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노원 문화의 꽃 - 한글 고비(古碑)

父母에 대한 애특한 孝心이 깃든 碑石

지하철 7호선 하계역에 내리거나, 4호선 상계역에 내려서 택시로 한글비석길을 찾아가 보면 5분 이내에 한글비석길을 사이에 두고 서라벌고등학교와 마주한 나즈막한 동산을 만날 수 있다. 그 동산 위에 올라가 보면 한글고비(古碑)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고비가 있다.

이 비는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우리 글 연구에 중요한 학술자료로서 금석학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1974년1월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시 노원구 하계 1동 12번지(현재는 중계동이 아닌지 확인 요). 도로 옆 야트막한 숲에는 오래된 비석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영비(靈碑)라 불리기도 하는 이 비석은 조선시대 중종 때의 문인 묵재 이문건(默齋 李文楗)이 승문원(承文院) 종9품 부정자부정자(副正字)의 벼슬을 지낸 선친 이윤탁(李允濯)과 어머니 고령 신씨를 합장한 묘 앞에 세운 것이다.
이 비석을 세운 이문건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직(李稷)의 손자로 1494년(성종 25년)에 출생하여 1567년(명종 22년)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중종의 시책을 쓰도록 발탁되었을 만큼 이름난 서예가였다. 그는 통정대부 승정원좌부승지를 지냈으나, 사화에 연좌되면서 성주로 유배당하였다.하지만 사화에 연루되어 1567년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글고비는 비의 후면에 새겨진 가정십오년병신오월입(嘉靖十五年丙申五月立)인 것으로 보아 1536년(중종 31년)에 해당하며 이는 훈민정음 창제이후 최초로 한글이 새겨진 현존 最古의 金石文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비문의 끝부분에 비를세운 연대를 새겼는데 세워졌다.

또한 한글이 새겨진 비석은 국내 유일무이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도 매우 뛰어나며, 15세기 고어의 모습과 한글의 변천과정,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초기의 국문서예에 대한 연구자료로써 매우 귀중한 것이다.

오늘날 이 비석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비석 한쪽에 새겨진 한글 글씨 때문이다. 결국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이 이 비석을 훼손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한글로서 적어놓은 것인데, 한글을 언문이라 하며 경시하던 16세기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앞면에는 일반 묘표석과 같고, 비석의 동서 양측면에는 묘와 비석을 염려하는 한글과 한문의 추기(追記)가 각각 새겨져 있다.
전면에는 세로로 85㎝까지 가로 3㎝, 세로3.5㎝의 가는 한자 해서체로 쓰여 있다.

權知承文院副正字李公諱允濯 (권지승문원부정자이공휘윤탁)
合葬之墓 (합장지묘)
安人申氏籍高靈 (안인신씨적고영)

이를 한글로 해석하면,

"부모를 위해 세우노니 세상에 누가 부모가 없을 것이며 누가 차마 묘비석을 해칠것이며 비를 해치지 못하면 묘도 감히 넘보지 못할 것이다. 천추만세에 이르기까지 보존되리라"

는 의미다. 지극한 효심의 발현으로, 후세에 누군가 이 비석과 묘를 해칠 것을 염려하여 맹자가 말한 불인지심(不忍之心)에 호소한 글이자, 성주이씨(星州李氏) 가문을 찬양하며 부모의 유덕을 추모하는 뜻도 있다.

비석의 동서 양측면에는 묘와 비석의 훼손을 염려하는 한글과 한문의 추기가 적혀 있다. 동쪽면 상단에는 不忍碣(불인갈) 석자가 가로 6㎝, 세로6.5㎝의 한자 해서체로 쓰여져 있다.

비의 서쪽면에는 가로 4㎝, 세로 4,5㎝의 한자 해서로 영비(靈碑)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에 묘의 훼손을 경계하는 한글 30자를 비석 서쪽면에 2행으로 음각(陰刻)하였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신령스런 비석이다. 이를 범하는(깨뜨리거나 해치는) 사람은 재화를 입을 것이다. 이는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비를 세운 이문건의 높은 효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그의 효심에 하늘이 감동을 받았는지 5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 비가 훼손되지 않고 원상태로 남아있게 되었다

부모님의 은덕은(父德母恩)
하늘보다 땅보다도 높고 깊어라 (天高地厚)
부모 잃은 서러움을 (旣孤且哀)
천지 향해 울부짖네 (天墺地叩)
이곳 묘지 굳고도 편안하거니 (宅兆固安)
하늘처럼 땅처럼 무궁하리라 (天長地久)
애달프게 비는 이 마음 (哀祝此已)
뒷사람 부디 저버리지 말기를 (後人其負)

이 글은 비석의 후면 마지막 부분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도로 공사로 인하여 위치를 뒤로 몇 미터 위치를 옯겼는데, 실제로 그와 관련된 두 사람이 재화를 입었다는 후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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