어 사는 멋을 안다. 특히 한국적인 정서와 감흥을 간직하고 있다. 그림과 노래와 민속이 가득한 보배 섬, 珍島에 함께 여행한 적이 있다. 낮에 밤을 이어, 시서화는 물론 가무까지 곁들인 선비들의 사랑방문화를 즐겼다. 연회 중앙에는 어김없이 라이브 서화로 묵향이 피어오르고, 한켠에서는 이에 뒤질세라 진도 들노래가 울려 퍼진다. 참가자 모두의 붓질의 현란함과 노랫가락의 흥청거림 속에 진도의 밤은 짧기만 했다. 전국에서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즉흥적으로 삼삼오오 모였고, 물론 동리 주민들도 함께 자리를 하여 서로의 경계가 없었다.
큰 키에 걸맞게 몸집도 우람한 차대영은 합리적인 엄숙함과 유머를 지녔다. 대개 이런 형의 사람들은 무겁고 어둡기 일쑤지만 그의 밝은 표정과 유머를 보면 언제나 여유와 아름다움을 지닌 내면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이러한 차대영을 지켜주고 있는 말은 아무래도 ‘어머니’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도 인간이기에 때로는 견디기 힘든 굴레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홀로 세 자매를 길러준 어머니를 떠올리며 힘을 얻고 있다.
차가운 머리로 생각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다짐하며, 듬직한 몸으로 실천하는 그 畵業(화업)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
차영자
권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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