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문>
달을 품은 월산(月山)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문예평론가)
월산(月山) 김광우(金光祐) 박사는 선조가 600여 년 전에 입도(入島)한 제주 토박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역시 섬나라인 영국 카디프대학에 유학하고, 돌아와서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미디어를 전공한 언론학 박사 서예가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애월(涯月)이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이 월산(月山)이며, 자호를 월산(月山)으로 붙이고 있으니, 가히 ‘달’과 월산은 이체동심(異體同心)의 관계이고, 여기에 먹빛 현무암으로 형성된 제주를 더하면 삼위일체(三位一體)라 하겠다. 환언하면 달은 천(天), 제주는 지(地), 월산은 인(人)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절묘한 결합이다.
평생직장으로 방송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문화예술에 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고, 또 KIS Jeju(한국국제학교) 상임이사를 거쳐, 현재 제주서예문화연구원 이사장, 한국서가협회 제주도지회장, 월산마을 회장 등 일인다역의 막중한 업무를 맡고 있는 중에도 ‘섬과 뭍의 소통(疏通)’이란 주제로 제주와 대구를 오가는 서예 개인전을 펼친다고 하니, 월산은 필자가 알고 있는 생활 서예가의 범주를 넘어 근기(根氣) 넘치는 심미적(審美的)인 생활의 달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많은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창의성과 성실성이 그의 마음과 몸의 기저를 이루고 있고, 그 위에 그의 전공이기도 한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소셜 미디어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며 살아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경험(經驗)과 추억(追憶)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경험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사건, 상황, 감정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인격을 형성하고 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이 지나가면서 우리는 그것들을 기억(記憶)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추억(追憶)이다. 기억이 객관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추억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며, 감정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追憶)은 물론, 성장 과정에서 보고 들은 제주도 역사현장을 기억(記憶)에만 의존하지 않고, 붓과 먹을 통한 예술적 기록(記錄)이라는 영원 불변의 가치로 발현시키고 있다. 기억(記憶)이나 암기(暗記)는 개인의 해석이나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유한하지만, ‘글씨’라는 씨앗을 화선지 위에 뿌리며 만들어낸 기록(記錄)된 붓길(筆路)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일상의 서예전에 가 보면 작가의 경험치가 아닌 남의 글과 남의 서체로 남이 새긴 도장만 나열해 놓은 경우가 많아서 식상(食傷)하기 일쑤였다.
작품 준비를 위해서는 선문(選文) 또는 작문(作文)을 하고, 한 자 한 자 선체(選體)의 과정을 거쳐, 장법(章法)에 돌입한다. 내용에 따라서 제작 시간과 장소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때로는 음악의 힘을 빌려야 할 때도 있다. 최종적인 고민은 표현에 용이한 종이와 먹 및 붓을 선정하는 일이다. 국악, 양악, 트로트, 아리아에 따라 악기와 발성에 차이가 있듯이, 작품 내용과 서체 표현에 알맞은 지필묵(紙筆墨)에도 차이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선문(選文) 내용을 살펴보면 작가의 해박한 독서량과 향토애를 엿볼 수 있다. 노자(老子), 장자(莊子) 등의 도가적 함의(含意)를 비롯하여 이태백의 시가 등장하는가 하면, 청대 서예가 유희재(劉熙載)의 서론도 살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제주도를 통시적(通時的), 공시적(共時的)으로 두루 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조(正朝)와 김만덕,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충암(冲庵) 김정(金淨),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등의 인물을 비롯하여 한라산과 바다, 섬과 쪽배, 말과 귤, 전복과 방어 등의 물산을 읊은 시는 물론 투박하고 재미있는 제주도 사투리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제주도와 관련한 역사적 인물은 물론이고 자신의 추억도 끄집어내고 있다. 서예도 이른바 스토리 텔링 마케팅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더구나 웃음을 희화한 작품도 더러 보여 전시장 분위기를 경쾌하게 만들 것이다.
선체(選體)에 있어서도 모든 서체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다양성은 자칫 산만함을 낳기 쉬운데 월산은 제주 특유의 거친 듯한 필세(筆勢)로 자신만의 조화로운 경영위치(經營位置)를 잘 살피고 있다. 월산의 운필(運筆)은 거친 듯 순박(淳朴)하고, 무거운 듯 유창(流暢)하여, 필자는 이를 두고 돌과 숲과 물과 바람 모두를 품고 있는 ‘곶자왈 필법(筆法)’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서 국한문(國漢文) 겸용으로 감상자와의 소통을 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러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영문(英文)을 씀으로써 시대상을 대변하고 있다. 만약 21세기에 살면서 16세기 글을 그대로 옮겨놓는다면 귀신을 태우고 수레를 끌고 가는 형국이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에겐 ‘Now Here’밖에 없다. 예술에서도 정확한 현실 진단이 불확실한 미래를 잘 열어주리라 믿는다.
서예는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작가의 인품(人品)과 교양(敎養) 및 신채(神采)를 중시한다. 남조 송제(宋齊) 시기의 서예가 왕승건(王僧虔, 426~485)은 《필의찬(筆意贊)》에서 ‘정신이 으뜸이요, 글자 모양이나 선질은 그 다음(書之妙道 神采爲上 形質次之)’이라고 했다. 서예가들이 유독 좋아하는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은 글씨에 그 사람의 인격과 수양 정도가 나타난다는 예술관이 반영된 말이다. 여초(如初) 김응현(金應顯, 1927~2007) 선생의 저서명 《서여기인(書與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함께한다》도 같은 뜻이다. 청대(清代)의 학자 유희재(劉熙載, 1813~1881)는 《예개(藝概)》에서 “글씨는 같은 것이다. 그 학문과 같고, 그 재주와 같고, 그 뜻과 같은 것이다. 총괄하여 말하자면 ‘그 사람과 같다’라고 할 따름이다. (書如也 如其學 如其才 如其志 總之曰 如其人而已)”라고 했다. 이상의 말들은 모두 형(形)과 신(神)이 혼효(混淆)되어 표출되는 예술적 특징을 뜻하는 풍격(風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글씨를 보려거든 그 사람을 먼저 보란 뜻이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과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의 글씨를 비교해 보면 서여기인(書如其人)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달은 매일 그 모양을 ‘달리’ 하고 나타납니다. 달은 변화의 화신입니다. 항상 달을 품고 살아가는 작가, 월산은 분명 달처럼 나날이 ‘변화하는 작가’ ‘거듭나는 작가’이길 바랍니다. ‘백 년 후의 사람들이 오늘의 나를 두고 무엇이라 평할 것인가?’ 항상 이 점을 가슴에 새기고 창작하시길 바랍니다. ‘일, 운동, 공부’의 삼습(三習)으로 삶을 영위하면서 ‘땀, 눈물, 피’의 삼액(三液)으로 일궈낼 다음 전시회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그런 뜻에서 필자가 평소에 메모해 둔 몇 구절이 월산 동연(同硯)의 서로(書路)에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월산예운(月山藝運)의 무한창달(無限暢達)을 기원합니다.
첫째, 바람처럼 파도처럼 명쾌하게 붓길을 개척한다. (明快筆路)
둘째, 붓을 잡고 싶은 마음이 붓보다 앞서야 한다. (意在筆先)
셋째, 많이 읽고 이해한 뒤에 써야 필맥이 이어진다. (筆脈貫通)
넷째, 다양한 운필법으로 먹빛의 변화를 추구한다. (墨色變化)
다섯째, 벼루는 깨끗하게, 연지는 마르지 않게 한다. (淨砚含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