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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人傑地靈(인걸지령) - 석산 강창화 선생 졸업 작품전에 즈음하여

人傑地靈(인걸지령)

       - 석산 강창화 선생 졸업 작품전에 즈음하여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예교수 권상호


  2년 전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조형예술학과가 설립되고 그 첫 졸업전시회를 석산 강창화 선생이 미리 열게 되어 그 의미가 사뭇 重且大하다. 선생은 석사과정 졸업을 앞둔 학생이기 이전에 5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초대작가 겸 심사 역임자로서 이곳은 물론 많은 단체의 심사 및 운영을 맡았으며, 나아가 국내외 명망 있는 많은 단체전에 초대받은 바 있어, 명실상부한 중진 작가이다.

  그의 작품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면 氣韻生動이다. 이 말은 중국 육조시대 남제(南齊)의 인물화가인 사혁(謝赫)이 지은〈고화품록(古畵品錄)〉에 나오는 말로 六法 중 그 첫째에 해당한다. 작품에 자신의 감정이 잘 표현되어 생명력이 넘치는 뛰어난 예술품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의 기운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환경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환경의 산물이다. 예술의 주체자인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했다. 땅이 좋아야 훌륭한 인물이 난다는 말이다. 석산 선생은 甲午生 말띠의 濟州産이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의 작품에서는 제주도 감물 빛깔이 배어있고 제주도 냄새가 물씬 풍기며, 말의 당찬 근골(筋骨)이 느껴진다. 붓질에서 나오는 넘치는 생동감 속에 돌의 강인함을 느끼고 세찬 바람소리를 듣게 된다. 글의 소재에도 바람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필이면 한글 사설시조를 쓴 것도 민중의 건전한 삶을 쓰고자 했던 것일까?

  만당(晩唐) 시인 한악(韓偓)은 회소(懷素) 초서의 나는 듯한 기세와 무궁한 생명력을 묘사하여 기이한 돌이 시냇물에 굴러가고, 등나무가 고송(古松)을 감고 있는 듯하여, 회소의 병풍을 물가에 옮겨 놓으면 글자마다 용이 되어 물 속으로 뛰어들까 두렵다 했다. 한악이 본 회소의 초서 이미지가 내가 본 석산의 초서 이미지와 비슷하게 느껴짐은 우연의 일치일까? 예술가는 환경을 가꾸고 환경은 다시 인간을 기른다.

  본인 스스로 조형한 여러 작품의 화선지에서 제주도 감물 빛이 비치며, 藍靑色의 전서로 쓴 ‘明銳’는 제주도 앞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고 그 중의 ‘明’字의 조형은 白鹿潭으로 보인다. 마침 낙관에서도 스스로 漢拏山人이라 하여 화성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글씨는 書寫한 사람의 마인드 스케치다. ‘和光同塵’이 바로 그러한 좋은 예이다. 이 말은 <老子> 제56장의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에서 나온 말이다.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는 뜻으로 어쩌면 석산 자신이 자기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도 참된 자아를 보여주는 모습과 그리 닮았는지.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그 본색을 숨기고 人世에 나타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 있을 때의 석산 선생은 李白의 고사 ‘磨鐵杵 欲作針’처럼 ‘實踐躬行’하고 있는 작가이다. 知天命이 넘은 나이에 ‘梅經寒苦發淸香’의 정신으로 대학원을 진학하였고, 겸손한 마음으로 <노자>의 ‘抱木生毫末 層臺起累土’의 반추(反芻)를 잊지 않았다. 그렇다, 석산 선생의 ‘日就月將’의 결과는 ‘精通于天’이리라 믿는다. 이처럼 석산 선생의 이번 작품의 내용은 그의 의지를 담은 라이프 라인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석산 선생의 작품에는 우연욕서(偶然欲書)에서 나오는 순수 심성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서체를 혼용하기도 하고, 필획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며, 참치부제(參差不齊)와 언앙굴신(偃仰屈伸)의 절묘한 妙를 이루고 있다. 向背의 다양하고 거침없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萬毫齊力이 이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넘치는 의욕과 힘찬 에너지에서 나오는 多折로 말미암아 다소의 유연함이 그립기도 하다. 언젠가는 多轉으로 회귀하여 완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도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석산 선생의 조형 어법은 和而不同하다. 종이에서 출발하여 글씨 색깔과 윤갈은 물론 한 획에도 왕희지 <書論>에 나오는 ‘意在筆先’의 心境을 읽을 수 있다. 한퇴지(韓退之)의 <원인(原人)>의 ‘독근이거원(篤近而擧遠)’이나, <채근담(菜根譚)>의 ‘百福自集’은 붓질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조형어법을 보여주고 있다. 전서로 쓴 ‘淸和’ 역시 사선형의 역동적으로 구성으로, 淸자의 삼수를 오른쪽 밑에 갖다 놓음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낙관은 ‘淸’字 밑에 받힘으로서 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정감을 꾀하고 있다. 또한 윤갈의 조화를 통하여 절제의 미학을 견지하고 있다. <論語>에 나오는 ‘見賢思齋’는 서체 혼용의 좋은 예가 되고, <추구(推句)>의 ‘學文千載寶 貪物一朝塵’은 대구와 종이의 변화에서 오는 변주법을 보여주고 있다. ‘觀世音菩薩’은 金色으로서 써서 고귀한 金佛像을 대한 듯, ‘磨鐵杵’의 杵字 마지막 획을 길게 뻗음은 여지없이 기다란 공이를 생각하고 쓴 것이겠다. 그나마 가장 차분하게 쓴 글씨가 있다 했더니 내용이 ‘靜者安’이었다. 性情을 풀어 놓고 완전한 自由人이 아니고서는 어찌 내용과 형식의 절묘한 하모니를 일궈낼 수 있을까.


  석산 선생은 오늘도 바다를 관조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배가 항구에 정박 중일 때는 아무런 위험도 없지만 그러자고 배를 만든 것이 아니다.  學海無涯苦作舟라 했다. 언젠가는 일렁이는 파도가 파임처럼 平正을 얻듯이, 平正으로 돌아가 더 발효된 글씨를 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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